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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8일(오늘) 오후 6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창립 10주년 후원의 밤' 행사를 갖는다. 지난 94년 9월 창립한 참여연대는 10여명의 상근자와 20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50여명의 상근자와 회원 1만3000여명을 거느린 우리사회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창립 열돌을 맞아 참여연대의 뒤에서 묵묵히 시민운동의 텃밭을 일군 한 사람을 소개한다...편집자주

▲ 강은식 세진인쇄 대표, 참여연대 초기부터 각종 인쇄물을 맡아온 그가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올해로 벌써 10년째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찌이익- 찌이익- 찌이익- 찌이익…."

사무실에 들어서자 잉크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인쇄기는 '찌이익 찌이익' 거대한 굉음을 내며 쉴새없이 종이를 찍어댄다. 종이 상단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다.

"참여연대 10년의 기록"

기계 사이를 잰걸음으로 오가며 꼼꼼히 인쇄 내용을 확인하는 사람. 바로 강은식(53) '세진인쇄' 대표다.

강 대표는 참여연대가 태어난 1994년부터 참여연대의 각종 인쇄물을 도맡아 찍어냈다.

경제개혁센터·사법감시센터·의정감시센터 등 참여연대의 각 활동기구의 백서와 분기별 기록자료, 언론보도용 자료 등 참여연대의 각종 책자가 모두 강 대표의 손을 거쳤다.

'언론에 비친 참여연대' '17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개혁과제' 등 강 대표 책상에 놓인 자료집 표본만도 여럿. 지금은 부수가 늘어나 윤전기가 있는 인쇄소로 일감이 넘겨졌지만 '참여사회'(참여연대가 다달이 펴내는 소식지)를 처음부터 찍어낸 이도 강 대표다. 이만하면 참여연대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만하다.

7일 오후 강 대표를 만나러 을지로 2가에 자리한 세진인쇄를 찾아갔을 때도 그는 참여연대의 '역사'를 찍어내는 데 열중이었다. 참여연대 창립 후 10년간의 역사를 정리한 백서인 '참여연대 10년의 기록'이 그것이다.

"에이… 잡놈들. 아니 또 이틀만에 책을 펴내라고 갖고 오면 어떡혀. 허허"

강 대표가 검은 잉크가 묻은 손가락으로 인쇄물을 넘겨가며 하는 소리였다. 참여연대가 항상 촉박한 마감시간을 주고 일감을 맡기는 데 대한 농반진반의 불평인 것.

구수한 전라도 억양 사이로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피어나고 '잡놈들'이라는 사투리 속에는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참여연대 활동가들'이라는 말보다는 '그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먼저 튀어나오는 강 대표에게 참여연대는 '거래처'이기 보다는 '한 가족'이다.

"벌써 10년이라니. (만들어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어요."

▲ 참여연대 창립 기념일을 앞두고 강 대표는 참여연대 10년의 역사를 정리한 인쇄물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강 대표가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0년. 그간 있었던 에피소드도 많다. 그중 강 대표가 잊지 못하는 일은 참여연대가 주도해 처음 벌어진 '낙천·낙선운동'.

지난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부패 정치인에 대한 당선 반대 운동을 천명하며 정치권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총선시민연대. 그해 1월 참여연대가 주도했던 한국 최초의 '낙천·낙선 명단' 발표를 앞두고 언론은 도대체 어떤 후보가 명단에 끼어있을지 주목했다. 최종 리스트를 확정하기 위한 밤샘 회의가 열리던 서울 모처의 합숙소 담장을 기웃 거렸던 기자도 여럿이었다는 후문.

당시 기자들의 '레이더'를 피해 리스트 출력본이 옮겨진 곳이 바로 세진인쇄소다. 강 대표는 총선연대를 주도했던 참여연대 활동가들의 '보안유지' 당부에 발표 당일 새벽 2시부터 홀로 리스트 도착을 기다렸다. 리스트가 손에 들어온 새벽 4시부터 밤새 기계를 돌려 사상 최초의 낙천 대상자 명단을 인쇄했다.

