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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 라이트 운동'과 관련 김진홍 목사의 주요 발언을 실은 조선일보 11월 20일자 3면.
ⓒ 조선일보 PDF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기독교 사회책임'이 오늘(22일) 출범한다. 새로운 보수세력을 자임하는 자유주의연대도 23일 공식 발족한다.

'기독교 사회책임'은 서경석 목사, 김진홍 목사 등이 이끄는 기독교 시민단체로 개신교계의 ' 뉴 라이트'(New Right) 운동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리고 '자유주의연대'는 과거 운동권이었다가 우파로 변신한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단체로, 스스로 '뉴 라이트'를 자임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제까지의 보수와는 다른, 새로운 보수를 표방하고 있다. 기존의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새로운 보수를 만들어 나라를 구하겠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라면 이들의 정치적 등장은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얼마나 낡은 모습만 보여왔었던가. 시대가 바뀌었어도 그들이 할 줄 아는 일은 인공기 불태우고 김정일 위원장 초상화 불태우는 것 뿐이었다. 철학도 이론도 비전도 없이 극단적인 행동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보수세력의 대표인양 나섰던 작금의 상황은, 보수적 가치를 갖고 있는 상당수 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었다.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며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양날개론을 인정한다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합리적 보수세력의 출현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뉴 라이트'의 출현은, 정말로 그들이 새롭기만 하다면,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과연 새로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은 낡은(old) 보수와 다른, 새로운(new) 보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일단 꺼림칙한 것은 이들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각별한 관심과 성원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 정치적 지향을 익히 알고 있는 두 신문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이들의 뉴 라이트 운동을 키워주고 있다. 마치 대형기획사가 막강한 홍보능력을 갖고 신인 연예인을 키워주듯이 말이다.

물론 그것은 <조선>이나 <동아>의 의도일 뿐, 이들의 정체성 자체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두 단체의 대표급 인사들이 꺼내놓는 말들은, <동아>나 <조선>의 기대가 헛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예감을 갖게 한다. 언론들은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나라위기의 원인은 대중영합주의에 빠진 정부 여당, 그 지지기반인 시민단체 그리고 노조 때문이다" (서경석 목사)

“현 정부가 정략적으로 개혁과제를 밀어붙이고 있어 국론 분열과 이념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태에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불안까지 가세한 형편이다”(김진홍 목사)


그리고 자유주의연대의 대표를 맡기로 했다는 신지호 겸임교수가 <동아일보>에 쓴 글을 보면 진보적 지식인들에 대한 적의가 넘쳐흐른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한국 좌파 지식인은 일반 범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런 위선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골수 마르크스주의자, 김일성주의자였던 ‘자유주의 486’이 그들의 사기극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11월 17일자)

솔직히 말해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 지금까지의 언행만으로는 분간하기 어렵다. 낡은 진보도 낡은 보수도 다 문제라며 시작하지만, 막상 본론으로 들어가면 결국 상대에 대한 이념적 적대감 속에서 이념대결을 추구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개혁을 추구하는 노무현 정권 때문에 나라가 분열되고 국가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국가적 혼돈의 책임이 결국 진보나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뉴 라이트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이다.

유감스럽지만, 이들의 말은 조금도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결국 달라진 것은 앞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름이요, 달라지지 않은 것은 이념적 공격과 대결의 논리이다. 현실을 보는 틀 자체는 이전의 보수와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장사가 되지않을 때, '신장개업' 팻말을 붙이는 경우들이 있다. 막상 달라지는 것도 없이 눈길을 끌기 위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손님이 들지 모르지만, 내막을 알게된 손님들은 발길을 돌리게 된다.

나의 이런 생각들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합리적인 보수의 출현을 고대한다. 그것은 좋은 보수가 좋은 진보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정녕 새로운 보수가 되겠다면, 노무현 정권의 '국론분열정치'나 비판하고 '좌파 지식인'의 정체나 고발하는 해묵은 레퍼토리말고, '새로운 보수'다운 새 의제들을 먼저 꺼내놓았으면 한다. 그리고 새로운 보수로서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현존하는 수구적 '낡은 보수'에게 먼저 경종을 울리는 철저한 '내부비판'부터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신지호 겸임교수는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요즘 ‘뉴 라이트(New Right)’가 뜨고 있다"고. 그런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뜨고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혹 <조선>과 <동아>에서만 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디 <조선>과 <동아>에서 뜨는 뉴 라이트가 아니라, 국민 속에서 뜨는 뉴 라이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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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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