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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17일자 '한길사는 이오덕·권정생 선생 앞에 사죄해야'란 제목의 기사에서,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 출판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이 글은 이 책의 출간을 위해 노력했던 주중식 시민기자(경남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가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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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는 이오덕·권정생 선생 앞에 사죄해야

요 며칠 동안 잠을 좀 설쳤고, 오늘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좀 무거웠다.

내 앞에 일어나는 일은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 괴로운 일이라도 잘 받아들이겠노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참 어렵다. 그래서 잠을 설치고 머리도 무거운 거다.

▲ 한길사에서 낸 송건호 전집을 살펴보시는 이오덕 선생
ⓒ 주중식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권정생 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서 낸 책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세상에 나왔다. 책이 나오자마자 여러 일간 신문에 이를 소개하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나는 참 반가웠다. 왜냐하면 내가 거들어서 나온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가움으로 기쁜 마음은 잠깐이고, 이번에는 아주 괴롭고 힘든 일이 벌어졌다. 이 책은 출판사가 지은이 허락도 없이 낸 책이라서 더 이상 팔지 못하도록 거두어들이기로 하였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런 기사가 나오기 전에 나는 누군가가 인터넷신문에 글을 올려서 세상에 알리려 한다는 말을 듣고,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여 그게 누구한테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올리지 않도록 말려보았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참 서글펐다.

사실 이 책은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책으로 낼 준비를 다 해두셨고, 권정생 선생님한테 어느 정도 얘기도 해두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은 내가 나서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원고 교정에서 쪽 배치하는 일까지 선생님이 하시던 것 보고 배운 대로 실제로 내가 하였다.

책 머리에 붙이는 권정생 선생님 편지도 내가 골라 넣었고, 내가 책 끄트머리에 몇 자 적은 것도 이 책을 이 세상에 내놓고 싶은 내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썼다.

책 끄트머리에 적지 않은 얘기를 조금 보태자면 이렇다.

▲ 2003년 1월 11일 이오덕 선생을 방문하는 한길사 김언호 사장
ⓒ 주중식
지난 1월 10일, 충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참교육실천보고대회에 나는 초등 국어 교과 자문위원으로 참석하였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오덕 선생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 때 마침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도 이오덕 선생님을 뵈러 왔다가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김언호 사장님은 이오덕 선생님께 출판 쪽 일은 두 가지를 부탁드렸다. 한 가지는 지금 나온 이 책을 출판하자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선생님 건강이 허락하실 때에 꼭 자서전을 쓰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언호 사장님은 아주 간곡하게 부탁드렸고, 이오덕 선생님은 둘 다 안 된다고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 때 이오덕 선생님께서 둘 다 들어주시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원통하게도 둘 다 못 이루시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그 한 가지 일은 이오덕 선생님 큰아드님과 의논하여 내가 맡아서 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아마 내가 그 날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면 감히 내가 이 책 내자고 나서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다.

이렇게 해서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란 책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창고 안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세상 구경도 한 번 못하고 쓰레기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를 하늘이 내려보내 주셔서 이 세상에 왔다고 믿고 있다.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뭔가 좀 모자라게 태어났건 떳떳하지 못한 아이로 태어났건 한 가지로 모두 귀한 하느님 작품이고, 소중한 목숨이라고 믿고 있다.

하늘이 내려 주신 하느님 작품을 업신여기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므로 함께 도와가며 살아가야지, 내다버리거나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어서는 안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흔히 책을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말을 자주 쓴다. 책도 목숨 붙어있는 짐승이나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나는 이번에 나온 책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하늘이 우리들한테 내려주신 선물이라 여긴다.

그래서 이 책을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는 것은 하늘이 주신 선물을 내팽개치는 못난 짓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 하건,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가두어 놓아야 할 목숨이 아니라, 참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 권씩 구해서 늘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할 백성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그 옛날 재판정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사람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권정생 선생님은 내가 살아가는데 바른 길을 일러주시는 스승이시다. 물론 이건 이렇고 저렇고 마주 앉아 길게 말씀해 주신 일은 없다. 게다가 선생님께 좀처럼 전화도 걸지 않는다. 그러나 선생님 안부가 궁금하면 살짝 한 번씩 찾아 뵙기는 한다. 선생님 힘드실까 싶어 그냥 마당 한쪽 돌덩이에 잠깐 앉았다가 돌아온다. 안동 조탑동 빌뱅이 언덕 아래서 혼자 외롭게 살아가시는 것으로 큰 가르침을 주시는 어른이시다.

