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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나라가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이 되기나 한 나라입니까?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에 중공정부(현 중국)도 했고, 대만정부도 했고, 소련 군정하의 북한도 했는데, 유독 대한민국만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못한 것은 대체 왜입니까?

그리고 그때 제대로 못한 친일파 처단을 60년이 지난 이제 와서도 못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대한민국이 '친일 공화국'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대체 있을 수 있는 겁니까?

일제 때 일본놈들 밑에서 그렇게 고생들 했고, 또 그들 앞잡이로 동족을 괴롭힌 족속들을 린치를 해가면서까지 처단하고자 했던 것이 해방직후 조선인들의 국민감정이었습니다.

대체 이 나라가 '친일 공화국'이 아니고서야...

그런 국민감정을 담아 제헌국회에서 만든 반민법은 지금의 상황에서 돌아보면 참으로 무서운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 사형까지를 규정한 징역 등 신체형은 물론, 재산의 일부 혹은 전부를 몰수하는 경제형에다 사안이 경미한 자에 대해 '공민권 박탈'까지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회에서 논의돼온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모습은 과연 어떻습니까? 수족이 다 잘린, 그야말로 '누더기 형국'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친일파 어느 하나 감옥에 넣자는 규정도 없고, 친일파 후손들 재산 몰수하자는 규정 한 줄도 없습니다. 특히 당사자나 그 후손들의 공민권(선거권, 피 선거권, 공무담임권 등)을 박탈하자는 조항도 없습니다. 반민법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물러터진 법입니다.

단지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의 죄상을 기록으로나마 남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데도 이걸 두고 당사자나 그 후손들의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다느니, 전국민을 친일파로 만들려고 한다느니 하면서 궤변을 늘어놓는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설사 이 법이 통과돼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져 조사작업을 진행해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사람이 하는 일이니 만에 하나 실수가 발생한다고 쳐도), 친일파나 그 후손들의 명예는 그리도 중요하게 다루면서 친일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알권리나 역사청산을 요구하는 국민적 성원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단 얘긴가요?

독일에서 유학중인 강구섭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특별법 제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 앞으로 보낸 공개편지에서 "후대에 신친일파로 기록되고 싶으냐"면서 이 법안의 통과에 노력해 달라고 썼습니다.

친일파 명예는 강조하면서 '친일청산' 국민적 요구는 외면

또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친일규명법인가, 친일규명저지법인가'라는 글을 통해 원안에서 훨씬 후퇴한 이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굳이 이 법이 이 시점에 통과돼야 한다면 최종안이 아닌 적어도 원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법안이 16대 국회에서 이런 만신창이가 된 모양으로 통과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간 이 특별법 제정을 위해 김희선 의원 등 뜻 있는 여러 의원들이 수개월간 노력해온 노고도 알고 있고, 또 법안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현실정치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법제정 정신을 극도로 훼손한 나머지 조세열 사무총장이 기고에서 지적한 대로 오히려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만 주고말 가능성이 불을 보듯 훤한 상황에서 도저히 법 통과를 찬성할 수 없습니다. 마치 죽쒀서 개주는 꼴로 친일파들에게 면죄부 주기 위한 법을 통과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외세지배와 동족상잔 등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에서 치유키 어려운 상처로 남은 과거사 청산 등에 미온적 혹은 적대적인 성향의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국회 상황에서 이같은 법안이 제대로 된 내용과 모양을 갖춘 채 제정되기를 기대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금년 4.15 총선을 통해 구성될 제17대 국회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될 것인지, 또 어떤 당이 국회를 지배적으로 구성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지금 우리 사회 저변에 흐르는 민족문제에 대한 정서를 감안할 때 16대 국회보다는 훨씬 민족적인 국회가 구성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다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다시 부여잡아야 하는 까닭

혹자는 일단 이 정도에서 일단 법안을 통과시킨 후 다음 국회에서 개정, 보완하자는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그같은 취지에 일면 동의하나 현실적으로 이처럼 민감한 법안을 다시 국회에서 개정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혹자는 다음 국회에서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이 정도에서라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도록 해보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주장 역시 일면 타당성이 없진 않습니다. 막말로 다음 17대 국회가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쁘지 않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이같은 현실론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법안이 이 지경이 된 상태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17대 국회가 지금보다 더 악조건에 놓여져 법 제정이 어렵게 된다면, 그건 우리 민족의 불행이죠. 그리고 누구의 말처럼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불행한 역사를 다시 반복할 것입니다.

해방 60년을 코앞에 두고 아직도 친일청산 문제로 입씨름을 해야 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민족정기는 마치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 꼴이 됐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그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가야하는 것은, 애국선열이 피로 지킨 이 땅이며 자손만대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야할 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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