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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동혁은 지금 감옥에 있다.

동혁이와 나는 옛 친구이다. 사실, 친구치고는 그다지 친근하지 않았다. 학우라고 하기엔 공부를 같이 한 적이라곤 없었다. 동지라고 하기엔 뜻을 같이한 기억도 별로 없다. 그래서 어정쩡하지만 친구라고 하는 것이 가장 무난해보인다.

동혁이는 주변 친구들 중에서 학생운동에 비교적 늦게 뛰어든 사람이었다. 늦깎이인 그의 짧은 운동 경력 때문에 나는 그가 책임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미심쩍게 보았고(생각해 보면 나나 그나 도토리 키재기였다),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체화되지도 않았을 법한- 과격하고 현학적인 말들을 하는 그의 어설픔에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또 생각해보면 과격한 유치함으로는 사실 나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한참 마초같은 한심한 소리를 해서 진저리를 치기도 했고, 학생회 선거 때는 지지리도 많이 싸웠다.

그 후 서로 몸담고 있는 공간이 달라지면서, 동혁이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언론에 나온 것을 보았고, 그 얼마 후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선전전을 하러 온 그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의 나동혁에 대한 후원회에 가입했다. 후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얼마 후, 역시 옛 친구인 X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X에게도 동혁이의 사정을 전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후원인이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X의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야.. 걔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평화주의자가 된 거래? 난 걔를 믿을 수가 없어."
"무슨 소리야?"
"걔 원래 생각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전혀 모르겠는데."
"걔가 무슨 속셈으로 평화니 양심적 병역 거부니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아무튼 걔 하는 짓은 이해가 안 돼. 그래서, 뭐, 걔 후원자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

난, 예전에 생각이 많이 달라서 싸우기도 했지만, 동혁이가 적어도 이 사안에 있어서는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고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자신의 신념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 그리고 나 역시 그와 많이 싸웠고 지금도 싸울 거리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 양심적 병역 거부 활동에 대해 그를 지지하는 것에서는 과거의 감정에 구애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지만 X와 더 이상 통화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동혁이는 병역 거부로 구속되었고, 재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항소심에서 보석 결정이 나기를 기대하며 현재 두 달 넘게 수감되어 있다. 감옥에서 그가 보내온 편지와 일기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고 '생각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며, 그의 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편지와 일기를 발췌해서 소개한다.

Peace by Peaceful means -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아무리 좋은 편지도 매일매일 쓰면 지겨울 것 같아서 좋은 생각을 하나 했습니다. 이 안에서 읽는 책을 인용해서 편지를 쓰는 겁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맘에 들거나 혹은 정반대에 해당하는 구절이 나오면 그걸 인용해서 개똥철학을 풀어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소재도 끊이지 않고 항상 신선한 느낌으로 글을 쓸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최근 읽었던 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중략) ...
놀란 할아버지는 소년을 나무랐다.
"말이 아플 때 찬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줄 몰랐단 말이냐?"
소년은 대답했다.
"나는 정말 몰랐어요. 내가 얼마나 그 말을 사랑하고 그 말을 자랑스러워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후 말한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는 지를 아는 것이란다."
--- '봉순이 언니' 중에서

총을 드는 것도, 반대로 총을 들지 않는 것도 평화를 원하는 서로 다른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정말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어떻게 평화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건 아마도 어린아이의 지능과 마음가짐이라면 충분할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신다면, 혹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갈구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평화롭게 평화를 얻고, 사랑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가장 인간답게 인권을 누리는 세상!!
오늘도 너무 미숙한 자신을 반성하며 글을 마칩니다. - 2002. 12. 7 편지 중

