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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19일 밤 당선이 확정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민주당사에서 축하 꽃다발을 받고 답례하고 있다.
ⓒ 마이너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성공은 그의 피할 수 없는 이 나라 이 민족에 대한 엄중한 의무이다.

노무현 정권의 역사적 자리는 냉전의 유산이 지속되고 있는 분단 한반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 그토록 진력했던 모든 이들의 염원은 '노무현의 집권'이 대미(對美) 종속형 냉전체제와 결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 우리에게 자주적인 남북 평화시대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염원이 기대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해체되고 남북 평화공존과 통일의 기반 조성이라는 민족적 중대사가, 미국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적 패권정책에 유린되어가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의 대응전략은 안이하다 못해 강자의 권세 앞에서 자포자기의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노무현의 성공은 역사적 의무

사태가 이렇게 되어가면서, 무엇보다도 노무현 집권에 치열한 자기헌신을 했던 적지 않은 이들이 대통령 노무현과 대립하는 진영으로 결속해가고 있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나 이 나라를 위해서나 안타깝기 짝이 없다.

냉전수구세력의 힘은 여전히 강하고 미국과 일본의 이 민족에 대한 분열통치전략은 이와 결합하여 우리 민족사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데, 진보-개혁-평화 세력의 대 연대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정치토론의 속도나 그 양이 오프라인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 있는 인터넷 언론을 보자. 가령 노무현 집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시민기자 주체의 <오마이뉴스>에는 이제 노무현에 대한 비판의 글이 보다 대세를 이루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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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9일 당선 직후 당사 밖으로 몰려든 수많은 인파에게 감격에 차 인사하고 있다.
ⓒ 마이너
그 비판의 강도는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직업언론인 출신들이 주도하는 <프레시안> 또한 다르지 않다. 상대적으로 다소 절제된 댓글이 붙는데도 그 비판의 날은 준엄하다.

이 뿐이 아니다. 인터넷 정치토론의 장 <서프라이즈>는 친노(親盧)와 노무현 비판세력으로 갈라져 노무현 비판세력의 토론 사이트 <동프라이즈>를 낳았으며, 보다 전문적인 필진들이 주도하는 노무현 시대 비판과 대안제시를 위한 <시대소리>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과 같은 전환기에 정치적 입장의 정리와 논의의 섬세한 분화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면서도, 노무현 정권의 중심이 본래의 역사적 요구와 일치해왔다면 사실 불필요한 사태였다. 그런데 그 불필요가 이제는 당연한 필요함이 되었다.

힘은 어느새 나뉘었고, 시대를 진전시키기 위한 싸움은 애초 노무현 지지 진영이었던 세력 내부의 투쟁과 냉전수구세력과의 대결이라는 이중고(二重苦)가 생겼다.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 지점에서, 이제 누구의 어떤 논의가 이 시대의 정치주제를 주도해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냉전수구세력 여전히 강하고, 진보-개혁-평화 세력 분열

그렇지만, 이 모든 논의와 정세의 흐름 속에서 누가 뭐래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다.

그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떤 변화를 결단하는가에 따라 논의의 흐름과 이 시대를 이끄는 힘의 축은 달라진다. 우리와 같은 정치문화와 권력구조 속에서 대통령의 생각과 말은 이 시대의 권력이며 역사의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노무현 집권'은 냉전수구세력의 지리멸렬함과 외세의 상대적 퇴각, 그리고 지역주의를 넘어선 진보-개혁-평화 세력의 거대한 결속을 정치적 현실로 만드는 것을 꿈꾸게 했다.

냉전의 희생제물로 끊임없이 고통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평생을 걸고 이룩해놓은 탈냉전 탈분단의 사명이 보다 진전된 방식과 내용으로 실현되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노무현 집권으로 남은 것은 이미 대선의 결과로 합의된 역사의 방향을 실천적으로 밀고 나가면 된다고 여겼다.

이 불행한 역전(逆轉)의 비극

그런데 너무도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의 행보와 언행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전제가 일거에 뒤집어 지게 된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의 뿌리는 다름 아닌 여기에 있다.

