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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지 표제 사진을 장식한 해리 왕자
ⓒ 선
영국 왕자 해리(20)의 '나치 제복' 사건이 지구촌의 뉴스거리로 등장했다.

찰스 황태자의 둘째 아들 해리가 2차대전 때 아프리카 사막에서 활약한 독일 롬멜 장군의 나치 군대 장교 제복에다 왼팔에 붉은 나치 완장을 차고 친구 생일 파티를 겸한 가장무도회에 나타난 사진이 영국 <선>지 13일자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며 국내외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제목도 적나라했다. '해리, 나치'.

영국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는 '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곤경에 빠뜨렸다면 크게 사과 드린다'고 발표했지만 언론의 질타는 이어졌다. 무엇보다 유태인 학살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이스라엘과 유태인 사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나치 시대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망각하는 몰상식한 태도라는 성토가 꼬리를 물었다. 2차대전 때 나치에 맞서 싸운 모든 영국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이 뒤따랐으며, 영국 2차대전 퇴역군인 단체의 대변인은 "불쾌하기 그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나치 역사의 부채를 지고 있는 독일의 언론도 빠짐없이 이 소식을 전하고 있다. TV는 뉴스 시간마다 철없는 영국 왕자의 나치 복장 '파문'을 보도하고 있으며 신문도 국제면을 크게 할애했다.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우선, 재미 삼아 하는 그런 가장무도회가 흔한 일임을 지적했다. 나아가 지난 주말에 한 축구 선수가 멋진 골을 넣은 뒤 오른 팔을 치켜드는 나치식 골 세레모니를 했다며, 이탈리아 축구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승리'를 뜻하는 나치식 인사인 '지크 하일'(Sieg Heil)도 흔히 외친다고 꼬집었다. 히틀러와 나치 만행에 대한 경각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사실 지난해 독일에서 히틀러의 최후 12일을 다룬 <몰락>이라는 영화가 450만 관객의 흥행몰이를 하며,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 신문은 또한 해리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 형 윌리엄 왕자가 스캔들이 될 게 뻔한 동생의 복장을 말리지 않은 일도 거론했다. 영국 왕자들의 걱정되는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가장무도회 주제가 역사 냄새깨나 풍기는 '식민지 지배자와 원주민'이었다고 하니, 왕자 형제나 파티에 참가한 영국 젊은이들이 역사를 전혀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한때 무수한 식민지를 거느린 대영제국의 후예다운 파티를 연 청년들이, 식민지 지배건 나치 지배건 간에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거나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는 게 문제다.

여하튼 두 왕자는 분노한 아버지 찰스 황태자에게 나치 유태인 학살의 상징 아우슈비츠를 '사적으로' 방문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이미 1993년 그곳을 방문해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영국 왕실 전체가 싸잡아 비판 받을 것을 걱정한 듯 왕자들의 숙모였던 사라 퍼거슨은 "해리가 훌륭한 젊은이고 세계가 그의 용서를 받아들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마침, 1월 27일에 폴란드에서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공식' 기념 행사가 열린다. 실수를 범한 왕실의 '훌륭한' 젊은이들에게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할 기회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부산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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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68혁명, 상상력이 빚은 저항의 역사』, 『저항의 축제, 해방의 불꽃, 시위』(공저), 역서로 『68혁명, 세계를 뒤흔든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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