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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능성은 청춘에서 찾을 수 있다'는 명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문학의 가능성 역시 청년작가들에게서 찾아야함이 분명하다. '작가와 기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 그들과 공유한 시간 속에서 얻어진 후일담을 통해 한국 젊은 문학의 이면을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 소설가 전성태.
ⓒ 홍성식
문장에는 엄격하고, 인간에게는 너그러운 것이 좋은 소설가라면 전성태(33)는 그 중 윗길로 뽑힐 사람이다.

문장에 관한 그의 엄격함은 비단 그의 본업인 소설 쓰기만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언론사를 비롯한 여타 단체에 발송하는 문서는 모두 그의 꼼꼼한 손을 두 번 세 번 거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와서 함께 점심이나 하자"는 전화가 왔다. 촉망받는 청년작가이자, 주요 취재원이기도 한 그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작가회의 사무실. 그런데 이것 봐라. 도착한 지 20분이 다 돼 가는데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거다. "거, 사람 보면 아는 척 좀 합시다. 뭐 그리 바쁜 척이오." 성미 급한 기자는 잔뜩 약이 올랐다.

"아, 미안하다. 잠시만. 급하게 보낼 문서가 생겨서." 그러고도 한참의 시간. 문서 가득 붉은 줄이 쳐진 교정의 흔적을 흔들어 보이며 그가 웃는다.

전성태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이 행하는 일에 대한 성실과 철두철미한 책임의식. 올바른 문장에 대한 그의 집착은 배고픔 정도는 가뿐하게 잊게 만든다. '막 쓰는 것'에 이력이 난 기자나부랭이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 그것 또한 작가정신의 하나일까?

전성태는 성실할 뿐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다. 층층시하의 작가회의 살림살이. 그는 남도땅 끝머리에서 대가족 아랫자리로 살아온 사람이 응당 갖추기 마련인 겸손을 13년 서울살이의 강팍함 속에서도 잊지 않았다.

나름대로는 모두다 한다하는 작가들이 천여 명이나 모인 작가회의이니 이것저것 요구 많은 선배들 비위 맞추기는 또 얼마나 힘들텐가. 하지만 전성태는 사무국장직을 수행한 2년 동안 단 한번도 얼굴을 붉히거나, 대놓고 어른들에게 대들지 않았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성태가 채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에 내놓은 소설집 <매향>. 그 책을 두고 각종 신문과 경향각처(京鄕各處)의 평론가들이 "김유정의 현신(現身)이다" "구어체 사용이 이문구에 버금 간다"하는 이야기를 떠들 때도 그는 그저 "촌놈이 촌사람의 이야기를 쓸 뿐이다"하는 말로 겸손해했다.

칭찬에 휘둘리는 또래의 젊은 작가들과는 판이한 대응. 그가 여타의 작가들과는 다른 코드로 21세기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19세기적 겸손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년 이맘 때던가? 낡은 창 밖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보며 그와 마포 왕대포집에서 권커니자커니 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인 적이 있다. 당시 좋지 않은 일을 겪었던 내가 물었다.

"형은 뭐가 제일 괴롭소?"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다. "이 짓 하느라 시간 없어 소설 못쓰는 게 제일 괴롭다." 그래, 소설이건 뭐 건 잘 하려면 저 정도의 애착은 있어야 하는구나. 취중에도 새삼스런 깨달음에 감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작가회의에서 보도자료가 발송돼왔다. 전성태가 작가회의 사무국장을 그만둔단다.

'선배 모시고, 후배 챙겨야'하는, 돈은 안 되고 애만 쓰는 직책에서 놓여난 그가 원 없이 소설삼매경에 빠져들기를, 성실과 겸손으로 축조된 위대한 소설의 성(城)을 쌓아올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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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