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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살생부'를 작성해 화제를 모은 철공소 노동자 왕현웅씨. 새 신랑이 된 그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되자 네티즌들이 반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연초 언론이 대서특필한 '민주당 살생부'로 인해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된 '피투성이' 왕현웅씨(30)가 지난 1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새 신랑이 된 왕씨의 앞에 골치거리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검찰이 곧 민주당이 왕씨를 상대로 낸 고소고발 사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네티즌 고소고발 대응과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해 결성된 모임 '네티즌의 힘'(cafe.daum.net/salsaengbu)이 12일 정대철 민주당 대표에게 공개 면담을 제의했다. 민주당이 살생부 관련 네티즌 3명에게 제기한 소송 취하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1월22일 민주당 윤리위원회(위원장 이훈평 의원)는 왕씨를, 다음날 같은 당 김충조 의원은 살생부를 인터넷에 퍼나른 네티즌 '빛이되어'와 'barijo'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각각 고소했다.

'네티즌의 힘'에 따르면, 서울지검 수사관들이 11일 '빛이 되어'의 회사로 찾아와 컴퓨터를 압수해갔고, 'barijo'도 12일 오전 서울지검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빛이되어' 정종길씨(회사원)도 14일 지방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면 검찰 조사에 응할 뜻을 비쳤다.

'네티즌의 힘'은 "한화갑 전 대표가 '당내 화합과 대국민 관계에 보탬이 되는 방향에서 좋은 결과가 맺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고소고발 취하를 시사했다가 전격 사퇴한 후 민주당 새 지도부의 구성을 기다렸다.

그러나 최근 '빛이되어'와 'barijo'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어 면담 신청을 서둘렀다"고 설명했다. '네티즌의 힘' 대표일꾼 오인환(ID 써머스비)씨는 "정 대표가 면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송도 취하하지 않을 경우 우리도 맞고소로 가겠다"고 말했다.

▲ '네티즌의 힘'은 1월22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1인 시위 투쟁을 1월27일 민주당 당사앞에서 1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은 1월27일 1인시위를 벌인 '네티즌의 힘' 대외협력국장 '마왕'. ⓒ 네티즌의 힘
'네티즌의 힘'은 1월22일부터 지금까지 퇴근시간에 맞춰 매일 2시간씩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고소 취하를 촉구하는 1인 시위 투쟁을 전개해 왔으나 아직 당으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빛이되어' 정종길씨는 "송영길, 이미경 등 개혁파 의원들은 격려를 해주는 반면 구주류 의원들은 못본 척 지나가고 의원 보좌관들은 '이런 거 해서 뭐하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살생부 작성자가 왕현웅씨로 밝혀지자 "철공소 직원이 혼자 살생부를 작성했다는 소리에 의원들이 다 웃고 있다"고 말했던 이훈평 민주당 윤리위원장(www.maddle.co.kr/hplee)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조사하고 있는 문제를 다시 당으로 끌고 들어오고 싶지 않다. 그러나 당사자가 납득할 수준의 사과를 하면 소송 취하를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내용.

- 검찰 상황을 지켜보고 있나?
"모른다. 검찰에 그냥 맡겨버렸다. 보아하니 당에서 민사소송을 검토하는 분도 있다고 하더라.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검찰에 전화도 한번 하지 않았다."

- 고소고발을 취하할 생각은 있나?
"본의 아니게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이렇게 됐다고 (왕씨가) 사과를 한 것도 아니지 않나? 도리어 '아직도 정신 못 차리냐'고 말하지 않나? 취하할 수 없다. 함께 한 의원이 한두 명이 아니다."

- 저쪽에서는 맞고소도 불사한다는데...
"맞고소를 할 거리가 뭐가 있나? 어떻게 맞고소를 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 만약 저쪽에서 사과를 해 오면 취하도 검토할 수 있나?
"사과 수준이 받아들일 만하면 검토할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될 만큼 공개적이어야 한다."

- 요즘은 젊은 의원들이 취하하라고 말하지 않던가?
"처음에는 좀 그러더니 이제는 그런 말이 없더라. 게다가 취하할 이유가 있어야 취하를 하지."

