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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원자력연구소 내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 전경.
ⓒ 한국원자력연구소
근래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사고가 터졌다. 이 연구소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에서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중수가 누출된 것. ‘최근’이 아닌 ‘근래’ 라고 쓴 것은 사고가 일어난 때가 지난 4월이기 때문이다.

4월의 일을 왜 이제야 거론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대답을 하자면 지난 달에서야 알게 됐다.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이 지역시민사회단체에 사고 사실을 알려와 그나마 일찍(?) 확인이 가능했단다.

사고는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7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이 달 27일 한국원자력연구소(소장 장인순, 대전 유성구 덕진동 150번지) 내 대용량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열 출력 30MW)인 ‘하나로’의 반사체 냉각 및 정화계통 펌프 부근이 터져 방사능을 띤 중수가 새기 시작했다. 당시 중수 팽창탱크 수위가 저하하기 시작해 누수가 되고 있다는 징후를 나타냈지만 연구소 측은 이를 정상적인 작동으로 오판했다.

방사능 오염물질 7일 동안 새 나가

하나로는?

대덕 한국원자력연구소 내에 설치된 대용량 다목적 연구용원자로(열 출력 30MW). 자체 설계해 1994년 12월 건설, 이듬해 2월부터 가동됐다. 하나로는 ‘첨단 중성자 응용원자로’란 뜻으로 20% 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며 년 평균 4000시간을 운전하고 있다. 사고당시 운전출력은 24MW임. 동위원소 생산 및 핵연료, 노재료 개발 등에 활용되고 있다.
6일째인 5월 2일이 되자 중수팽창탱크의 저수위를 알리는 경보가 울렸다. 그때서야 연구소 측은 이상 징후를 느끼고 확인에 나섰다. 확인결과 원자로 굴뚝 부근 공기 중 함유된 삼중수소 농도가 평상시 보다 높았다. 이는 어딘가에서 중수가 새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때서야 연구소 측은 원자로를 정지(5월 3일)시켰다. 그러나 82리터의 방사능에 오염된 중수가 누출됐고 이중 50리터는 이미 굴뚝을 타고 대기 중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하지만 연구소 측이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규제실에 보고한 ‘원자로 일일운전 일지’에는 ‘탱크 수위저하’ 사실은 물론 ‘저수위 경보’에 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특히 5월 3일 ‘원자로 가동중지’를 알리는 일일보고서에는 그 원인이 된 ‘방사능 누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중수계통 점검을 위해서”라고만 보고했다.

이와 관련 연구소 측은 “처음엔 정상적인 작동으로 오판했고 원자로 정지 사유에 대해서는 기준치 미만(삼중수도 농도)으로 미미했으며 과기부 고시규정에 명시된 보고대상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다음 날(5월 4일) 찾아낸 누수부위는 냉각-정화계통 펌프 부근이었다. 고장난 펌프를 교체하면서 배관 양쪽의 밀봉이 제대로 안된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원자로 주변인 독신자 숙소 부근에서 채취한 시료(공기 및 빗물) 분석결과 삼중수소 농도가 과기부 고시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5월 25일). 이때서야 원구소 측은 과기부에 중수누출 사고가 있었음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때는 중수 누수가 있었던 날로부터 무려 한 달이 지난 뒤였다.

▲ 지난 달 26일, 대전지역 16개 단체로 구성된 '원자력연구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 장재완

과기부 보고, 사고 발생 이후 한 달 뒤에야 이뤄져

이후 과기부 홈페이지에 사고 사실이 게재(6월 19일)됐지만 정작 대전시민들에게는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에 의해 7월 초에서야 전해졌다. 뒤늦게 누출사고를 접한 인근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출량이 소량이고 방사능 오염 농도가 낮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다만, 대전충남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는 사고 발생부터 한 달이 지나도록 방사능물질 방출 사실이 전혀 보고되지 않은 점, 연구소 주변으로 수 십만명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연구소 내 핵폐기물 관련 정보 부재, 향후 재발 방지방안 미비 등을 지적하며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이같은 안전관리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는 누출량의 많고 적고를 떠나 방사능 물질이 유유히 원자로를 빠져 나와 대기중에 떠돌았다는 자체만으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삼중수소는?