만고의 역적, 반민족적 행위

반전평화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병역거부에는 만고의 역적이니 반민족적 행위니 밥먹고 할 짓 없으니 이젠 별 걸 다 외친다느니 하면서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는(하지만 방 분위기는 병역거부에 대한 지지와는 상관없이 화기애애, 그 자체다.) 우리 방 사람들도 소파개정에는 열렬한 한 목소리를 낸다. 한국인으로서 그들의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다. 저런 씨**들, 미국놈들을 거쳐 코쟁이, 양키, 깜둥이 등등 온갖 욕이 다 동원된다. 그리고 소파개정을 주저하는 정치권에 가혹한 심판이 내려진다. 급기야 쪽바리에게까지 화가 미치면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다. 한많은 민족이니, 수치스런 한국 현대사니 하면서 개똥철학이 오고간다. 황당하게도 '그래도 김두한이 인물은 인물이야, 대단한 민족투사 아니냐'는 대목에서 나는 아찔해진다. 한국 사회에 제대로 된 토론과 교육철학이 없다는 사실이 뼈 속 깊숙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여차해서 대화에 끼여들었다가 빨갱이 소리를 듣기 일쑤인데, 사람들은 미국놈이나 일본놈보다 빨갱이에 더 흥분한다. - 2002년 12월 9일 일기 중

'말아먹지 않는' 관행으로 시작된 재판의 날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어디나 여러 가지 관행이 존재한다. 이 곳에도 몇 가지 관행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한 방을 쓰는 사람이 재판을 받는 날에는 그 방 사람들 전체가 국이나 물에 밥을 말아먹지 않는 것이다. 참기름이나 간장에 비벼먹지도 못하고 김을 싸먹어도 안 된다. 게다가 컵라면을 먹거나 남은 밥을 물에 풀어 '즉석 숭늉'을 만들어 먹어서도 안 된다.(사실 이런 것들을 다 삐고 나면 밥 한 그릇 먹는 게 고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먹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같기도 하고. 수년간 학생식당이나 고시원 밥만 먹으며 지내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들이 재판에 어떤 실제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런 관행들이 가지는 심리적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는 우리 삶 곳곳을 살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발을 떨면 복 달아난다거나, 밥그릇 한가운데 숟가락 꼽으면 재수 없다는 등 그런 관행들은 무수히 많다. 사람들에게 몇 번인가 물어보기는 했지만, 이런 관행이 무슨 이유로 계속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재판에서 물먹거나 혹은 재판을 말아먹지 않으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하고 누구나 추측만 할 뿐이다.
.......................
막상 이름이 호명되자 심장박동이 약간 빨라졌다. 재판정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봐도 열 명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 만남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활동 중에 만나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얼굴 중에서는 민가협에서 왔는지, 보라색 손수건을 목에 맨 사람이 두 세 명 눈에 띄었다.(민가협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탑골 공원 앞에서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며 목요집회를 하는데 참가자들이 인권의 상징으로 보라색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거나 목에 맨다.) 사람들 얼굴을 다 훑어보기도 전에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서 순간적으로 약간 당황했으나 재판은 무사히(?) 끝났다.

어차피 선고공판이었기 때문에 변호나 심문도 없고 판사의 질문도 없었다. 다소 긴 판결문 낭독이 있을 뿐이었다. 1년 6개월 실형 판결이 떨어지고 퇴장하는 동시에, 누군가 '나동혁씨 힘내세요'를 외쳤고 이에 호응해서 사람들이 또 다시 박수를 쳤다. 떠밀리다시피 대기실로 들어오느라 제대로 뒤돌아보지 못했지만, '나동혁씨 힘내세요'라는 말이 계속 귀속을 맴돌았다. 심장이 빠르게 망치질을 해댔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잊고 너무 편하게만 지낸 것은 아닌지, 절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수도 없이 다짐을 했던 것을 잊고 그냥 빨리 판결이 내려지기를 기다렸던 것은 아닌지, '나동혁씨 힘내세요'를 외친 사람이 판사에게 엄중한 경고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박수를 친 사람 중에 혹시 가족이 있는 건 아닌지. -2002년 12월 14일

동정과 연민 역시도 인간에 대한 가장 순수한 마음이니까

구속되기 전, 방송국에서 취재요청이 왔었다. 뉴스에서 병역거부를 다루려고 하는데 병역거부자들을 직접 취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학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었고, 마침 대통령이 '양심적 병역기피(!!)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엄포까지 놓고간 터였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였다. 조금이라도 더 간절한 마음으로 병역거부자들의 심정을 알리고 싶었지만, 반드시 집을 방문해서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요구 때문에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담당 PD 말대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을 감안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나라고 왜 모를까? 2급 장애인으로 누워있는 어머니와 막노동을 하시는 연세 많으신 아버지에게 인터뷰를 부탁드리기가 민망했다. 거기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그저 동정심의 대상으로 비쳐지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자존심' 때문에 나는 계속 주저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우호적으로 다루어주려는 방송국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미안했다.(다시 한번, 그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너무 한 번에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차분히 한걸음씩 나가자고 생각했다. 동정과 연민 역시도 인간에 대한 가장 순수한 마음이니까. -2002년 12월 19일 일기 중

