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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계사
지난 12월 1일,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은 한국 화계사 국제선원장인 현각스님 앞으로 전문을 보내 자신의 아들 존의 스승이자 한국불교를 서구에 정착시키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한 숭산(崇山, Seung Sahn) 스님의 입적(入寂, 불교에서 스님의 죽음을 이르는 말)을 추모했다. 케리 의원의 아들인 존 하인스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불교무예 '심검도(心劍道, 마음의 검으로 집착을 베어 깨달음에 이른다는 한국의 불교철학이 담긴 무예)'를 수련하면서 이들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숭산 스님의 가르침으로부터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경험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정작 국내보다는 서구세계에 더 잘 알려져 있는 숭산스님은 한국 선불교를 가장 앞서 세계에 알려온 장본인으로 '한국의 달마'라고 불리었으며, 서구인들로부터는 세계 4대 생불(生佛) 중의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캠브리지 대학 종교학과에서 출판한 '부처와 비전'이라는 책에서 숭산스님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베트남의 틱낫한, 캄보디아의 마하 고사난다 스님과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명시하였다).

ⓒ 화계사
숭산스님의 해외포교이야기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 있다. 66년 일본을 시작으로 69년 홍콩, 72년 미국, 74년 캐나다, 78년 폴란드, 80년 영국, 81년 스페인, 83년 브라질, 85년 프랑스, 89년 남아공, 93년 싱가포르 등등. 지금은 '세계화'라는 단어를 쓰지만 예전에 많이 쓰던 '지구촌'이란 단어가 1970년대에 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시대를 앞서가던 스님의 노력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높은 지위를 마다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젊은 미국학생들에게 참선을 가르치시던 것이나, 만만치 않던 시절에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구권 공산권 국가에 대한 포교활동을 하였던 것 등, 스님은 가르침의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세계를 내 집처럼 오고간 행적에서도 많은 불교도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스님께서는 89년부터 한국으로 들어와 후학을 양성하고 계셨으며 스님께서 계시던 수유동 삼각산(三角山)의 '화계사(華溪寺)'는 아직도 한국불교세계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숭산스님과 그의 제자들이 세운 포교센터는 현재 세계 32개국에 130여개가 넘어가고 있고 5만명의 제자들이 수행정진하고 있다.

숭산스님이 조계종의 큰스님이긴 하지만 그가 해외에 심은 불교는 한국의 조계종과는 많이 다르다. 각 지역의 문화적 특수성에 맞게 형식이 변용되었는데 그래서 '관음선종(Kwna Um School of Zen)'이라는 새로운 종파가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재가자(평신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미국적 환경에 맞추기 위해 재가불자도 승복을 입을 수 있고, 결혼 여부에 상관 없이 스님의 계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단순화된 공안으로 각 단계를 차례로 통과하여 선사의 자격을 주는 등 출재가가 엄격히 구분되는 한국의 전통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하여 숭산스님의 포교방법은 국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승가와 재가의 구분이 너무나 흐려져 버린 변질된 한국불교의 모습으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인색한 평가와는 달리 미국 땅에서는 '선사님(Seon Sa Nim)'이라고 더 잘 알려진 숭산스님의 말은 쉽고, 단순하고, 너무나 재미있지만 동시에 정곡을 찌르기도 하는 지혜의 말씀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민 온 자기네 나라 교포들을 대상으로 한 '수하물 불교'에서 벗어나 현지인들을 직접 교화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진정한 불교포교의 전범을 세웠고, 규격화된 일본불교와 신비화된 티베트불교를 넘어서 간화선 전통의 불교를 제대로 알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님의 문하에서 외국인 제자들이 특히 많은데 그 중에서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왜 사는가>라는 책을 출판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 한국식 사찰인 '태고사'를 몸소 짓고 있는 무량스님, 그리고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만행>의 저자로 현재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맡고 있는 현각스님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제자들은 스님께서 외국인 제자들을 위해 폈던 가르침을 모아서 <오직 모를 뿐> <부처님께 재를 털면> <선의 나침반 1,2> 등의 책을 한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 숭산스님의 오도송
한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스타급 스님들이 몇 분 있지만,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함께 그의 존재를 기뻐할 수 있는 분이었기에 다른 때보다도 더 애도하는 마음이 깊다. 스님의 영결식(永訣式)과 다비식(茶毘式, 스님을 화장火葬시키는 의식)은 조계종 원로회의 장으로 12월 4일 오전 10시 반 충남 예산의 수덕사(修德寺)에서 열린다.

"출가란 집을 나온다는 것인데 곧 내 견해와 환경, 입장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남을 위해서 사는 이타행이 참다운 승려상입니다. 그것을 보살행이라고 하지요."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스님의 입적을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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