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남대문 시장 한 가게에서 팔고있는 각종 군용 물품들. 대부분 '국방'마크가 찍혀있는 진품들이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엄청난 국방비에 비하면 사소(?)하지만 한국 군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민간 시장에 나도는 군용 물품이다. 군용품을 군인이 아닌 자에게 판매하거나 이를 위해 보유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해지게 되어 있지만 버젓히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문제는 그 물품 대부분이 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데 있다. 국방부는 군인 숫자에 따라서 주문을 해서 납품받을 것이다. 그런데 민간 시장에 군용물품이 나돈다는 것은 누군가 군용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든지, 아니면 필요한 양보다 과잉 납품을 받았든지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서울 남대문 시장만 해도 군용 보급품을 사들이거나 판매하고 있는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이 취급하는 품목은 군복·군화·침낭·전투모자·탄띠·군용 모포·물통 등 거의 모든 군용 물품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겉모양만 본뜬 모조품들도 섞여 있지만 실제로 진품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른바 'A급' 새 제품들이다.

진짜 군용 물품들은 모두 군부대에서 빼돌려진 것이라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중간상인이 군부대에서 물건 받아온다"

"요새 보급품 부족하지 않다… 구타도 없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난 병사들의 이야기

지난 1일 오전 서울 동서울터미널. 휴가 나오는 병사들을 상대로 현재 군부대에서 보급품은 잘 지급되는지, 구타는 없어졌는지 등을 물어봤다. 결론은 보급품 지급은 잘 되고 있고 구타도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는 1988년 6월부터 1990년 9월까지 경기포 포천에 있는 오뚜기 부대에서 근무했다. 벌써 13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당시의 군수품 보급 부족과 구타 문제는 아직도 '군대'하면 자동적으로 머리에 떠오른다. 이 정도로 인상이 강하게 박혀 있고 이는 다시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의 근거가 된다.

2시간 정도 백두산·이기자·을지·오뚜기 공병대대·칠성·화랑·2군지사 등 다양한 부대의, 계급도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다양한 10여명의 병사를 만나서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대답은 똑같았다.

화랑부대의 한 일병은 "군화가 닳아서 못쓰게 되거나 잃어버리면 행정보급관(옛날의 중대 인사계)에게 말하면 된다, 절차가 좀 까다로워서 그렇지 군화를 새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군화 등을 새로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은 상당한 변화다. 과거 군대에서는 군용품을 잃어버리거나 훼손하면 다른 사병의 것을 훔치거나 휴가가서 사오는 수밖에 없었다.

구타 문제와 관련 백두산부대의 한 상병은 "구타가 없는 대신, 훈련이 세다"며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데 지금 군대에서 구타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과거에 구타 많기로 소문났던 기갑부대·수색대대·수송대·81mm 박격포반 등에서도 구타가 없다는 말에는 상당히 놀랐다.

아무튼 사병들의 입에서 보급품 지급이 이상없다는 말은 다행이다. 그런데 남대문 시장 같은 곳에 나도는 군용물품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 김태경 기자
남대문 시장 가판에서 군용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한경숙(가명)씨는 예비군복을 사러왔다고 하자 국방부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한국군 군복을 내보이며 구입을 권유했다. 그는 "모조품이 싸긴 하지만 진짜 군복의 품질이 훨씬 낫다"는 말도 덧붙였다.

넌지시 "이게 진짜 군복 맞느냐"고 다시 묻자 한씨는 "군 부대로부터 물건을 받아다 주는 사람이 있다"며 진짜라고 강조했다.

한씨는 이어 "우리가 직접 군인들을 상대해서 물품을 공급받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중간 상인이 각 군부대로부터 물건들을 받아 우리에게 공급해주고 있다"며 유통경로에 대해 설명했다.

불법적인 유통과정 때문에 가판을 벌이고 있는 모든 상인들은 단속에 대비해 진짜 군복은 숨겨놓고 은밀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한씨 옆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한 남자 상인은 이것저것 캐묻자 "혹시 단속나온 군인 아니냐?"며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놀랍게도 지난해 8월부터 군 부대에 보급되기 시작해 구형 모포와 교체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신형 모포도 한 켠에 쌓여 있었다.

일반인들은 작업복으로 활용

군용 물품의 수요자는 다양하다. 분실한 보급품을 보충하기 위해 찾는 현역 군인들에서부터 서바이벌 동호회 회원들, 예비군 훈련을 앞두고 예비군복을 사려는 사람들, 또 군복을 작업복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주요 고객층이다.

가장 인기가 좋은 품목은 군복과 군화. 특히 국방부 마크가 찍힌 진품 군복은 "박음질이 보통 옷보다 튼튼하게 되어 있어 작업복으로 인기가 높다"고 한씨가 귀띔했다. 이 때문에 한 벌에 3만5000원이 넘는 가격에도 찾는 사람이 꾸준하다는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국방부가 제작한 군복이 품질만큼은 일반인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군화도 군복과 마찬가지로 작업용 신발로 심심치 않게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씨는 말했다.

이들 군용 물품 판매상들은 한국군 용품뿐 아니라, 미군 물품도 취급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미군용품은 한국군 용품보다 인기가 좋다고 상인들은 말했다.

카투사들을 통해 공급받은 미군물품 시장도 성행

▲ 남대문 시장에 벌여놓은 좌판에는 새 전투화 몇 켤레도 보인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가슴 부분에 'ARMY'라는 글자가 박힌 운동복, 미군 군복과 군화, 미군 야전 식량인 MRE(Meal Ready to Eat)가 주요 인기 품목이다. 미군 군화와 군복의 경우 찾는 사람이 많아 한국군 물품보다 3만~4만원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야전 식량은 캠핑을 떠나는 학생들과 낚시꾼들이 주요 수요자다.

