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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업자본의 유입으로 폐관 위기에 몰린 한국 유일의 실험예술극장 씨어터제로. 극장 폐관 위기를 계기로 문화예술인들이 홍대 앞 지역 상업화에 대응해 결집하기 시작했다.
ⓒ 서상일
"홍대 앞, 문화 생산 공간에서 상업 소비 공간으로 변질"

홍대 앞 문화지대는 7, 80년대 가난한 미술인과 음악인들이 작은 작업실을 열기 시작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었다. 90년대 들어 이 곳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디와 언더 문화의 발전소로 자리매김했고, 척박한 한국의 문화 기반에도 불구하고 그간 문화 발전에 나름의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이 곳에도 꾸준히 상업 자본이 유입되면서 예술적 생명력을 잃고 상업소비 공간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지난해 서울시가 문화지구지정 검토를 발표하자 약삭빠른 상업 자본들이 뛰어들어 건물값과 임대료, 그리고 주변의 땅값이 급속하게 상승했다.

그에 따라 그 동안 홍대 앞 문화를 지켜왔으나 높아진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소극장과 갤러리 등 대안문화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며, 동시에 한국의 유일한 실험예술극장 '시어터제로'도 폐관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이에 홍대 앞 문화예술인들은 '홍대앞문화예술협동조합'(이하 홍문협)을 결성하고, 지난 9일 씨어터제로에서 간담회 겸 극장 지키기 후원 기금 마련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는 무세중(행위예술가), 유진규(마임이스트), 오태영(극작가) 등 1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참가했다.

행사는 먼저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소속 작가들의 간단한 개막 공연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위기에 처한 씨어터제로와 인디 문화를 형상화하고, 그것들의 부활을 소망했다.

▲ 극장 내지 인디 문화를 상징하는 벌거벗은 남자 배우가 서서히 죽어가고, 여배우는 "우리는 갈 곳이 없다"며 절망석인 호소를 내뱉었다.
ⓒ 서상일
이어 진행된 간담회에서 홍문협 대표 조윤석(전 황신혜 밴드 활동)씨는 성명서를 통해 "씨어터제로의 폐관 위기는 홍대 인근 지역의 상업화에 따른 지역문화 거점의 존폐 여부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사례"이고, "홍대 앞의 다양한 문화시설과 거점들이 도미노식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그는 "현재 홍대 앞에는 서울시의 홍대앞 문화지구 지정 계획과 맞물려 홍대 인근지역의 지가와 임대료가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치솟고 있으며, 그러지 않아도 어렵게 운영되어 왔던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씩 홍대 앞을 떠나게 만드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서울시의 문화지구 지정 계획이 상업화를 부추겨 홍대 앞 문화를 파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홍대 앞이 문화생산 공간에서 상업소비 공간으로 변질되면서 홍대 앞 문화를 형성하고 있던 다양한 문화거점들이 고사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홍대지역 상업화에 따른 문화 사막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결의했다.

"서울시의 문화지구 지정 계획이 오히려 문화를 파괴해"

이어 발언에 나선 씨어터제로 대표 심철종씨는 극장 폐관 위기에 대해 "가진 사람이 더 가져가겠다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에 분노를 금하지 못한다"며 입을 열고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화가 난다"며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는 "문화지구를 지정해 놓고, 예술가를 쫒아내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면서 서울시의 문화지구 지정 계획에 대해서도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 홍대 앞 문화예술인들 100여명이 씨어터제로에 모여 대처 방안을 모색했다.
ⓒ 서상일
이어 발언에 나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무용씨는 "문화지구 지정이라는 변수 때문에 홍대 앞 지역이 상업화되는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또한 그는 "문화지구 지정으로 씨어터제로 폐관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참석한 문화예술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간담회는 갑자기 서울시의 문화지구 지정 계획 성토장으로 변해 버렸다. 발언권을 얻은 한 문화예술인은 "세계 어디에도 문화지구라는 말은 없다"면서 "그것은 지극히 관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그는 홍대 앞 문화에 대해 "지금 자생적 문화의식이 존재하는가"하고 의문을 나타내고, "지금은 상업밖에 없다"면서 현 상황을 개탄했다.

씨어터제로 폐관 위기와 협동조합 결성 경과

1998년 11월 22일 홍대 앞에서 실험, 예술, 독창을 표방한 최초의 실험예술극장 씨어터제로 탄생. 2004년 2월까지 무용, 퍼포먼스, 연극, 음악 등 3000여회 공연 진행.

2003년 8월 (주)데코로부터 건물을 매입한 김OO씨가 재건축을 위해 세입자들의 퇴거를 요구함.

2003년 10월 씨어터제로 측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정소송 제기

2003년 12월 법정조정에 들어가 월세 100만원을 올리고 2년간 유예기간을 요구하였으나 건물주는 거부함. 홍대 앞 문화지구 지정 예정설과 함께 갑작스런 임대료 인상으로 홍대 앞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씨어터제로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함.

2004년 1월 '홍대 앞 문화 어디로 가나?'를 주제로 모임을 개최하고, 그 결과로 씨어터제로 지키기 운동을 전개하고, 향후 문화지구 지정 등 제반 문제에 공동대처하며, 홍대앞 문화예술협동조합 결성함. / 서상일
이어서 대학로에서 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문화예술인은 "서울시의 문화지구 지정 계획 때문에 대학로에서도 지가와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올라 극장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홍대 앞과 대학로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설명했다. 나아가 그는 "인사동은 실패한 문화지구"라며, "인사동에 정말 있어야 할 사람들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미 다 떠나 버렸다"고 시의 정책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문화지구 지정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아무 것도 주지 못한다"며 상업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시 정책에 강한 불신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앞으로 구청과 시를 대상으로 △씨어터제로의 폐관 위기에 대책을 마련할 것 △최근 홍대 앞 지역의 급속한 지가 상승 등의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반 시설 마련과 지원 방안을 수립할 것 △문화지구 지정에 따른 정책 및 운영안 수립에 지역 문화예술인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또한 이들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사동, 대학로의 문화예술인들과 연대를 모색할 계획이다. 한편 홍대앞 문화예술협동조합에는 유명 가수 강산에와 신해철씨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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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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