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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잠겨진 철문 안에서 발견된 한 여성 수용자
ⓒ 강성준
"철컥." 열쇠가 채워졌던 철문이 열리자 퀴퀴한 냄새와 냉기가 쏟아져 나온다. 창문도 없는 방안에는 담요 하나를 뒤집어 쓴 여자가 문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왜 여기 갇혀 있습니까? 나가고 싶습니까?"

11월 13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운동사랑방, 한나라당 인권위는 언론사 취재진과 함께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은혜기도원(원장 전월순)을 현장 조사했다. 조사단은 숙소, 식당, 교회 등 수용 시설을 돌아 보고 수용자 중 80여 명을 대면 조사해 열악한 수용 시설과 감금·폭력 등 인권 침해 실태를 확인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5일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됐다.

82년 설립된 은혜기도원은 정신질환자와 알콜중독자를 수용하는 시설로 13일 현재 131명(남자 101명, 여자 30명)을 수용하고 있다. 기도원은 보호자가 보내 주는 매달 40만 원의 위탁금으로 운영된다. 원장의 아들이 총무를 맡고 기타 직원들도 가족들이 나눠 맡는 전형적인 '족벌 운영' 시설이었다.

수용자 중 방장 뽑아 수용자 통제 관리

기도원은 수용자 중에서 관리자와 방장을 뽑아 수용자들을 통제하고, 수용자가 규칙을 어기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관리자가 벌칙을 가하도록 하고 있었다. 조사 당일 아침에도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2명이 관리자에게 폭행당했다는 증언이 면담 조사에서 나왔다. 조사단은 시설 시찰 중에 얼굴에 상처를 입은 수용자들이 방에 누워 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대면 조사에서 ㄱ씨는 "예전보다 구타가 더 심해져 사람들이 보는데도 공공연하게 욕하고 때린다"며 "방장들도 공공연하게 구타를 일삼는다"고 증언했다.

예배에서 졸거나 규칙 어기면 '보호관찰실'행

벌칙 중에서 수용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보호관찰실'의 감금. 남자 숙소 한편에 마련된 9개의 보호관찰실은 쇠창살로 된 문을 밖에서 잠그도록 되어 있었다. 수용자들은 예배 시간에 졸거나 사소한 규칙을 어기게 되면 하루에서 일주일까지 가두고 '금식'을 명분으로 밥도 주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기도원 측은 "심한 발작의 경우 등 상태가 안 좋은 경우에만 집어 넣고 한두 끼 금식 기도를 하는 정도"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면 조사에서 99년 입소한 ㄴ씨는 "수용자들이 집단 탈주했던 99년에는 금식을 3일 이상 안 시키고 구타도 드물었는데 관리자가 바뀐 요즘에는 5일 이상 금식시키고 구타도 사람들이 보는데서 이뤄진다"고 증언했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사람들

▲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은혜기도원 외부 전경
ⓒ 강성준
은혜기도원은 관리 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미신고 시설'이었다가 지난해 복지부 지침에 따라 2005년 7월까지 요건을 갖춰 양성화하는 조건으로 신고한 '조건부 신고 시설'이다. 정기적인 정신과 의사의 검진이나 치료도 없다. 작년에 입소한 ㄷ씨는 "징역 가면 만기일이 있지만 여기서는 보호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영원히 나갈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울분을 토했다.

게다가 수용자들의 입소 서류에는 진단서가 누락된 경우도 있었으며 그나마 있는 진단서도 입소 시기와는 상관없이 1차 조사 직후인 9월에 집중되어 있었다. 또 조사단과의 대면 조사에 참여했던 수용자가 기도원 수용자 명단에는 없는 경우가 10여 건 발견되기도 했다. 또 이곳에서는 외부와의 편지도, 전화 연락도 맘대로 할 수 없다. 편지는 봉하지 않은 채 관리실에 맡기도록 하고 전화도 관리실에서 원장이나 총무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

현재는 조건부 허가 시설, 개선하겠다

조사단의 문제 제기에 대해 원장은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조건부 허가 시설'이란 점을 감안해 달라"며 "시설을 확충, 정식 허가를 받은 시설로 바꾸고, 나머지 시설은 개방기도원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는 "지난 4일 경기도 양평 성실정양원 조사에 이어 기도원을 빙자해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사례가 또 발견됐는데도 2005년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시급한 대책을 촉구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박숙경 팀장은 "민간의 기습 조사에 놀란 복지부에서 일제 실태 조사를 곧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시군구로부터 자료만 취합받는 식으로는 '실태'를 알 수 없다"며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 합동의 실태 조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조사단은 다음 주 기자 회견을 통해 '조건부 신고 시설' 조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할 예정이다.

한편 18일 은혜기도원 측은 문제의 보호관찰실을 폐쇄하고 여성 수용자들을 시설이 나은 방문자 숙소로 옮기는 등 일부 문제점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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