"기자회견이 아침 10시인가 그랬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까 밤새 기계를 돌렸어도 결국 5분쯤 지각했지 않겠어요? 아주 속이 바짝바짝 탔는데, 그래도 무사히 기자회견 마치고 나니 마음이 놓이더라구요."

사실 세진인쇄소는 70년대 초반부터 소위 '운동권'들 사이에서는 명성을 날렸다. 수사기관의 눈을 피해 만들었던 각종 집회 유인물 대부분이 이곳을 거쳤기 때문.

지난 1969년 인쇄일을 시작한 형님(지금은 고인이 되셨다)이 70년대 초반 우연히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반독재투쟁' 관련 유인물을 맡아 인쇄한 것이 계기가 돼 운동권 사이에 "세진에 가면 찍어준다"는 입소문이 퍼진 것.

강 대표는 "당시 운동권 유인물의 90% 정도는 우리가 찍었을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경찰서도 안 드나든 곳이 없고 형님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 참여연대 초기부터 회원 소식지, 총선연대 자료집 등 강 대표가 찍어낸 인쇄물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금도 참여연대를 비롯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의 단체들이 '세진'의 단골손님이다.

돈 없는 시민단체라고 인쇄비도 적게 받고 항상 마감시간에 임박해 인쇄를 맡기면 얄미울 법도 한데 강 대표는 참여연대와 함께 한 10년이 보람 있었다고 자부했다.

"밤새 인쇄기 돌려서 책을 만들어놓고 나면 '아이고,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이러면서 인사를 해요. 그 한마디 듣고 나면 피로가 싹 풀리지…. 그 맛에 또 일 맡구요."

강 대표는 6년 전부터는 아예 (후원)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가입하게 된 계기도 남다르다.

"인쇄를 하다보면 잘 찍혔는지 확인하느라 내용을 읽게 되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회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이 있지 않겠어요? 1만원, 5만원… 이렇게 후원금 액수도 있고. 단체들이 무슨 돈이 있어요. 그래 그때부터 회원으로 가입하고 많지는 않지만 다달이 후원금을 내고 있지."

이는 강 대표 자신이 시민단체를 왜 시민이 후원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없는 사람, 소외된 자들 편에 서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시민의 권리를 대변해주니 이런 운동은 꼭 지속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강 대표는 "참여연대의 힘은 바로 시민"이라며 "시민이 나서서 시민단체를 후원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이어서 덧붙이는 따끔한 소리.

"영향력이 커졌다고 초심을 잃어버려서는 안 돼요."

얼굴을 마주한 지 30여분쯤 됐을까. "이제 참여연대 백서 샘플을 확인하러 가야한다"며 강 대표는 또다시 잰걸음으로 몸을 옮겼다.

▲ 윤전기에서 방금 찍혀 나온 인쇄물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는 강 대표. 그는 "참여연대가 벌써 창립 10주년을 맞았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개미회원이 바로 참여연대의 힘"
창립당시 200여명이던 회원이 지금은 1만3500여명

▲ 참여연대 엠블럼
참여연대(공동대표 박상증 이선종 최영도)의 엠블럼은 세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는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의 뜻이 담겨있다.

엠블럼의 의미대로 참여연대는 수많은 '개미회원'들이 만들어가는 단체다. 회원 모두가 후원금을 내는 '진성회원'인 점도 자랑거리.

지난 1994년 9월10일 창립 당시 회원은 200여명. 지금은 그 숫자가 1만3500명으로 불어났다. 월 5천원에서 5만원까지 시민들이 쌈짓돈을 털어 보내는 후원금도 다달이 약 7500만원. 이는 참여연대 활동의 가장 큰 밑거름이다.

참여연대의 안진걸 회원참여팀장은 "시민의 후원금은 단체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활동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자 활동가들이 서민의 편에 서서 일하도록 각오를 다지게 하는 정체성의 기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 팀장은 "참여연대의 힘은 바로 시민들로부터 비롯된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비를 내는 민중의 편에 서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10일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참여연대는 8일 오후 6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창립 10주년 후원의 밤' 행사를 갖고 지난 10년의 역사를 기린다.(10주년 기념식 및 회원가입 문의: 723-4251, www.peoplepower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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