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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에서 펴낸 <빛깔있는 책들> 1번은 인병선씨가 쓰고 엮은 <짚문화(1989)>입니다. 그 뒤로 <풀문화(1991)>, <우리 짚풀문화(현암사, 1997)>, <풀코스 짚문화여행(현암사, 2000)>를 내기도 한 인씨는 '짚풀사 박물관'의 문을 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 대원사에서 펴낸 "빛깔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인 <짚문화>
ⓒ 대원사
우리는 인씨를 말할 때 흔히 `신동엽 시인의 아내'나 `짚풀문화 이야기'로 떠올리곤 합니다. 좀더 잘 아는 분은 일제강점기 때 이름난 사상가 `인정식씨의 딸'로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인씨는 '인병선'일 뿐입니다. 인씨는 `시인'이란 이름을 내걸지 않았을 뿐, 남편 신동엽 시인 못지 않은, 아니 어쩌면 신동엽 시인만큼 혹은 그와는 또 다른 세계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인씨의 존재가 작아보이는 까닭은 많은 시를 쓰지 않았고, 자기 이름을 내걸고 시 모음집을 제대로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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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씨는 신동엽 시인이 죽은 뒤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시'를 모아 실천문학사에서 책 한 권을 펴냈고, 산문과 편지를 모아서 또 한 권의 책을 냅니다. 그렇게 남편 신동엽 시인 자취와 모습을 세상에 발표해나가던 인씨는 드디어 당신의 이름을 건 두 권의 책을 냅니다. 하나는 시 모음집 <들풀이 되어라(풀빛, 1987)>과 <벼랑 끝에 하늘(창작과비평사, 1991)>입니다. 지금 이 책은 모두 절판된 상태라 헌책방에서만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들풀이 되어라

높은 누마루에서 내려와
맨발로 발레리나처럼
세운 발끝을 땅에 깊이 꽂고
들풀이 되어라
그리하여
땅의 온도와
미세한 울림까지도
예민하게 감지하는
땅을 덮은
들풀이 되어라
들쥐가 지진을 예감하듯
들새가 천둥을 예감하듯
역사의 온갖 징후를
선각하여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선각을 소리 높이
함성하는
푸르고 싱싱한
들풀이 되어라


▲ <들풀이 되어라> 겉그림입니다
ⓒ 풀빛
들풀이 되길 바라는 인씨입니다. 누구보다도 스스로 들풀이 되고자 했고, 지금은 `들풀(짚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높은 누마루'가 아닌 이 땅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는 누마루가 아니라 다 함께 고른 자리에서.
다른 이의 노동력을 앗아오며 세우는 누마루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땀흘리며 울고 웃는 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맨땅에서, 들풀이 되어 푸르면서도 싱싱하게 자기 자신을 가꾸는 사람으로.

들쥐가 되고 들새가 되면 지진도 느끼고 천둥도 느낍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슬픔과 아픔과 웃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지요. 슬픔, 기쁨, 아픔, 웃음은 먼 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곳, 이 땅, 우리 사회에 있습니다..

북에서 왔다고만 하면

북에서 누가 넘어왔다고만 하면
갑자기 가슴이 두근대며
제일 먼저 성부터 보게 된다
혹시 인씨가 아닌가 하고
조카나 사촌이나 육촌 누가 아닐까 하고
다음엔 그 사람의 고향을 보게 된다
평안남도 용강이 아닌가 하고
용강에서도 온정리 얘기가…


인씨는 북녘 핵사찰 일로 '온정리' 이야기가 나왔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도 고향땅이 나오니 기쁘고 반갑게 맞이했을까요? 요즘 또 다시 이름이 오르내리는 북녘땅 이야기입니다. 즐거운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이 조금씩 나아지면 좋을텐데. 우리가 바라는 일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일 텐데. '들풀'이 되는 마음을 잊어서일까요. 들풀이 되어 서로 몸 부대끼며 높고 낮음 없이 살아가는 어우러짐에서 멀어져가기 때문일까요.