이에 대해 '네티즌의 힘'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당시 살생부를 떠들썩하게 확대재생산한 언론들은 놔두고 네티즌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냐?"고 일축했다.

'민주당 살생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7일자 초판 보도를 시작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장전형 부대변인 등 일부 당직자들이 17일 오전 "이미 지도부는 누가 작성했는지 알고 있다. 내부인사가 작성한 것이 확실하다"고 무책임한 발언을 토해냈고, 기자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는 바람에 당내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 민주당 살생부 파문을 촉발시킨 1월17일자 조선일보 초판 기사. 도표로 정리된 '역적 명단'에 구주류 의원들은 발끈했다.
이에 대해 김창룡 교수(인제대 언론정치학부)는 경향신문 기고에서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슈를 언론사라는 공적기관이 주요 의제로 택할 경우 그 법적 책임은 해당 기자와 그 언론사에 있다. 왕씨에게 명예훼손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면 더 큰 책임이 이를 여과없이 확대재생산한 해당 언론사에 있다. 가상공간의 사안에 대해 일반 언론사에 적용되는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한다는 주장도 무리다. 가상공간에서 네티즌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주장을 모욕죄나 명예훼손 등으로 모두 (소송을) 걸자면 전자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살생부 파문 당시 네티즌들 사이에는 민주당의 고소고발 추진을 비난하는 여론이 대세를 이뤘는데, 최근 검찰의 움직임과 민주당의 완강한 태도는 살생부 사태에 대한 평가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퍼 나른 글 때문에 명예훼손?
'역적' 지목된 김충조 의원 행적 놓고 논란 분분

▲ 민주당 김충조 의원
"역적, 겁 없이 반노의 깃발을 높이 들었음.. 필히 퇴출 대상."

왕현웅씨가 작성한 '민주당 살생부'에서 김충조 의원(전남 여수, www.cjkim.or.kr)을 묘사한 대목이다. '살생부'를 인터넷 게시판에 퍼 나른 두 명의 네티즌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됨에 따라 당시 살생부의 기술 내용에 대한 진위 논란도 재개될 조짐이다.

김 의원이 1월23일 서울지검에 접수시킨 고소장에 적힌 피고소인 이름은 '빛이되어'와 '퍼온글임다 ; barijo'. 김 의원은 피고소인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 네티즌들의 아이디와 IP주소만으로 소송을 걸었던 것이다.

김 의원은 고소장에서 "5년 전 제15대 대선 당시 국민회의 사무총장 및 선대본부장으로서 재산상·건강상 개인적 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에 노무현 후보 중앙선대위 부집행위원장직 수락을 고사한 것"이라며 "지구당위원장으로서는 부족한 선거비용을 자비로 충당해 가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소인 등은 허무맹랑한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나의 명예를 훼손하고 지자들에게 상실감을 주었다"며 "이것은 한 개인이나 한 정당의 내부문제가 아니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침묵으로 방치하는 것은 신념이나 원칙에 반한다"고 고소 취지를 설명했다.

김 의원이 당 차원의 소송과 별도로 두 네티즌을 고소하자 네티즌들이 홈페이지에 한꺼번에 몰려와 항의글을 올렸다. 이에 김 의원은 한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잠정 폐쇄하기도.

왕씨는 김 의원의 항변에 대해 ▲ 동아일보 2002년 10월5일자 후단협 기구표에 김 의원이 '전남지역 부회장'으로 소개된 점 ▲ 국민일보 2002년 11월11일자에 박상천 의원이 단일화 결렬로 탈당할 경우 동조할 의원으로 김 의원을 거론한 점 ▲ 조선일보 2002년 11월 10일자에 탈당을 결행할 호남의원으로 김충조 의원을 꼽은 점 등을 들어 "김 의원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일이지, 왜 한낱 아무 힘없는 시민의 풍자적인 글을 고발 조치했는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김 의원의 고소로 인해 검찰 조사를 받거나 받아야 할 두 네티즌 역시 "노하우 게시판에 올려진 살생부 내용이 나름대로 가슴에 와 닿았는데, 다른 글들에 묻히는 것 같아 퍼 날랐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 둘 만을 찍어 고소고발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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