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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후배는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로또 복권 같은 거 사는 사람들 정말 한심해요. 그 돈 있으면 차라리 어디다 기부를 하지."

모처럼 후배녀석을 만나 술을 사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차에 나온 말이었다. 비록 나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배가 생각하는 한심한 사람의 부류에 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처한 표정을 가리고자 연거푸 술을 마셨다.

몇 주전 꿈속에서 숫자 6개가 선명하게 보인 적이 있었다. 잠결에도 이것이 바로 로또 복권의 여섯 개 숫자가 아닌가 하여 잊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렷하게 생각나는 숫자 6개를 적고 희희낙락했었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대박의 꿈이 아닐까?' 아닐 수도 있다는 이성적인 생각이 언뜻 들었으나 당첨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로또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 꿈에 숫자가 보였다거나 돼지꿈을 꾸고 당첨되었다는 수기들이 올라와 있었다. 기대감은 거의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오려나? 싶어 뿌듯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만약 1등에 당첨되면, 아니 2등, 3등만 해도 어딘가 싶어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허황된 상상이다 싶으면서도 그 상상이 가져다주는 설렘은 컸다. 어서 토요일이 되어 로또 복권 번호가 발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복권을 산다는 일이 사실은 영 거북했다. 평소 아버지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오는 복권을 보고 혀를 차시는 어머니와 그에 맞장구를 치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와 똑같이 복권을 산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얼마나 실망하실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에서 보인 숫자 6개의 유혹은 그런 생각을 아주 쉽게 무마시켰다.

만약 당첨만 되면 아버지, 어머니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게 해드릴텐데. 굴러온 복을 찾아먹지 않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속으로 합리화시키기 며칠. 마침내 토요일 오후 복권을 사러 편의점으로 갔다.

젊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달랑 복권 시트만 달라기가 민망하여 이것저것 물건을 산 다음 우연히 복권 시트를 발견한 척하며 그냥 심심풀이로 한다는 표정으로 복권 값을 치렀다. 편의점을 나오는데 오늘밤을 기점으로 내 인생도 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꿈에서 보였던 숫자 6개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최소한 만원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매우 소박한 기대마저 물거품이 되니 허무한 것을 떠나 스스로가 창피했다. 행여 식구들이 볼까봐 복권 영수증을 가방 주머니에다 구겨 넣고 책상 앞에 망연히 앉아 있었다.

차라리 복권 살 돈으로 시원한 맥주나 몇 병 사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시는 헛돈을 쓰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런 로또에 얽힌 사연을 몰래 간직하던 차에 후배를 만났던 것이었다. 후배의 말이 꼭 내 모습을 보고 한 것 같아 속으로 무척 민망하였다.

그 후배를 만난 뒤 며칠이 지난 밤. 이번에는 생전 처음 돼지꿈을 꾸었다. 어딘 가로 막 쫓기는 꿈이었는데 어쩌다 찾아간 곳이 돼지 농장이었다. 게다가 인분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꿈 해몽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돼지와 인분은 재물운을 뜻한다고 풍문으로 들었던 바. 이게 웬 횡재냐 싶어 꿈속에서도 적잖이 놀랐다. 눈을 떠보니 토요일 아침이었다.

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미 지난번에 숫자가 꿈에 보였어도 모두 '꽝'이었고 또한 후배 앞에서 느낀 민망함도 있었기에 그저 개꿈이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었다. 그렇지만 로또 당첨에 대한 확신이 꾸물꾸물 솟아올랐다. '이번에는 돼지꿈인데다 인분이 범벅된 돼지들이었으니 분명 횡재할 운이다.'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복권을 사라는 획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그 편의점을 찾았다. 그다지 쓸데없는 물건들과 함께 복권 시트를 골랐다. 지난번에 보았던 아르바이트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아는 척을 하는 눈빛이었다. 쑥스런 기분에 눈을 돌렸다. 입구에는 너댓 명의 아저씨들이 열심히 복권 시트에 표시를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복권 추첨 시간만 기다렸다. 해야할 일이 있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드디어 추첨의 시간. 첫번째 숫자가 영수증의 숫자와 일치했다. 오호 드디어 꿈이 맞나보다 하는 순간이었다. 눈동자에 힘을 주고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그렇지만 차츰 눈에 들어갔던 힘이 약해지고 종내 내 손에 들려 있던 복권 영수증은 가방 주머니 속으로 구겨져 들어갔다. 돼지와 인분의 만남은 숫자 2개의 일치로 끝이 났던 것이었다.

