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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여 본국으로 돌려보내졌던 태국 노동자들이 재입국해 18일 안산중앙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최근 상반신 마비 증세까지 나타나는 등 건강상태가 악화된 씨리난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발가락을 움직여 보라." "……."
"다리를 들어보라." "……."


다발성 신경장애에 의해 하반신이 마비된 태국여성노동자 시리난(37)은 조해룡 안산중앙병원 원장의 거듭된 요청에 응답하려고 애를 썼지만, 하반신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 조 원장이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말하자 손가락을 움찔하면서 어렵사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반신 마비 증상이 상반신으로 전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리난과 로차나(31), 아니짠(33), 파타라완(29), 샤라프(31), 왈란폰(33), 왈리(19), 추언총(28) 등 D사가 사용케 한 유기용제 ‘노말헥산’에 의해 하반신이 마비된 여덟 명의 태국 여성노동자들은 현재 안산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11일 출국했던 시리난, 로차나, 샤라프 등 3명의 태국 여성노동자들은 17일 산재치료를 위해 재입국했고, 아니짠 등 5명은 지난해 12월 20일 입원 치료 중이다.

조 원장은 18일 “2년~5년까지 치료해야 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으며 2년 정도 치료하면 90% 이상은 완치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경장애가 남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 일부 환자들은 조금씩 걸을 정도의 보행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장 심각한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시리난은 "태국에 남겨둔 여섯 살 딸이 '엄마 병을 빨리 고쳐서 같이 지내요'라고 말했다"면서 “다리가 낫는다면 일을 하고 돈을 벌어 딸의 뒷바라지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리난의 딸은 산재치료를 위해 엄마를 한국으로 데리고 가는 박천응 목사에게도 “우리 엄마를 다시 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여 본국으로 돌려보내졌던 태국 노동자들이 재입국해 18일 안산중앙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있다.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 판정을 받고 안산중앙병원에서 치료중인 씨리난 옆에 휠체어가 놓여져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태국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노말헥산 중독 증세를 보인 경기도 화성에 소재한 LCD 부품업체 ㄷ사.
ⓒ 오마이뉴스 남소연
시리난은 D사의 비인격적인 처우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작업반장에게 다리에 힘이 빠진다고 몇 번 이야기 했지만 ‘일거리가 많이 밀려있으니 일이나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회사가 안전하게 일을 시키지도 않고 아픈 뒤에는 제대로 치료를 해주지 않아 섭섭하다.”

이들은 앉은뱅이가 된 몸도 걱정이지만 코 앞에 닥친 것은 갚아야할 채무이다. 이들은 2003년 9월∼2004년 1월 사이에 태국 현지의 브로커에게 510만원을 주고 관광비자로 입국했다고 한다.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아와 토·일요일은 물론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몸은 병들고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로차나는 가장 큰 걱정이 빚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로차나는 “어서 일을 해서 빚을 갚아야 한다. 고향에는 눈이 거의 안 보이는 팔순 노모와 언니가 있다”며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을 수 없기 때문에 당장 일을 할 수 없어 걱정”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로차나는 또한 “한국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박 목사님 같은 좋은 분들 때문에 치료받게 돼 감사하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면 오래도록 방치하지 말고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국 정부와 기업에 호소했다.

앉은뱅이가 된 코리안드림...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빚과 병든 몸 때문에..."

▲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여 본국으로 돌려보내졌던 태국 노동자들이 재입국해 18일 안산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고향으로 돌아갔다 재입국한 샤라프가 18일 안산중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편 태국 여성노동자 산재치료에 앞장섰던 박천응 목사가 대표로 일하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는 불법체류, 임금체불과 착취, 실직 등 위기에 처한 외국인노동자 수십명이 기거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은 태국 여성노동자 산재사고에 대해 동병상련의 아픔을 털어놨다. 특히 산재사고를 당했을 경우 합법·불법과는 상관없이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 정부의 홍보 부족이 산재를 은폐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에 온지 1년가량 됐다는 가얀(24·스리랑카)은 18일 “한국사람 가운데 좋은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외국인 노동자를 능멸하는 태도를 취한다”며 “태국 여성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고 방치된 것은 한국 사람들의 그런 시각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가얀은 또한 “전에 일하던 공장이 불법체류자라는 약점 때문에 월급의 반밖에 받지 못했다"면서 "고향으로 가고 싶지만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고 벌금이 무서워 돌아갈 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자이락(37·스리랑카)은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넘어져 이가 부러졌는데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았다”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한국에 왔는데 몸은 상하고 일자리는 구하지 못했다. 한국이 친절한 나라로 알고 왔는데 와서 보니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유학회(37·중국 요녕성)씨는 지난 2003년 6월 회사 관리자가 권하는 술을 거부했다가 폭행을 당해 뇌를 크게 다쳤다고 하소연했다. 유씨는 “치료를 해주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일을 시켰다”며 “몸이 아파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참았는데 갈수록 분노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겪은 산재와 폭행 등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이들은 "코리안드림을 포기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병든 몸과 빚을 안고서는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이다. 왜곡된 코리안드림으로 인해 앉은뱅이가 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태국인 여성노동자 8명만은 아니었다.

▲ 노말헥산에 중독돼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 판정을 받고 안산중앙병원에서 치료중인 로차나 옆에 휠체어가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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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장도 마찬가지라고? 이들에게 사죄하라"
[인터뷰] 태국여성노동자 산재처리에 앞장선 박천응 목사

▲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 증상을 보인 태국 여성노동자 3명의 재입국을 도운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박천응 목사.
ⓒ오마이뉴스 남소연
“여덟 명의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을 앉은뱅이로 만들어 놓고도 ‘다른 사업장에 비해 잘해주면 잘해주었지 심하게 한 게 없다’고 오히려 항변했다. 이들의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공장도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는 식이다. 도덕성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다발성 신경장애에 의해 하반신이 마비된 태국 여성노동자들의 산재처리에 앞장선 박천응(43·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 목사는 산재사고를 방치한 경기도 화성시 향암면의 LCD·DVD 부품제조업체 D사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박 목사는 “회사는 태국 여성 노동자들이 앉은뱅이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자 외출을 금지시키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고 공장의 다른 태국인들도 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며 “이들은 발병 이후 40여일 동안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사실상 감금된 상태로 지냈다”고 밝혔다.

박 목사는 또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리난 등 3명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며 “이들 3명은 지난해 12월 11일 태국으로 돌려보내졌으며, 사실상 강제출국으로 내몰린 것이었다. 시리난은 자신의 병명을 알기 위해 노말헥산을 작은 병에 담아 가져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3명의 여성노동자들로부터 2명의 환자가 공장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해 12월 18일 D사를 방문했다고 한다. 박 목사는 “회사측은 문제의 작업장을 폐쇄한 가운데 노말헥산을 사용한 일도 없으며 태국 여성노동자도 없다고 거짓말했다”며 “회사 측은 2명의 환자를 12월 21일, 26일에 각각 출국시킬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박 목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면 좋겠다.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잘 사는 길이 아니다. 그들을 따뜻한 이웃으로 만드는 게 진정으로 잘 사는 길”이라며 “앉은뱅이가 된 태국인 여성노동자에 대해 우리는 사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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