▲ 이오덕 선생과 이야기 나누는 한길사 김언호 사장(왼쪽)
ⓒ 주중식
이번 일도 중간에 조금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그렇지, 나는 내가 이 책을 내서 권정생 선생님이 괴로우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문에 난 책 소개 글 보고 관심 있으면 책 사서 읽고, 본 받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렇게 본 받아 살아가면 될 텐데, 쓸데없이 헐뜯고 시비를 걸고 그러는 바람에 선생님은 더 괴로우셔서 그 책 거두어들이라고 하셨을 거라 믿고 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 서로 돕고 도움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밥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누가 수고했는지 알고 고마워할 줄 알고 살기만 해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밥을 먹어서 몸을 지탱할 수 있다면, 책을 읽어야 참 마음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다. 밥이 고맙듯이 책이 얼마나 고마운가.

농부가 있어서 밥이 입에 들어올 수 있다면 책은 출판사가 있어서 우리 손에 들어온다. 그런 점에서 내가 거들어서 나온 책 때문에 온갖 좋지 않은 말은 출판사가 다 듣고 있는 걸 보고 나는 몹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참으로 미안하다.

한길사는 군사 독재 시절에 민주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좋은 책을 많이 펴낸 출판사다. 지금 풍조가 사람들이 가뜩이나 책 안 읽고 편하게 즐기며 살아가려고 하는 판인데 이런 책을 내어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한길사에 함부로 손가락질을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이번에 책 낸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든 차라리 나한테 욕을 하고 꾸짖어주기 바란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책 꼬리말

책 끄트머리에

위안과 용기를 주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권정생)

부디 건강에 최선을 다하시도록 바랍니다. 우선 충분히 약을 복용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도 선생님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이오덕)

그저께는 쑥을 뜯어와 손수 밀가루를 반죽해서 쑥나물 부침개를 구워 먹었습니다. 앞으로는 산나물도 뜯어와야겠습니다. 찬거리가 없기도 하지만, 깨끗한 산나물을 먹으면 한결 봄기분이 납니다.(권정생)

손수 나물을 뜯으시고 반찬을 장만하시는 선생님의 생활이 눈물겹기도 하고, 성스럽게도 여겨집니다.(이오덕)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73년 1월부터 권정생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문학, 교육, 자연, 인간, 통일, … 살아가는 온갖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편지는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권정생 선생님의 아픔을 달래고 살림을 보살펴 드립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병들고 가난하여 외롭게 살아가면서도 그 아픔과 외로움을 이겨내며 아름다운 작품을 써서 그 사랑에 보답하십니다. 이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편지는 소식을 알리고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편지는 그런 구실만 하는 게 아니라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두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은 기적이라 할 만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권정생 선생님 동화와 소설, 시 같은 문학 작품은 물론 살아가시는 모습 그 자체를 진실한 삶을 찾으려는 모든 분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십니다. 권정생 선생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사람이 백 명, 아니 단 한 명이라도 나오면 이 세상이 맑아질 것이라고 믿으셨던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 묶음을 책으로 내놓으실 생각을 하시고, 벌써 여러 해 전에 이 편지 묶음을 출판사에 넘기면서 편지 하나 하나에 제목까지 다 붙여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편지 묶음은 출판사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권 선생님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일이 될까 매우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에도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권정생 선생님은 서울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가는 이내 그 말을 거두어 버리십니다. 그러면 이오덕 선생님은 춥거나 덥지 않을 때 함께 가보자고 다시 권하시고, 권정생 선생님은 몸이 안 좋아서 그만 안 가기로 했다며 사양하고 맙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님은 또 참고 기다리다가 다른 일로 해서 권 선생님이 서울에 가보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아마 이 편지 묶음이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책으로 나오지 못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저께 제 아내가 고등학교 때 동무들을 만나러 서울에 다녀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오랜만에 만난 동무들하고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너희들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 들어 보았냐?" 하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다는 동무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래서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완전히 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구나 싶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가는 길이 다르면 딴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이 열어놓으신 세상은 분명히 딴 세상입니다.

저나 제 아내도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 책을 구해 읽으면서 딴 세상을 알게 되었지,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만일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역시 딴 세상 아닌 저 쪽에서 그게 잘 사는 것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이 책에서 어떤 분은 영혼의 깊은 사귐을 맛보실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분은 한국 아동문학의 숨은 역사를 살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에 큰 아픔을 지니고 외롭게 살아가는 분은 큰 위로를 받으실 터이고, 남을 위해 살아가려는 분은 참된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무튼 이 책은 읽는 분에 따라서 그 맛을 느끼고 얻는 것이 다 다를 줄 압니다.

이 책이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모든 분들에게 한 줄기 샘물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오덕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책 내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책 내는 일에 제가 좀 거들었고, 두려운 마음으로 책 끄트머리에 몇 자 적었습니다. 그 동안 애써주신 한길사 식구 여러분께 두 분 선생님을 대신해서 고마운 인사 드립니다.

2003년 10월 20일 / 주중식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 - 아주 특별한 노래상자

이오덕.권정생.임길택 지음, 백창우 작곡, 보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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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으로 지내왔고, 지금은 농사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려고 틈틈이 글을 쓰고,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관심이 있습니다. 온 누리 사람들하고 통하는 누리말 esperanto를 배우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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