미군 물품의 주요 공급원은 용산 미군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카투사들. 카투사들은 자신이 지급받은 보급품 가운데 남는 것을 남대문 시장에 내다 팔고, 상인들은 이를 구입해 재판매하는 유통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한국군 용품과는 달리 시장에서 팔리는 미군 용품은 중고품들도 많다.

가판 상인 박상모(가명)씨는 "카투사들의 경우 군복만 4벌을 지급 받고 군 복무하는 동안에도 매점 수익금 등으로 적립된 복지기금에서 피복구입비를 따로 지급 받는다"며 "카투사는 군복과 운동복이 남는 경우가 많아 이를 주로 내다 팔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군용품과는 유통구조가 다르다는 말이다.

용산 미군 부대의 경우 규모가 커 근무하는 카투사들의 수가 많아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대문 시장뿐 아니라 미군 부대가 몰려 있는 의정부·동두천 지역에도 이러한 미군용품 암시장이 성행한다"고 박씨는 덧붙였다.

1년이하 징역인데 효과는...

군용 물품을 임의로 제조·판매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처벌된다.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군복 및 군용장구를 불법으로 제조·판매하거나 판매 목적으로 소지하는 행위(유사품 포함)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군인이 아닌 사람이 정당한 이유없이 군복이나 군용장구를 사용하는 행위(유사품포함)도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단속대상도 광범위 하다. 전투복·일반우의·전투화·전투모 등 군복류 21종, 수통·배낭·야전삽·반합·모포 등 군용장구 10종, 유사 군복류 6종이다. / 김태경 기자
현재 군용 개인 물품은 군 관련 기관의 산하 업체와 민간 업체가 생산한다. 전투화의 경우 국방부 산하 군인공제회 밑에 있는 대양산업을 비롯한 9개 업체에서 국방부에 납품한다.

군납 전투화의 60% 정도를 공급하는 대양산업 관계자는 "발이 너무 큰 병사나 밀리터리 매니아 가운데 개인적으로 전투화를 살 수 없느냐는 문의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법적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시장에 나돌아다니는 전투화는 혹시 제대 군인들이 판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군복의 경우 역시 중소의류업체들의 모임인 피복조합을 비롯해 대신기업(군인공제회 산하), 평화용사촌, 무궁화보훈복지 등에서 생산한다.

대신기업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군복 1만벌을 공급하기로 국방부와 계약했다면 1만벌분 이상의 재료도 구입할 수 없다"며 "감찰이나 회계감사로 엄격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생산업체에서 민간업자에게 유출되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 순수 민간 전투복 제조업체에 개인 고객인 것처럼 "군복을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으나, 역시 "개인에게는 판매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군용 물품이 제조업체에서 빠져나가는지, 군부대에서 빠져나가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유통경로가 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민간 시장에서 'A급' 군용 물품이 팔리고 있다는 점이다.

[르포] 청계천 상인들 "뭐? 총도 파냐고? 엉뚱한 소리는..."

없는 게 없고, 못만드는 게 없다는 서울 청계천골목. 항간에는 이곳에 가면 '총기도 살 수 있다'는 소문이 있다.

심심찮게 과거 군 부대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했다. 용돈이 궁한 병사가 고향 집에 연락해 "부대에서 훈련하다 총을 망가뜨렸다, 서울 청계천에 가면 총을 살 수 있다, 총 구입하게 30만원만 보내주세요" 이런 식으로 용돈을 타내던 사례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청계천에 가면 진짜 총기류를 살 수 있을까?

"사람들 이야기가 여기에 오면 총기 재료나 소총을 구할 수 있다던데 혹, 그런 얘기 들어보셨나요?"

어림 잡아도 1000개는 넘어 보이는 건축·조명·대형 공작기계·가전기구 공구상 중에서 여러 상인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모두 "없다, 뭐든 다 만들 수 있다는 소문 탓에 그런 이야기가 떠도는 것 아니겠느냐"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나이든 상인은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다 뭐다 해서 괜히 정신 사나운데 쓸데없는 것 묻고 다니며 장사 방해하지 말라"고 타박했다.

올해로 청계천에서 공구상을 한 지 8년째 접어든다는 A씨.

"탱크와 기관총은 물론이고 항공모함까지 만든다는 사람들의 과장이 그런 소문을 나게 만든 것 같다. 주위 상인들이 모두 친구고 형, 동생들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다음은 이곳서 장사한 지 20년이 넘었다는 50대 B씨.

"참새 잡는 엽총 재료 정도야 팔 수도 있겠지만, 군대에서 사용하는 총은 밖으로 내돌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느냐. 공구상 근처에 술집이 많다. 거기서 누군가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옮겨지다 보니 나온 이야기 같다."

가게에서 함께 냉커피를 마시고 있던 C씨와 D씨. 이들 역시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밥을 벌어먹은 지' 10년이 넘는다고 했다.

"쓸데없는 소리다. 청계천 개발로 이런 저런 기자들이 찾아와 별 걸 다 묻더니 이젠 별 소리를 다 들어본다. 총 한 자루 팔아 팔자를 바꾸는 것도 아닌데, 뭣 때문에 괜한 일을 해서 자기 인생을 망치겠나. 탱크 만든다는 소문이 있다고 여기서 진짜 탱크를 만들 수 있나?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그런 것 묻고 다니지 마라." / 홍성식 기자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숨쉬기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