교도소 안에서도 시민권을 따내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내 생각을 이해는 고사하고, 인정도 해주려 하지 않는 집단 내에서 나는 종종 바보가 되거나 성인군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보려 하지만 언제나 자존심만 상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인내심만큼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구치소에 들어오던 날이었습니다. 입감 절차를 밟고 있는데 '병역법 위반'이라는 소리를 듣는 교도관마다 '증인이냐'고 묻더군요. 여기에서는 병역거부하면 '여호와의 증인'으로 통하니까요. '예'하고 대답하면 그 짧은 대답 하나로 무슨 약속이라도 주고받은 양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증인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뭐라고 대답할까 망설이게 됩니다. '반전평화'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모두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이해시키고 싶어서인지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줄줄 교과서 외듯 말해줘도 전혀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예상하면 말해서 뭐하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가끔씩 비종교적인 병역거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날, 딱 한 명의 교도관이 '종교적인 이유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반가운 나머지 나오는 대로 '아니요, 사상적인 이유입니다'라고 답했더니 호의적이던 표정이 굳어버리면서 '그럼, 너 사회주의자냐?'고 쏘아 부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참 뭐라고 대답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반전 평화'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으응, 반전평화'하면서 표정이 온화하게 변하더군요. 도대체 사회주의자와 반전평화주의자 사이에는 어떤 심오한 사상의 차이가 놓여 있길래...

얼마전, WRI 활동가와 인터뷰한 신문기사를 봤습니다. 아나키스트라는 표현이 왜 그렇게 생경하게 느껴지던지, 마치 신문 속과는 다른 현실 속의 한국사회가 존재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병역거부 역사 속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종교인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생태주의자, 평화주의자, 반전이나 인권운동가, 그리고 그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상식에 따라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던 수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이들 모두가 각기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해왔고 서로를 존중하며 연대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으레 '너, 증인이냐'고 묻고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은 그들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과는 다른 타자로 취급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병역거부자들은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헌법 위에는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이나, 공화국에서는 법보다 사회정의가 우선한다는 홍세화씨의 말을 생각해 볼 때 병역거부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정신이 박힌' 시민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남의 문제로 제쳐둘 수 있는 것입니다. 수십 년간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똑같은 이유로 이 곳을 거쳐간 마당에 병역거부자들을 공화국 밖의 '집단'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만큼 손쉬운 방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비록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집단이지만, 방안에서 나는 시민권을 따내기 위한 지루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성인군자나 혹은 바보가 되지 않고 말입니다. 그저 침묵하거나 혹은 너무 많이 말하지 않고 말입니다. 많이 말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병역거부자를 민족반역자나 만고의 역적쯤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말하면 서로 얼굴을 붉히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이겨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뼈와 살에 새겨진 교훈이니까요. 어떻게 말을 시작하면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항상 고민합니다. 때로는 직설법을 써보기도 하고 때로는 빙빙 우회하는 방법을 써보기도 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감옥에 갈 자유는 있는 것이다' 변호사가 처음 만났을 때 해주었던 인상 깊은 한마디만큼은 사람들도 모두 수긍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그래, 너 같은 놈도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결론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가 부족했는데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명의로 온 편지를 몇 통 보더니 사람들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만고의 역적이 졸지에 양심수가 된 것입니다. 권위에의 호소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민가협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판 결과가 신문에 나온 것을 계기로 시민권이 부여되었습니다. 신문에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인데 함부로 봐서는 안된다는 얄팍한 사고방식 덕분이지만, 이제는 사람들과 가끔씩 토론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문득, 이 곳에서도 '작은 하나 하나 사는 게 모두 투쟁이라던 신영복 선생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이제 시민권을 얻는 싸움이 아니라, 병역거부권을 따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이번 싸움은 아주 오래 걸릴 듯 합니다 . -2002년 12월 21일 편지 중

덧붙이는 글 | 나동혁 후원 홈페이지 
주소는 http://ilovepeace.wo.to/

"Peace by Peaceful Means"는 요한 갈퉁의 책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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