역사의 요구를 감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주체가 그 역사의 요구가 가리키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쪽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그래서 자칫 더 이상 나가면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날로 깊어지고 있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전율하며 체험하고 있는 '불행한 역전(逆轉)의 비극'이다.

미국의 대한반도 패권전략에 맞서서 김대중 시대가 안간힘을 써서 만들어 놓은 '역 봉쇄전략'의 평화적 틀이 깨어져나가고 있다. 또한, 당시 이를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명으로 감당했던 그 주체세력들이 범죄 공모자들로 몰리고 있으며, 군사력 증강을 비롯하여 미사일 방어망 준비를 위한 천문학적 전쟁비용의 증대로 이 나라 경제가 무지막지한 부담을 안게 되어가고 있다.

사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야 비로소 검토가 요구된다고 했던 이른바 추가조처는 이미 시행단계에 들어가고 있으며, 미국의 선제공격용 전 단계 조처의 의미가 확실해져가고 있는 미군 재배치 구상은 우리의 비용으로 진행될 참이다.

한마디로 전쟁의 구조가 더욱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저지하려는 외교적 견제력을 발휘할 의지는 포기된 모양새를 드러냈다.

▲ 지난해 12월 19일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되자 민주당사앞에 모여있던 지지자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환호하고 있다.
ⓒ 마이너
우리가 가진 힘

가지고 있는 힘이 발언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우리가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게도 우리 나름의 힘이 있다. 그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강자의 전유물과 같이 된 것 따위가 아니다.

바로 그러한 강자의 힘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존엄한 인간적 인류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의지, 비참한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던 민족사에 다시는 그런 지옥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평화에 대한 열정, 가장 소중한 인권은 전쟁의 폭력에서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 이러한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한 우리들의 지혜, 민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는 헌신적인 인재들.

'김대중'이라는 국제적 자산을 비롯하여 세계가 지지를 표한 햇볕정책, 그 열매의 하나인 6.15 남북 공동선언의 원칙. 이러한 것들에게서 우리의 희망은 있는 것이며 약소국의 참된 힘의 정체가 온 세계에 확인되는 것이다.

돌아오라 노무현, 부디 돌아오라!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권의 문제가 도대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이 힘에 눈뜨지 못하고, 이 힘을 가볍게 여기며, 이 힘이 부르짖는 역사의 육성에 귀 막고 있으며, 이 힘이 발휘할 위력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강자의 권세는 보이지만, 약자들의 진실과 그것이 가진 뜨거움, 그리고 자기투신의 비범함은 "냉혹한 현실에서" 무의미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힘이 쏠린 대세를 추종하는 정견 없음이며, 역사의 정도를 걸으려는 철학적 의지의 박약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진보케 하려는 이들 모두는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역사적 애정을 아직은 완전히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지난 5월 16일 심혈관 질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퇴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 가열 찬 비판과 진노에 가까운 아우성은 노무현에 대한 사적(私的) 공격이 아니다. 다시는 돌아볼 것 같지 않은 적대(敵對)가 아니다. 노무현의 역사적 의무에 대한 서릿발 같은 일깨움이며 이 시대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사명에 대한 민족사의 추호도 흔들림 없는 부르짖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 다소 불만이 있다 해도, 도올 김용옥의 거침없는 일필(一筆)에 이런저런 구차한 반응을 보인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자신과 노 정권을 더욱 왜소하게 보이게 할 뿐이다.

돌아오라, 노무현! 부디 돌아오라!

더 이상 시간이 흘러, 처절한 심정으로 모든 기대를 접고 당신을 작심하고 공격해야 이 시대가 살아남겠구나 하는 비통한 결론이 나오기 전에, 부디 부디 돌아오라. 이 나라 이 민족이 요구하는 그 본래의 숭고한 자리에, 그 뜨거운 사랑의 현장에, 그 부둥켜안음의 감격이 철철 넘쳤던 눈물의 광장으로 말이다.

산천초목(山川草木)은 막을 길 없이 우거지고 작열하는 태양이 우리의 영혼마저 열정의 용광로로 만드는 이 격동의 역사 6월을 놓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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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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