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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6일 신당추진기구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민주당 당무회의에 참석한 신주류와 구주류 의원들. 왼쪽부터 최명헌, 김원기, 정대철, 박상천, 김상현, 정균환 의원.
ⓒ 오마이뉴스

K의원님께.

술김에 털어놓는 솔직한 이야기(醉中眞談)처럼, 취재하며 느꼈던 답답한 속내(取中眞談)를 끄집어내려 합니다. 흔히 '기사'가 아닌 '소설'을 쓴다고 욕을 먹는 정치부 기자라서 그런지 막상 소설 이야기를 기사로 쓰려니 계면쩍어 편지 글로 띄웁니다.

신당 논의를 둘러싼 민주당의 내홍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신주류와 구주류 모두 상황 변화에 따른 말 바꾸기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후텁지근한 날씨만큼이나 짜증나게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 스스로 국민들의 냉소를 부채질하는 자업자득의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외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저조차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있는 판이니 당사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벌어놓은 '판돈'을 다 날려버리고, '사채'를 끌어당겨다 날밤 새며 정치 노름을 하고 있는 꼴이라며 힐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문득, K의원님이 한 번쯤 다시 곱씹어 봤으면 하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다름 아닌 최인호의 <상도(商道)>입니다. <한국일보>에 3년여 동안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출간돼 7개월만에 100만부를 돌파한 밀리언셀러이자 TV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니 얼추 내용은 아시리라 봅니다.

경제 IMF 때 쓰여진 <상도>가 정치 IMF 때 주는 메시지

<상도>는 조선 최대의 거상(巨商) 임상옥(1779∼1855)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번 거론되고, 구한말 사학자인 문일평에 의해 남겨진 서너 장 분량의 평전으로 단행본 다섯 권 분량의 이야기를 구성해냈으니, 그야말로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산물'입니다.

소설이야 본래 '개연성 있는 허구'이니, 중요한 것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독자가 느끼는 여운일 겁니다. 평자들의 말을 빌면 <상도>는 "조선시대 임상옥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재 IMF 시대를 겪은 우리에게 상업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소설입니다. 임상옥이 인생의 위기 때마다 보여준 처신은, '정치적 IMF'를 겪는 지금과 같은 때에도 뭔가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소설은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이라는 화두로 시작되며, 그 궁금증을 풀며 끝을 맺습니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임상옥이 남긴 문장이지요. 이 문장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던지고자 했던 물음표인 '상도(商道)'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K의원님.

현재 진행되는 신당 논의 과정에서 "'권력'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정치인'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정도(政道)'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고민이 전제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정치는 어설픈 이상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라고 반문하실 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가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를 좁혀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할 때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작가는 임상옥이 남긴 문장,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세 고비를 만들어 놓습니다. 이 위기는 비단 상인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어려움입니다.

'죽을 사(死)'자와 '솥 정(鼎)'자와 술잔 '계영배(戒盈盃)'

다시 <상도>를 복기하겠습니다. 20살의 임상옥은 베이징에서 인삼장사를 하다 벌어들인 거금을 사창가에서 만난 15살의 소녀 송미령을 구하기 위해 '탕진'합니다. 이 때문에 상계(商界)에서 추방당한 임상옥은 불교에 귀의하고 큰스님 석숭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습니다. 석숭 스님은 임상옥에게 평생의 위기에서 구해줄 비책, 세 가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이 바로 '죽을 사(死)'자와 '솥 정(鼎)'자와 술잔 '계영배(戒盈盃)'입니다.

임상옥의 첫 번째 위기는 베이징 상인들의 '인삼 불매동맹' 때 찾아옵니다. 품질만큼의 제 값을 받고 팔겠다는 임상옥과 값을 후려쳐서 싸게 사겠다는 베이징 상인간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임상옥은 인삼을 베이징 상인들에게 헐값에 파느냐, 아니면 다시금 지고 조선으로 돌아가느냐는 갈림길에 섭니다.

위기에 처한 임상옥은 석숭 스님이 준 첫 번째 비책인 '죽을 사(死)'자를 꺼내보며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고는 인삼 불매동맹이 더욱 강화될수록 인삼 가격을 높이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귀국을 앞둔 마지막 날, 그는 베이징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삼을 불사릅니다. 한 상자, 두 상자, 세 상자…. '살기'가 느껴지는 임상옥의 태도에 끝내 베이징 상인들은 백기를 듭니다.

임상옥은 절반 가까이 되는 인삼을 태워버렸지만, 남은 인삼을 몇 배나 비싼 가격에 팔아 결국 큰 이문을 남기고 귀국했습니다. 석숭 스님이 준 '죽을 사(死)'를 보고 임상옥이 깨달은 것은 '사즉생(死卽生)'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인삼을 '사(死)'함으로써 자신이 '생(生)'할 수 있었던 거지요.