수소의 동위원소의 하나로 질량수 3인 것. 트리튬 이라고도 한다. 중수에 에너지를 가하면 방사능물질을 띤 삼중수소로 바뀌게 된다.
내부피폭을 받을 경우 유전자, 면역, 신경계통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사고로 인한 삼중수소 농도는 603.37Bq/L로 과기부 고시 배수관리기준의 67분의 1에 불과하지만 평상시 농도(26.94Bq/L)보다는 22.3배가 높은 것이다.

실제 과기부와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도 중수누설 대응절차, 누설감시, 안전운영관리 절차 등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시정조치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환경 시료채취의 경우에도 지난 해 7월 이미 3곳 이상 확대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이번 사고 때에는 단 한 곳(독신자 숙소부근)에서만 채취한 사실도 지적됐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지적에 대한 연구소 측의 입장은 매우 당당했다. 연구소 측은 7월 9일 대전충남녹색연합의 보도자료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전혀 은폐할 의도가 없었고 누출을 인지한 당시에는 지역주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하다고 판단했으며 보고대상도 아니었다”고 답했다.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과기부 시정요구 사항을 이행 중”이라고 답변했다. 진상조사단 구성 제의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조사와 검토가 수행된 바 있다”는 말로 일축했다. 한 마디로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 불필요한 간섭은 말라’는 얘기였다.

이같은 연구소 측의 태도에 시민단체는 지난 26일 ‘원자력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거듭 진상조사단 구성과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연구소측 "격려는 못할망정 범죄자 취급하나”

연구소 측의 답변은 공세적이었다. 연구소 측은 같은 날 ‘시민사회단체대책위 출범에 대한 연구소 입장’이라는 자료를 통해 “경미한 사고였지만 대전시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원자력연구소에는 3000여명이 근무하고 있고 정작 위험하다면 이들이 먼저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연구소 측은 이어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목숨은 하나 뿐”이라며 “오로지 국가원자력기술자립이라는 사명감 하나로 일하는 연구원을 격려해도 부족한데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회풍토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 한국원자력연구소
또 “지난 1979년 미국 TMI 원전사고시 한 지역주민에게 왜 대피하지 않느냐고 묻자 내 이웃이 원전안에서 안전하게 일 하고 있는데 왜 대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 일화를 통한 결론 또한 “만의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피해를 당하는 것이 연구원”이라며 안정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로 끝맺고 있다.

원자력 연구소 장인순 소장은 언론기고를 통해 "연구원들이 이상이 없고 안전하다는 데도 외부에서 위험하다고 과대포장을 하여 난리를 피우는 것은 무슨 저의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연구소 직원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안전망 구축 요구를 ‘범죄자 취급’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생뚱 맞지만 어이없는 사고 뒤에도 '지나친 요구다'‘연구소만 믿어라’는 역 제의는 자부와 자만을 뛰어 넘어 뻔뻔스러운 것으로 비춰졌다.

"사고보다 더 겁나는 건 안전불감증"

대전충남녹색연합 박정현 사무처장도 “연구소 측이 '경미한 사건을 확대한다' '전문가 말을 믿어야 한다' '삼중수소가 뭔지도 모르면서 문제를 제기한다' '안전규제 수준이 세계 최고다' '연구환경을 위축시키고 있다' 등의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사고도 사고지만 이같은 연구소 측의 안전불감증이 더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연구소가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1995년부터 현재까지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가 불시정지한 횟수만 131회에 이르고 있다. 운전원 실수(39건), 계통상 문제(74건), 작업자 실수(5건), 운전미숙(2건)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곳이든 예상치 못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방재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고 가동되고 있는 가의 여부다. 더구나 방사선 비상시 주민과 환경 보호를 위한 비상대응조치의 가동여부와 수행능력은 백번 강조한들 지나칠 리 없다.

장 소장은 거듭 "과학자들을 먼저 믿고 신뢰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하고 있다. 뻥 뚫린 사고대응 체계가 드러났는데도 간섭 말라는 태도 자체가 '안정성’을 더욱 의심하게 한다는 것을 장 소장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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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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