후배 녀석이 나에게 복권 사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그 녀석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 역시 나에게 매주 복권을 사시는 아버지 흉을 보셨던 것도 아들은 아버지처럼 허황된 꿈을 꾸지 않을 것임을 믿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그들이 나를 보기에 복권 같은 것은 사지 않을 사람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사행성을 조장하는 것들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아왔던 터이다. 아버지의 지갑에 언뜻 보이는 복권들을 볼 때마다 '차라리 복권 사실 돈으로 가족들이랑 외식을 한 번이라도 더 하시는 것이 나을텐데' 싶어 속상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왜 성실하게 돈을 모을 생각은 안하고 공돈을 바라느냐고 힐난하시곤 하셨다. 그런 것이 바로 도둑놈 심보라고 아버지를 심하게 몰아붙이기도 하셨다. 그때 옆에서 암묵적으로 거들었던 아들 역시 일확천금에 기대를 걸고 복권을 산다는 사실을 아신다면 어머니께서는 땅이 꺼지듯이 한숨을 내쉴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의 힐난에 아버지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복권 사는 것도 일종의 재미라고 말씀하셨다. 단 돈 몇 천 원으로 일주일치 기대감을 사는 것이라고. 일주일에 복권 사느라 버리는 단 돈 몇 천원을 일년만 모아도 몇 십 만원은 될 것이라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씀에 타박을 놓으셨다.

비록 어머니의 말씀이 이치적으로 합당하지만 속으로는 아버지의 심정도 이해되었었다. 성실하게 일해도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복권의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로나마 잠시 위로를 받고 싶으셨을 아버지의 소시민적 애환이.

꿈에서 숫자 여섯 개를 본 것도 사실은 내 안에서 로또 당첨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로또 복권을 사고자 줄지어 있는 아저씨들을 따가운 시선으로 보면서도 복권 당첨자들의 기사를 찾아보았던 내 자신 역시 일확천금에 대한 무의식적 동요가 분명 있었던 것이다.

꿈에서 숫자가 보여 로또를 샀더니 당첨되었더라. 돼지꿈을 꾸고, 인분꿈을 꾸고 로또를 샀더니 당첨되었더라는 식의 기사를 무심코 흘려 읽었던 것이 아니었다. 매주 복권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걸 통해 인생 역전을 시켜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차마 외부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에 사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그 외부의 시선을 무마할 수 있는 핑계를 꿈에서 찾았던 것은 아닐까?

꿈이란 것도 일종의 무의식의 표현이기에 내 안에서 얼마든지 조작되어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평소 전혀 생각이 없다가 정말 꿈에서 돼지를 본다던가 인분 꿈을 꾸면 그것이 길몽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돼지꿈이나 인분을 보는 꿈을 꾸면 복권 당첨이 된다더라'는 식의 의식을 강제하다가 꾼 꿈은 진정한 길몽(?)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복권에 관한 좋은 꿈을 연이어 꾸었지만 손에 남는 것은 없었다. 복권을 사고 마치 당첨될 것이 확실한 양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런 꿈을 꾸었을 때 내 손길이 복권을 향해 가지 않을 것임을 자신하지 못하겠다. 아직도 로또 복권 당첨 수기에서 꿈을 꾸고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 그런 경우에 처했을 때. '현실에서 성실하게 살 생각은 하지 않고 삶의 요행을 바라는 모양이구나'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여 그렇게 요행으로 얻은 것들로 인해 오히려 불행하게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스스로 환기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길몽의 진정한 효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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