K의원님.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우문(愚問)을 던져봅니다. 임상옥은 베이징 상인들이 백기를 들 것을 미리 예상하고 '절반쯤만' 인삼을 태웠던 걸까요?

저는 만약 베이징 상인들이 백기를 들지않고 버텼다고 해도 임상옥이 인삼을 모조리 태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死)'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임상옥이 '사(死)'를 손에 쥐고도 머릿속으로는 '사(邪)'를 생각했다면 이후에 닥칠 두 번째, 세 번째 위기를 모두 재수 좋게 넘기기는 어려웠겠지요.

현실 정치는 어떻습니까. 기득권 폐지를 주장하며 개혁신당을 부르짖던 신주류가, 마치 처음에는 인삼을 불태우겠다며 세 상자를 넣었다가 차츰 불안한 마음에 두 상자, 한 상자로 줄여가며 불매동맹에 나선 상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요. 그들 스스로 '정 안되면 조선에 가져가 원금이라도 건지면 되지,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스스로 반문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구주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 정치·정당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응당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심 '거저 먹으려는' 베이징 상인들처럼 불매동맹의 카르텔을 맺고 '맞불 작전'으로 일관했던 건 아닌가요. 만약 인삼을 다 태워버리면 베이징 상인들도 1년 동안 장사할 물건이 없어 애를 태웠겠지만, '설마 다 태우겠느냐'며 도박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이와 더불어 '인삼을 다 태우면 나도 피해를 입겠지만, 저 녀석이 더 큰 피해를 볼 거야'라며 고소해 하는 놀부 심보는 없었을까요.

넘침을 깨닫고 버림으로써 위기를 극복한 임상옥

두 번째 위기는 임상옥이 어느 정도 부(富)를 얻었을 때 찾아옵니다. 그는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홍경래로부터 반정 혁명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갈등합니다. 홍경래와 함께 하자니 자칫 천기누설이 될 경우 삼족을 멸하는 모반죄로 몰릴 것이고, 제의를 뿌리치자니 당장 홍경래의 손에 죽을 위기가 닥쳐오는 진퇴양난에 처합니다.

그 위기에서 임상옥은 두 번째 비책인 '솥 정(鼎)'자를 꺼냅니다. 우여곡절 끝에 김정희의 도움으로 그는 '솥 정(鼎)'자에 담긴 비의를 깨닫습니다. '삼발이의 균형이 제대로 잡혀야 비로소 솥이 온전히 설 수 있듯이 부와 명예와 권력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를 다 가지려 욕심을 부리면 솥이 무너진다'는 깨우침 말입니다.

무엇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거꾸로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과연 민주당에서 취할 것이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과연 신당에서 취할 것이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새로운 물길을 가로막아 물이 고이고 썩게끔 하는 '구태의 댐'을 무너뜨리고, 대기중인 새 물길이 강으로 바다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 아닐까요.

결과론적으로 지역주의를 깬다고 하면서 영남쪽 잠식에 골몰하는 역(逆)지역패권주의 발상, 그릇에 담길 내용보다는 그릇 자체에 매몰된 편협한 시야, '호남 차별론'을 제기하면서도 사실상 DJ와 호남을 볼모로 '지역'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려는 흑심, 지금까지 '대통령 당'을 만드는데 앞장서왔으면서도 '대통령 당'을 왜 만들려고 하냐며 비판하는 몰염치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굳이 두 손을 사용해 셈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세 번째 위기는 임상옥의 말년, 그가 거부(巨富)가 된 다음에 찾아옵니다. 외부로부터 위험 신호가 온 앞의 두 위기와는 달리 마지막 위기는 임상옥 스스로가 감지해내야만 했던 고난이도였습니다.

가득 채우면 다 없어지고 오직 팔 할쯤을 채워야만 온전한 '계영배(戒盈盃)'에 담긴 뜻을 곱씹던 임상옥은 우연히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 한 마리를 솔개가 채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명운이 다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재산을 이웃에게 나눠주며 사회에 환원합니다.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부(富)를 모은 건 개인이지만 결국 사회의 재산이라는 걸 깨닫고 실천한 것이지요.

임상옥이 처했던 세 차례의 큰 위기는 모두 '넘치는'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감과 객기가 넘쳤던 젊은 상인 시절에,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부와 권력이 넘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이 거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버림으로써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깎고 깎은 결과, 임상옥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2003년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계영배를 꽉 채우려 끊임없이 붓고 있는 꼴은 아닐까요. 넘치고 넘쳐 무엇부터 덜어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정치인들은 부족하고 부족해 무엇을 더 담아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짜 위기는 그것이 위기라는 사실을 모를 때 찾아옵니다. <상도>로부터 그 한 가지 사실만 배워도 남는 장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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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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