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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닛코[奧日光] 유노코[湯ノ湖] 북쪽 기슭. 이 깊숙한 곳 해발 1500m 지점에 유모토 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온천이 바로 우리 부부가 가고자 하는 닛코 여행 코스의 종착지자 가장 기대한 곳이다. 이 유모토 온천은 일본 여행에서 핵심으로 점찍어둔 곳이자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푹 쉬고 싶다는 아내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오쿠닛코에서도 가장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 온천은 1200년 전에 한 스님이 발견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소박한 모습을 품고 있다. 유모토 온천 주변의 원시림은 짙고 푸르며, 유노코 호수가 온천을 감싸고 있다. 이 온천 주변에는 2차 세계대전 후 스키장이 많이 생기면서 겨울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 지나는 사람에게 물으니 그 온천장은 남녀혼탕이란다. 꿈에 그리던 남녀 혼탕이나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다.

나야 이 온천에 얼른 들어가 일본 여인들의 몸매를 감상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내 아내의 알몸을 일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아내가 호기심에 들어가자는 것을 뜯어말리고 입맛을 다시며 다른 온천호텔을 찾아나섰다.

이 혼탕문화는 일본의 전통문화 습속이지만 한국에서 온 부부에게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 나라와 일본을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는 우열 없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낀 일본에서 이렇게 색다른 경험을 하다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도 많다.

아내와 온천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유황 냄새로 가득한 유모토 온천 지역 대부분을 돌아보았다. 유모토 온천의 원천에서는 고산지대의 지표를 뚫고 나오는 유황연기 속의 온천수가 신비한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 유모토 온천의 원천
ⓒ 노시경
닛코 국립공원 안내소에 들어갔더니 젊은 아가씨 2명이 말끔한 국립공원 제복을 읽고 우리를 맞이한다. 내가 이 곳은 모두 남녀 혼탕이냐고 물으니 혼탕인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고 한다. 나와 아내가 혼탕에 대해서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네들도 이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띤다. 혼탕이 쑥스러운 경우에는 수건으로 아랫도리를 가리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아내는 이 맑은 공기 속의 동화 같은 안내소 건물에 살며 주변의 고산식물을 가꾸는 아가씨들의 삶이 무척 부럽다고 한다. 산세 수려하고 유황 연기 날리는 온천지대에서 자연을 벗삼아 일할 수 있는 그 아가씨들은 보통 행운아들이 아니다. 도시에서 자라고 생활한 나는 이 대자연 속에서의 조용한 삶이 답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왠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연을 벗하는 유유자적한 삶에 대한 동경심이 자꾸 깊어간다.

닛코 국립공원 안내소에서 소개받아 들어간 곳은 가장 현대식이고 대형인 한 온천호텔. 이 온천호텔의 카운터를 보는 친구는 순발력이 약간 떨어진다. 처음에는 호텔 손님들만 온천욕이 가능하다고 하더니, 누구에겐가 확인 후에는 온천욕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 같이 온천만 하러 이 호텔에 오는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인가 보다.

호텔 입구에서 유카타(浴衣)를 받아들고 남탕에 들어섰는데, 어찌된 일인지 탕 안에 수건이 없다. 이 곳에 숙박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호텔 방에서 각자 수건을 가지고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아내가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는지 종업원에게 시켜서 남탕에 수건을 보내왔다.

옆의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웃으며 이야기를 건너는데 다 알아듣지는 못하고 긍정의 뜻으로 씩 웃어줬다. 느낌으로 추측컨대 이 온천물이 참 좋지 않느냐는 것이었을 것이다. 온천 내부 시설은 과거에 지었기 때문인지 많이 낙후했지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유황연기 때문에 분위기가 자못 아늑하다.

▲ 유모토 온천에서 용출 되고 있는 온천수
ⓒ 노시경
이 곳 온천물은 우리 나라의 보통 사우나 물과는 다르게 물이 매끈매끈하고 수량이 풍부하다. 코를 찌르는 유황온천의 냄새에 한동안 취해 있었다. 물론 물이 꽤 뜨겁기 때문에 오랫동안 온천물 속에 있지는 못하고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하였다. 걸어다니며 뭉친 다리 근육의 피로가 가시는 것 같다.

아내는 여탕에서 옆자리의 일본 아주머니에게 바디 젤(Body Gel)을 조금만 쓰게 빌려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바디 젤 한 두 방울만 받아서 쓰려 한 아내는 그 아주머니가 젤을 빌려주지 않았다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다. 한국 같으면 그 정도야 누구나 빌려줬을텐데 말이다. 일본인들의 깍듯한 매너에 호감을 가지다가도 이렇듯 융통성 없는 모습들을 보면 답답한 생각도 든다.

온천이 끝난 후 우리 숙소로 돌아가려고 마지막 버스를 기다렸다. 아내는 이 유황온천의 부드러운 물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미 땅거미가 지고 인적도 없는 그윽한 곳에서 아내와 단 둘이 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유노코 호수 변에 다시 내려가서 아내와 이 곳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변의 풀벌레 소리가 진동하는 아름다운 밤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랠 겸 버스 정류소 주변의 한 우동집에 들어가서 우동을 시켰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를 노리던 모기들이 모기 잡는 전기 판에 걸려서 '지지직' 소리를 내며 죽어갔다. 허름한 음식점이었지만 돼지고기 국물 맛이 너무나 시원했다.

아쉬움을 남기고 버스에 올랐다. 온천을 마친 노곤한 몸으로 아내와 손을 잡고 버스에 자리를 잡았다. 이 마지막 밤 버스의 손님은 아내와 나 두 사람뿐이다.

이로하사카(いろは坂)도로의 밤길을 버스가 내려온다. 버스는 지그재그로 내려오면서 심하게 요동을 친다. 이 산길에는 일본 원숭이가 가득한데, 밤길이라 이 녀석들도 모두 곤하게 잠을 자고 있을 것 같다. 어두운 산길 속으로 버스는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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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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