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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때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묻는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답을 하신다. 그러나 나는 오늘 흰지팡이를 눈삼아 길을 가다가 인도에 있는 전봇대에 설치된 철제 박스에 여지없이 이마를 부딪쳐 피를 흘리고 있는 한 시각장애인을 보고 예수께 "선생님, 이 사람이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시각장애인 그 자신의 책임입니까? 아니면 철제 구조물을 설치한 전기회사의 책임입니까?" 라고 묻고 싶다.

우리의 장애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은 위의 성경 이야기에 나타난 제자들의 생각과 같이 그 자신이나 그 부모에게 책임을 돌리는 종교주의적 관점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부모나 자신이 자신이나 가족의 장애를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 '종교주의적 관점'에 의하면 장애를 겪게 되는 이유가 단지 '내 죄' 혹은 '부모의 죄'나 '조상의 죄'로 인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아직도 이런 관점은 우리 사회 곳곳에 암초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위의 성경이야기에서는 제자들의 질문 자체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 그들은 '그 사람이 왜 시각장애인이 되었냐'고만 생각하지 '시각장애인인 그 사람이 왜 그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당하고 구걸하며 사는 불쌍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생각조차 안 한 것이다.

현대 의학의 발달과 함께 재활치료법이 발전하면서 장애라는 것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학적이고 의학적인 문제라고 간주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의학적인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 장애를 인식하는 보편적 관점이 되어왔고 종교주의적 관점을 극복하는 합리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장애에 관한 이 의학적 모델 또한 결국 장애 문제의 소재가 신체적 제한을 가진 그 개인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장애 문제의 원인이 그 신체적 한계로 발생하는 육체 기능상의 제한이나 신경정신학적 결손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의학 모델에서는 장애문제를 의학 처방에 의하여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개인에게 재활치료를 행하고 그 개인의 재활을 위한 불굴의 노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개인이 장애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 개인의 재활치료의 부족이나 더 이상 재활할 수 없는 개인의 신체적 능력의 한계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고 결국 장애문제는 그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로 귀착되게 된 것이다.

장애는 하나의 사회적 상태다

그러나 최근 수 십 년 간 장애문제에 대한 인권문제적인 접근이 시도되면서 그동안 현대사회를 지배해 온 이 장애에 대한 의학적 관점 또한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의학적 모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장애는 의학적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 상태'라는 데 있다.

즉 의학적 처방을 통해 장애를 관리하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발상이며 질병이 아닌 장애를 다루기 위해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려 한 것 때문에 도리어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장기적인 사회적 상태인 장애는 의학적으로 처치 가능한 것도 아니고 더욱이 치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장애는 종교적 혹은 의학적 조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상태라는 사실에 근거한 장애 인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사회적 모델을 탄생케 했다. 대표적인 사회적 모델 중 하나인 미국의학연구원에서 만든 IOM(Institute of Medicine) 모델은 "장애는 개인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의 함수, 곧 한 개인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의 정도와 그 개인의 잠정적인 장애 조건의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함수"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한 개인이 장애를 겪을 잠정적 조건(예-하반신 마비)과 사회 환경(예- 대중교통, 교육환경, 공공건물)이 만나서 장애의 정도(이동 장애, 교육수혜 장애, 공공서비스 접근 장애)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관점이나 모델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장애문제에 관한 정책을 세울 때 어떤 관점이나 모델에 의거하느냐에 따라 그 정책방향이 판이하게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의학적 모델에 의해서는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대부분 접근이 불가능한 환경을 극복해 낼 수 있도록 어떻게 그들에게 재활 치료와 훈련을 시킬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사회 모델에서는 왜 환경이 접근 불가능하며 어떻게 하면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이들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또 의학 모델은 장애로 인해 경제적 곤란을 겪는 사람을 그 곤란을 견디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처방한다면, 사회 모델은 경제적 곤란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한다.

사회 모델에 의하면 개인이 겪는 장애의 문제가 그 개인의 신체적 능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장애인의 필요를 사회 구조 안에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의 책임 불이행은 장애인 개인들에게 단순하게 그리고 임의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집단에게 사회 전반에 걸쳐 제도화된 차별로서 조직적으로 집행해 왔다. 그러므로 사회 모델은 장애인을 주류사회에서 배제하게 하는 환경적 사회적 장벽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모델은 장애와 신체적 결손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규정한다. 신체적 결손은 육체와 정신의 생물학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며 장애는 어떤 인지된 신체적 결손을 가진 사람들의 필요가 채워지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국제연합(UN) 산하의 국제보건기구(WHO)는 장애의 분류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들고자 1980년 ICIDH(International Classifications of Impairment, Disability, and Handicap) 첫째 판을 만든 이후 둘째 판인ICIDH2에서는 정상에 반대되는 불구라는 개념의 장애라는 용어보다는 행동의 제한 정도로 장애를 표현하려는 의학적 모델 안에서 전향적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장애 인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사회적 모델이 자리매김을 하는 추세에 따라 WHO도 그 이름을 아예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s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로 바꾸고 그 분류 체계에 환경이란 요소를 추가하면서 장애를 "개인의 특성과 그 사람이 살고있는 환경적 특성 간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하고 자칭 '생물학적 신경정신학적 사회적(biopsycosocial) 모델'을 만듦으로써 2002년에 그 분류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IOM모델이나 ICF모델은 사회적 모델을 수용하려고 애를 썼으나 근본적으로 그 모델을 만든 주체의 성격이 미국의학연구원과 국제보건기구라는 성격상 문제로 인하여 의학적인 관점 내에서 사회적 모델을 추구하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장애는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결손과는 다른 것이며 장애는 그런 결손적 특성을 가진 사람의 필요를 사회가 제대로 제공하지 못함으로 겪는 차별과 곤란의 사회적 상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장애는 의학적으로 처치나 치료가 가능한 것이 아닌 것이며 이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의학적인 관점은 배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의학은 육체적 정신적 결손이나 질병 자체를 처리하고 치료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문제는 사회 문제이므로 문제 해결의 방안을 그 사회 안에서 그 사회가 책임지고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장애 문제를 사회 문제로 보게 되면 이 글의 서두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자명해진다. 그 시각장애인이 이마에 피를 철철 흘려야 하는 것은 그 시각장애인의 책임이 아니며 그렇다고 그것을 설치한 전기회사만의 책임도 아니라 그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인 그 사회가 그 개인에게 필요한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위험한 시설물을 설치하도록 방치한 결과인 것이다.

즉,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그 날 그 시간 다리를 건너거나 쇼핑을 간 그 희생자들의 책임이 아니며 교량건설회사나 백화점만의 책임도 아니다. 그러한 대형 참사가 나도록 방치하고 부패와 안전불감증 및 책임의식 부재 등으로 병든 한국사회의 책임인 것이다.

그 시각장애인이 철제 구조물에 이마가 부딪쳤을 때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마 그는 조심스럽게 길을 가는데 누군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짱돌로 자신의 이마를 사정없이 가격한 것 같을 것이다. 누가 이 시각장애인의 이마를 가격했는가? 누구인가, 도대체 그가?


장애 인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연재목록(변경가능)

1. 장애는 그 사람이 가진 개성(개인적인 특성)에 불과하다.
2. 장애, 그 누구의 책임인가?
3. 박해받는 소수집단
4. 장애자? 장애인? 장애우?
5. 인간승리가 아니다.
6. 동정사절!
7. 독립운동
8. 장애인운동은 인권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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