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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운전면허증이 무효?

한국에 다니러 갔던 때인 2002년 12월 말경, 국제운전면허증을 재발급 받으러 남편과 함께 운전면허시험장에 갔다. 일본의 관공서에 비하면 초스피드인 한국 관공서의 신속한 행정서비스를 칭찬하며 새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았다. 받고 보니 맨 앞장에 ‘유의사항’이란 것이 타이핑되어있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으로서 등록되어 거주하는 자가, 출국하여 외국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교부받고 당해 출국일로부터 3월 이내에 일본에 재입국한 경우에 그가 소지한 국제운전면허증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하고, 2002. 6. 1. 부터 시행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의미가 파악이 되지 않아 남편과 이런 뜻이다 저런 뜻이다라며 실랑이를 하다가, 발급해준 카운터의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묻긴 했으나 여전히 모호한 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맨 뒷장의 ‘알림’을 읽던 남편 왈, “이 국제운전면허증 일본에선 쓸모가 없네, 뭐” 우리같이 장기 체류하는 사람에겐 효력이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없는 시간 쪼개고 만원 씩 2장이니 2만원이나 들여서 받은 면허증이 쓸모가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초스피드의 행정서비스를 칭찬했던 것에 더 화가 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발급 카운터 앞에 이러한 유의사항을 적은 알림판 정도는 있었어야하는 것 아닌가? 행정서비스의 진정한 의미는 이용자의 입장에서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던가, 신속처리는 그것의 하위 카테고리이고.

출국일이 얼마 남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쓸모도 없는 국제운전면허증을 그냥 들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일본의 시험 담당관에게 부끄러운 소리를 듣게 될 줄도 모르는 채 말이다.

일본 운전면허증으로 전환시의 절차 및 필요 서류

일본으로 돌아와 곧바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운전면허에 관한 사항은 거주지 관할의 각 경찰서 산하의 운전면허과에서 맡고있다. 절차는 다음과 같지만 각 절차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 자세히 설명드리겠다.

서류접수 - 면접 - 지식확인 - 기능시험 - 적성검사 - 면허증교부

인터넷엔 간단히 절차 및 신청방법 등이 나와있는데 먼저 전화로 예약을 해야한단다. 운전면허센터의 담당자는 친절한 듯 하면서도 바쁘다는 듯 빠른 어조로 필요서류를 일러주었다.

1. 외국에서 발급받은 면허증 원본 (유효기간내)
2. 그 면허증의 번역본 (해당국 대사관/영사관 발행 혹은 일본자동차연맹(JAF) 발행)
3. 외국인등록증 원본
4. 국제운전면허증 (소지자에 한함)
5. 여권 (면허증 발급일 이후의 출입국내용이 확인가능한 新?전부: 발급후 통산3개월간 해당국 체류 확인위함)
6. 증명사진 1매 (3x2.4)
7. 신청료 2,400엔 + 교부수수료 1,750엔

먼저 번역본을 준비한 후 다시 전화해서 접수일을 예약해야한단다. 내가 사는 곳은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멀기 때문에 인터넷을 뒤져, 내가 사는 지역의 JAF (일본자동차연맹)에 전화를 걸었다. 번역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오란다.

1. 면허증 원본 및 양면의 확대 복사본 2매
2. 외국인등록증 원본 및 양면의 확대 복사본 2매
3. 수수료 3,000엔 + 우송료 290엔

여긴 좀 지방이라 동경에 의뢰를 하기 때문에 시일이 3-4주 걸린다는 말에 아연해져버렸다.

3주쯤 후, 번역본이 도착되어 다시 운전면허센터에 전화했다. 지난 해 6월 도로교통법이 바뀌어 면허전환 신청이 폭주하는 관계로 면접일이 약 한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말에 다시 한번 아연해지면서 접수일을 예약했다.

한국면허증 취득에 관한 세세한 질문들

필요한 서류들을 가지고 시 외곽에 있는 운전면허센터에 갔다. 담당관은 몹시 바쁜 듯 내가 보기에도 지쳐 보였다. 가지고 간 서류들을 복사하러 간 지 한참 후 돌아와 자리에 앉더니, 내 여권을 들추며 출입국 날짜를 일일이 기입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적더니 내 국제운전면허증을 보며 예의 그 얘길 한다. “이 면허증은 쓸모가 없는 거네요? 발급 받을 때 직원이 설명을 안 해주던가요?”

드디어 질문이 시작되었다. 질문이 너무도 세세하여 대답할 수조차 없는 것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운전연습은 어디서? 학원이름은? 학원위치는? 학원에서 얼마동안 연습했나? 통틀어 몇시간이었나? 시험은 언제, 어디서? 어떤 시험을 봤나? 어느 면허시험장인가? 학과시험은 어떤 형식? 몇 문제였나? 몇점이면 합격인가? 몇점 받았나? 학과시험 결과를 어떻게 알았나? 적성시험 내용은? 적성시험시 판정용지를 본인이 들고 다녔나, 담당관들끼리 주고 받았나? 코스는 학원과 같았나? 시험관이 동승했나? 시험내용은? 합/불합격 판정은 어떻게? 합격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나? 면허증은 언제, 어떻게 교부받았나? …

내 경우엔 면허증 발급 받은 게 11년 전의 일이다.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동안 별로 쓸모도 없었던 이런 세세한 내용을 머리 속에 담아 둘 이가 있을까? 면접관은 한국 면허증엔, 특히 갱신한 면허증엔, 최초발급일이 기입이 안되어있다며 참 이상하다는 태도였다. 말투로 봐서 한국과 중국의 제도가 허술하다는 얘기를 하고싶은 모양이었지만, 나로선 선뜻 동의해 줄 수는 없는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자세하게 묻는 것도 가짜 면허가 많기 때문이란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불쾌했다.

