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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3월 26일 축구 꿈나무 초등생 8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치는 끔직한 화재가 일어났다. 언제 이런 참사가 멈출 수 있을까?

대구 중앙로 전철역 화재 이틀 후 거기에 가보니 '지하철 이용은 시민의 안전입니다"는 현수막이 국화꽃에 반쯤 파묻힌 채 입구에 걸려 있었다. 구호로만 안전을 외쳤던 것이다.

지하철 안은 청소를 한다고 분주했다. 당국자들의 사후 대책을 보면 시민의 안전에 대해 얼마나 소홀한지를 알 수 있었다. 8년 전 4월 100여 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친 상인역 가스폭발 사고 때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당시 신문을 찾아보았다.

당시의 신문보도와 이번 사건에 대한 신문 보도가 너무나 비슷한 데 놀랐다. 신고도 있었고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는 것과 5,6개 부서에 나누어져 있는 재난 관리체계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정부당국자의 발표도 같았다. 또한 철저한 반성보다 수 백 억 원의 성금을 모으고 천문학적인 국고를 들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같았다.

나는 95년 상인역 가스 폭발 사고 후 반월당 보현사 입구 도로변에 유령단체의 이름으로 "억울하게 죽은 영혼 조용히 애도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조용히 애도하지 말고 크게 떠들며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두 달 후 서울의 삼풍백화점 붕괘참사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번 사건도 아주 작은 사고 끝이 났을 것이다.

당시 집권당은 두 달 후의 지방선거를 의식하여 빨리 마무리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대 참사가 되풀이되는가?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국가나 사회의 운영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수직문화가 상.하와 수평인자 간의 의사소통을 막았기 때문이다. 수 십 년 군사통치가 명령과 지시로 통하는 수직문화, 서열문화. 지시문화 를 고착시켰다. 아무리 자동화하고 상세한 법률을 만든다 해도 비상시에는 결국 사람의 판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국가나 사회를 움직이는 신경망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조직하고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을 분명히 할 때 이런 사고는 줄어들 것이다.

수직문화는 모든 것이 명령이나 지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부조직은 참여하는 권리는 없고 책임만 있으니 자발적 협조와 창의적 노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고가 터지면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상부는 책임이 없고 실무자만 책임을 지고 희생양이 된다.

이번 중앙역 화재 사고의 전동차 운전자도 사고 후의 처신은 잘 못했지만 보통사람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하여 희생을 방지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10여 분이란 시간은 상황 판단하고 보고 하느라 허둥대다 보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안전 기준에 맞게 시설을 고치고 인원을 배치하고 평소에 실제 상황에 맞게 훈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근무자들이 안전에 대해 능동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상.하와 수평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할 때 담당자의 초인적인 능력이나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한,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보통사람이 충실한 훈련과 자발적인 사명감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때 대형사고는 줄어들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수직, 지시 문화가 가장 성행하는 곳이 학교다. 이런 예를 든다면 수 없이 많다. 학교를 다녀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유치원 때 가장 자율이 많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자율이 줄어드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풍토에서 배운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얼마나 자신감과 창의성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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