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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 날, <조선일보>를 접하는 국민 한 사람으로서 나의 마음은 참담하다. 도대체 한 나라의 언론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될 수 있는가 하는 탄식 때문이다.

11월 29일 이라크에서는 스페인 장교 7명이 목숨을 잃었고, 미군 두 명이 기습공격에 의해 사망했으며, 일본의 고위 외교관 두 명도 매복공격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다음 날 한국인 두 명이 테러공격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다.

<뉴욕타임즈>는 이번 사건을 두고 적극적으로 미국에 협력하는 나라들을 의도적으로 겨냥한 공격이었다고 보도했다.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의 가장 적극적인 협력국인 한국이 이번 사건에 긴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 한국인 피살 전인 11월 30일 저녁 <조선닷컴>에 올라온 사설. 사건 보도 이후 사설에는 한국인 피살 사건을 반영했고, 제목도 <파병은 결국 대통령의 결단이다>으로 각각 바뀌었다.
ⓒ 조선일보
소수의 비전투병만을 보내기로 결정한 일본과는 달리, 한국정부는 사실상 전투병 파병까지 결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파병결정 과정에서 "미군과는 달리 한국의 군대는 환영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 사건은 정부의 결정과정을 다시 한 번 재고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사태일 수밖에 없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세계의 언론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비전투병 파병까지 불확실해졌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즈>는, 이 사건으로 인해 파병반대 주장이 국민 여론과 야당뿐 아니라 자민당 내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어 일본의 파병 자체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나라의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이 사건을 통해 한국의 파병이 가져올 위험을 다시 한 번 냉철하게 판단함으로써 정부측에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건 다음 날 <조선일보>는 어처구니 없게도 조속한 파병을 요구하는 사설을 실었다.

12월 1일자 사설 <파병은 결국 대통령의 결단이다>에서 "이런 위협 때문에 국가적 신의와 위신이 걸려 있는 파병 결정이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전제하고, "미국측에 '3000명선의 추가 파병'을 약속한 지 보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에 따른 한·미 간 후속 논의조차 없었고, 국회에 언제쯤 파병 동의안을 제출할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고 비판하면서 조속한 파병을 요구했다.

<조선> 사설 '파병은 결국 대통령의 결단이다' 바로가기

한 마디로 자국민들이 어떤 피해를 입든 미국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전날 일본 외교관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일 자위대 파병 늦어질 듯"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일본인의 사망이 파병을 늦추게 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하면서,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 피해를 입든 미국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 신문이 한국의 국민과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는 대미관계는 합리적인 '동맹국'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면, 이는 동맹이 아니라 굴종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국익'이라는 명분 하에 언제나 일방적 복종을 요구해 왔다.

미국측은 거듭해서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이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런 공식적인 입장보다는 미국이 차마 말하지 않는 무의식적인 욕망까지 알아서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은 럼스펠드 장관이 한국측의 파병안을 수용했을 때조차, "럼스펠드가 고맙다고는 했는데…", "말 많은 럼스펠드, 시큰둥하게 '감사'"라고 말하며 그를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한 한국 정부를 힐난했다.

최소한 대미관계에서 <조선일보>는 '국익'을 객관적 차원에서 진단할 합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지난달 27일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의 미군부대를 예고 없이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미국 현지 언론은 그의 돌발적인 행동을 비판적으로 논평했다.

미국 주요 언론은 이에 대해 "부시 특유의 정치방식"이라고 지적하며, 부시가 지난 5월 1일 전투기를 타고 항공모함에 내려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던 '정치쇼'의 연장 차원에서 이번 방문을 다루었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의 일본병 지원을 고무하는 <조선일보>의 기사
ⓒ 조선일보
그러나 <조선일보>는 "부시, 눈물 흘리며 '같이 식사합시다'"는 제목을 뽑고 부시의 방문을 미화한 기사를 실음으로써 특파원들과 데스크의 객관적인 대미보도능력 자체를 의심케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달 14일, "모술지역에는 혼란·테러 없어요"라는 특파원의 '심층기사'를 내보냈다. 이틀 후, 이 곳에는 미군의 헬리콥터 두 대가 추락해 22명이 사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잘 알고 있듯, 현재 모술은 반미 저항 세력 중심지로 이라크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이 보도는 언론이 현실을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기억될 것이다.

<조선일보>가 정부의 파병 결정을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국익을 위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후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도 파병 결정이 늦어지거나 기대보다 소수의 병력이 거론될 기미가 보이면 "코드정치"니, "국론분열 조장"이니 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한국의 대미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담론은 소위 '현실론'이다. 냉혹한 국제현실로 인해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으며" 어느 경우든 미국의 요구에 "가타부타 할 것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조선일보>가 유포하는 '우방론'과 '국익론'이다.

이 논리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는 강대국의 힘과 정의를 동일시하는 이 신문의 주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

▲ <조선일보>의 한국인 지원병 사망보도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으로 전장에 나갔다가 시신으로 돌아온 한국인 청년을 두고 "지원병 이인석군 최초로 영예의 전사"라고 치켜세우며 다른 이들을 향해 "성전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는 지원병"이 되라고 부추겼다.

공연히 한 신문의 과거 행적을 들추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독자들을 향해, 왜 이 신문의 과거사에는 분개하면서 현재 벌이고 있는 행적에는 무관심하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이 신문이 즐겨쓰는 용어 가운데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것이 <조선일보>의 윤리의식 부재를 설명하는데 더 없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해 관계를 좇는데 있어, 옳고 그르고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보다 더한 "모럴 해저드"의 사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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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