까다로운 기능시험

면접 후 거의 2달 후 지식, 적성, 기능시험을 한꺼번에 치르는 시험일이 잡혔다. 지식시험은 10문제 중 7문제만 맞으면 되고, 일러스트를 사용한 정오답식 시험이라 간단했다. (가끔 함정도 있다.) 적성시험은 시력검사와 실신 등의 경험을 묻는 용지를 작성한 게 전부였다. 지식, 적성시험은 6개월 간 유효하다. 기능시험을 다시 보게 되더라도 6개월 간은 재시험을 치르지않아도 된다.

이쯤에서 밝히는데, 사실 난 운전경험이 전혀 없는, 11년간 장롱면허 소지자였다. 그래서 기능시험엔 영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남보다 많은 연습을 필요로 했다. 운전면허센터의 주행시험장을 함께 쓰고있는 운전학교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주행코스를 외워야 하기 때문에 응시자는 모두 이 학교에서 일정시간 연습을 해야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2, 3배는 연습한 것 같다. 관과 유착되어서인지 이 운전학교 강사들은 불친절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기능시험은 먼저 오토매틱으로 제한된 AT면허로 할 것인지, 매뉴얼과 오토매틱을 모두 운전 가능한 MT면허로 할 것인지를 정한다. 과제는 크게, 차선변경, 지정속도 주행, 교차로 좌우회전, 협로주행 (s자, 크랭크), 철로횡단 요령 등으로 나뉘어지는데 채점은 아주 세세하게 이루어진다. 안전벨트를 올바로 착용했는지, 브레이크를 밟기 전에 백미러를 확인했는지, 차선변경, 좌우회전시 사이드 미러와 좌우를 확인했는지, 우선(優先) 주행 규칙을 지켰는지, 장애물이 있을 때 안전 확인을 올바로 했는지, 차선을 준수했는지, 철로횡단시 창문을 열어 소리를 확인했는지 등등, 운전기술 뿐만 아니라 안전의식에 큰 비중을 두고 채점하는 것 같았다.

역시 아직 운전이 서툰 나는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 날 함께 시험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대부분 5, 6번 째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그 중 나를 포함하여 절반은 불합격이었고, 어떤 부부는 둘 다 한 번에 합격하여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담당시험관에 의하면, 42번까지 시험을 본 이가 있단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몰라서 운전학교를 통해 일본면허를 직접 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비한자권(非漢子圈)에서 온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2번째 시험에서 운좋게, 정말 운좋게 합격을 하였다. 여기서 또 한가지의 진실을 밝혀야겠다. 사실 난 아직 자동차가 없다. 여기엔 많은 사연이 있지만 지금 밝힐만하지는 않다. 언젠가 여기에 얽힌 사연도 들려드릴 수 있게 되기를…

면허증 교부

“오메데또고자이마스! (축하합니다!)” 드디어 일본 운전면허증을 발급 받았다. 기능시험에 합격하면 당일에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준다. 정말 하루 온 종일 걸렸다. (당분간 다시 장롱 속으로 들어 갈 운명인 것이 서글프긴 하다.) 면허증을 받으면 대부분 초록색 이파리 모양의 ‘초심자표식’을 1년간 붙이고 다녀야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장롱면허력 11년의 왕초보인 내 면허증 뒤엔 ‘초심자표식면제’라는 글귀가 박혀있다. 하지만 양심껏 초심자표식을 붙이고 다닐 생각이다. 그것이 결국 나와 내 가족, 이웃의 안전을 위한 것이니까 말이다.

내 얘기까지 곁들여 너무 장황하게 설명한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힘들게 면허를 바꾸면서, 일본의 담당관이 스치듯 내뱉은 말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물론 업무가 많아져서 괴로운 자신의 신세 한탄조였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사람은 너무 전화를 많이 걸어온다.”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기에 나에게 하는 얘기 같아 뜨끔했다. “그럼 홈페이지에라도 자세히 써 놓았으면 좋았을걸. 당신들 탓도 있잖아요.”라는 말이 목젓까지 올라왔지만 그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참았다.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고치면 된다는 진리를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면허증을 바꾸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또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아직 권위주의를 채 벗지못하고, 사고의 틀을 반정도 밖에 바꾸지 못한 듯한 한국의 행정서비스와 여전히 관(官)중심의 구태의연한 일본의 행정서비스, 한일간의 미묘한 감정대립(?), 정부의 해외국민을 위한 배려, 해외거주국민으로서의 책임 등… 이런 이유로, 좀 자세하게 알리고 싶었다면, 이 장황한 글의 변명이 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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