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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원혼이 서려있는 귀 무덤[耳塚:미미즈까]은 일본 쿄토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시는 풍국신사(豊國神社) 앞에 있다. 이 신사 앞에서 길을 건너 몇 발자국을 가면 미미즈까가 자리잡고 있다.

▲ 조선인 2만 여 명의 잘린 귀가 묻혀있는 교토 풍국신사 앞 귀무덤 모습
ⓒ 이상율
한 길가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입구에 서 있는 게시판에는 일본어와 한국어로 이 무덤에 대한 슬픈 역사를 잘 설명해 놓았다.

이 무덤은 16세기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오토미 히데요시가 대륙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이른바 분로쿠 게이쵸 역(한국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1592-1598)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에 조선 군인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이러한 전공품은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이 곳에 매장되어 공양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 안내판. 입구에 서있는 안내판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귀무덤의 유래를 자세하게 적었다.
ⓒ 이상율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귀 무덤(코 무덤)의 유래다. 귀 무덤은 사적 오도이 토성 등과 함께 교토에 현존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관련 유적 중 하나이며 무덤 위에 세워진 오층석탑은 1643년 그려진 그림지도에도 이미 모습이 나타나있어 무덤이 축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건한 것으로 추정한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써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 무덤(코 무덤)은 전란 하에 입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그대로 보여 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왜군들은 전리품으로 목을 베어 가다가 그 수가 너무 많아 대신 귀와 코를 베어 그것을 소금에 절여 크기를 줄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전리품으로 받쳤다.

후세에도 풍신수길의 업적과 영광을 기리기 위해 풍신수길을 신으로 받들고 있는 풍국신사 옆에 만명이 훨씬 넘는 조선인의 코 무덤을 만든 것이다.

그 후 풍신수길은 밤마다 조선의 혼령이 괴롭혀 잠을 이루지 못해 공양탑을 만들고 위로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덤 위에 5층 석탑을 만들었다.

▲ 이총어린이공원. 귀무덤 옆에 어린이공원을 세워 일본인들의 호전성을 가르치는 것 같아 불쾌했다.
ⓒ 이상율
귀(코)무덤 옆에는 이총(耳塚) 어린이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의 공원을 하필 귀 무덤 옆에 두었을까. 마치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고 일본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쾌했다.

일본의 지방자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이곳을 방문한 여수시민협 일행은 조상의 원혼들이 깃들여 있는 귀 무덤 앞에 섰다. 그리고 묵념을 올려 이들을 추모했다.

제단에는 국화꽃 두 다발과 색종이로 만든 종이 학 두 다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국화꽃 리본에는 한국보이스카웃, 종이 학 한 다발에는 일본어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쓰였고 나머지 두 다발은 이름조차 없다.

▲ 속죄봉사. "부끄러운 역사를 속죄하기 위하여 열심히 주변 청소를 하고 있다"는 89세의 스미즈시로 노인
ⓒ 이상율
마침 시미즈시로(89)라는 일본인 노인이 열심히 귀 무덤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왜 귀 무덤 주변을 청소하느냐고 물었다. 그 노인은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노인을 보며 일본인 중에서도 양심이 실종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위로가 됐다.

일본의 귀 무덤은 교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카야마현 비젠시 교외에 천비총(千鼻塚)이라는 코 무덤이 있었다. 정유재란 때 왜병들이 전리품으로 베어간 수많은 선조들의 코 가운데 2만 여 개가 묻혀있던 곳이다.

천비총은 정유재란 때 1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던 우키다 히데이에가 조선인들의 코와 귀를 잘라간 데서 비롯된다. 잘라간 귀와 코 가운데 귀는 교토의 히데요시에게 바치고 코는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기 위하여 영지인 오카야마로 가져온 것이다.

이 코 무덤은 히데이에가의 중신 나카후나 기이의 깃대잡이로 종군했던 천민출신 로쿠스케에게 만들도록 하였으며 천비영사라는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85년 부산외대 김문길 교수가 발견, 92년 부산 자비사의 박삼중 스님과 함께 코 무덤 한국 이장을 추진해 왔으며 안치 장소를 물색 중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여수가 반대하자 93년 11월 임란 당시 격전지중의 하나였던 전북 부안군 감교리 호벌치로 이장 안치했다.

4백 여 년 간 원혼으로 방황하던 선조들의 영혼이 고국으로 돌아와 편히 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교토의 귀 무덤은 아직도 풍국신사의 그늘아래 놓여 있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영령들을 돌아보지 않는 후손들을 원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귀 무덤이 조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인데….

▲ 묵념. 여수시민협 방문단 일행은 선조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참배했다.
ⓒ 이상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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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기자임. 80년 해직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밥벌이 하는 평범한 사람. 쓸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것에 대하여 뛸뜻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항상 새로워질려고 노력하는 편임. 21세기는 세대를 초월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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