곰인형

곰인형
아가 너와 놀 때는
귀여운 짐승인데
왜 나하고는
그냥 제품일 뿐이니


어린 아이나 아기는 목숨이 없는 물건에게도 목숨이 있는 듯 생각하며 동무로 지내곤 합니다. 곰인형에게 숨을 불어넣기도 하고, 귀여운 동무나 짐승으로도 삼지요.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곰인형은 단지 그냥 돈 몇 푼 주면 살 수 있는 `제품'일 뿐입니다.

요즘 우리들은 한 술 더 뜨지 싶어요. 그래도 곰인형은 `물건' 취급이라도 받지만, 이웃은 사람이나 이웃 아닌 `소모품'이나 `물건'으로 여기니까요. 함께 버스를 타고 함께 지하철을 탄 사람을 사람이나 이웃으로 여기지 못합니다. 그저 "사람 더럽게 많네" 하면서 지겨운 대상으로 압니다. 자기 또한 사람 꽉 찬 버스와 전철 속에 있는 한 사람이고, 모두 똑같은 사람 가운데 하나임에도 자기 스스로를, 또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느끼지 못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이니 곰인형이나 강아지 목숨을 얼마나 아끼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이웃나라 사람들 삶이나 목숨은 어떻겠습니까. 이웃나라 일본이 유사헌법 문제로 말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는 일본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요. 우리들도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잃거나 곰인형에게 목숨을 불어넣어 벗으로 삼을 수 있는 마음을 잃는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특별동 사람들은

백색이 흑색으로 해 돋보이듯
미녀는 추녀가 있어야 돋보이듯
소득이 높고
학력이 높을수록
갓난애를 안고 앉아
종일 동정을 구걸하는
맹인 거지는
절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하루 매상 200만원이라는 맥도널드 햄버거집과
하루 순익 100만원이라는
빠리 크라상을 키우듯
맹인 거지도
차질없이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특별동 사람들은
소득 높고 학력 높은 특별동의
특별난 사람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원경 스님

인간 세상을 등지고 고기와 여자를 멀리하며 홀로 고고한 척 사는 사람은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도에 묶여 사는 사람임을...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끔찍이 아끼고 존중하여 결코 그들을 떠나 홀로 성불하려 하지 않는다. 함께 어울려 살을 섞고 울고 웃으며 늘 그곳에 불을 피운다 사랑의 따뜻한 불을.


아무리 부자로 사는 사람이라 해도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과 살을 섞고 울고 웃으며 산다면 제 홀로 부자로 살려 하지 않겠죠. 물론 자기만 잘 살겠다고 온갖 짓을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꿈'을 이야기하며 `이상'을 찾는 까닭은 무엇이겠어요. 바로 우리가 늘 부대끼고 딛고 사는 이 땅 위에서 가장 힘이 여리고 없어 뵈는 이들과 함께 웃으며, 서로 의지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날을 바라며 희망과 꿈과 이상을 이야기하겠죠. 혼자만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다 함께 잘 살기 위해 말입니다.



어젯밤
길 없어 못 왔단
소식 들었읍니다

길 없다 말고
마음 없다 하소서

마음 가는 데
길 안 가는 거 보셨읍니까

길 없다 말고
차라리
그리움 없다 하소서


누구를 돕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정치 개혁, 사회 개혁, 경제 개혁을 이루는 일뿐만 아니라, 공부를 해서 큰 학문을 이루는 일도 어렵지 않아요. 곧게 한길로 가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깨동무를 하며 배우고 가르치고 함께 살아가면 이룰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굶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밥 한 술씩 떠서 나누고, 옷 없는 이 있으면, 내게 있는 옷 한 벌 나눠주면 됩니다. 길이 없어서 못 오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못 온다는 말을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끈을 엮지, 사랑 아닌 다른 것으로 엮지 못하거든요. 사랑과 일과 사람 모두,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는 마음으로 엮습니다.

<4>

전문시인도, 문학인도 아닌 인씨는 남편이 죽은 뒤 스무 해를 넘게 홀로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꾸리며 살아왔습니다. 고단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는 삶이었겠죠. 그 삶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어오면서 살기는 했지만 남편을 몸과 마음으로 껴안지 못했답니다. 그러다 남편이 죽어서까지 써 내려간 시를 자기 손으로 갈무리하고, 자기도 시를 쓰면서 조금씩 남편을 다시 만났답니다. 그제야 비로소 남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시를 쓰니까 신동엽씨가 좀더 이해된다. 생전의 그의 사랑, 우수, 고뇌, 분노를 확실히 알 것 같다. 이 맛에 시를 쓴다. 안개 저편에 흐릿한 모습이 걸음을 옮길수록 확실해지는 것처럼, 그의 세계가 나와 가까워지는 즐거움에 시를 쓴다. 어느 날 그의 옆에 뚜렷이 설 때, 비로소 나는 참다운 그의 반려자요 동지가 될 것이다. 그 날까지 부지런히 쓸 수밖에 없다. -맺는말(후기)

▲ 인병선 씨 아버지인 `인정식' 선생과 김병겸 씨가 우리 말로 옮겼던 <에드가 스노우 지음-홍군종군기(1946)>. 이 책은 나중에 <중국의 붉은 별>로 소개됩니다.
ⓒ 최종규
몸은 다른 데 있는 두 분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한 자리에서 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두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아름답다 하지도 않았고, 누가 멋지다고 하지 않았으나 마음과 마음이 만나 하나되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힘이 나게 합니다. 들풀이 되어 그리움을 가득 안고 길을 찾아가는 일이 참 아름답습니다.

<벼랑 끝에 하늘>이라는 산문모음을 보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있으며 지냈던 옛일을 떠올리는 대목이 곧잘 나옵니다. "얘들아, 저거 다 짜고 하는 거란다"라는 글을 보면 신동엽 시인이 죽기 얼마 앞서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그 내막을 알고 봐야 한단 말야" 하고 말하면서 텔레비전 쇼프로가 얼마나 짜고 하는 건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인씨는 어린아이들이 무얼 아느냐고,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생각하셨답니다. 그러다 아이가 대학생이 된 뒤 함께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았을 때입니다. 따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왜 우리가 기독교인 편에 서서 회교도들을 미워해야 하지" 하고 텔레비전을 껐답니다.

그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만든 대부분의 종교영화가 다 그렇듯 기독교의 편에 서서 상대 민족의 전통신앙, 토속종교를 이단이니 미신이니 야만이니 하는 명목으로 가차없이 때려부수고 정복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었고, 또 그 정당화에 동조하기를 강요하는 교묘한 트릭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해방 후 우리 나라에는 이러한 종류의 영화가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다.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기독교인들의 취향에 상업성이 결탁한 현상으로, 수십 년에 걸친 이 눈먼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나는 이번 태국에 가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관광으로 간 나를 안내한 사람은 방콕에서 십 년째 사는 우리 교포였다. 그분의 말이 그 몇 달 전 한 떼의 기독교 여성신도들이 다녀갔는데, 태국 국민이 가장 아끼는 에메랄드 사원에 들어가서, 저것 다 미신이며 우상이라고 찬송가를 부르고 소리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그곳 신문에까지 오르고 떠들썩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낯 불지르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벼랑 끝에 하늘 180쪽


인씨는 그때 따님이 한 말을 들으며 열 몇 해 앞선 때 일이 떠올랐고, 그제야 남편이 왜 아이들에게 텔레비전 하나도 대충 못 보게 했는지를 아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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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목소리를 담은 시 모음집 <들풀이 되어라>입니다. 감칠맛이나 구수한 맛은 없는 시를 모은 <들풀이 되어라>입니다. 하지만 사람 삶이 담은 깊이와 넓이를 담은 그윽한 시 모음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쉽지 않은 만큼 찾아내서 볼 때 얻을 즐거움은 무척 크리라 봅니다. 더불어, 우리 삶을 밝히고 곱게 비추는 좋은 책이 참 많이 묻혀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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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읽는 우리말 사전》《골목빛》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