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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0개월이 조금 넘은 손자를 업고 할머니가 피아노를 친다. 서투른 듯, 익숙한 듯... 얼마동안인가를 치고 있자니 등에 있는 손자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흥얼흥얼, 몸도 흔들흔들 한다. 난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이나 피아노를 쳤다. 손자의 그런 동작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내가 피아노를 배운 것은 5년 전 내 나이 48세 때이다. 큰 딸아이는 직장을 다니고 아들아이는 군 입대를 했다.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돈 벌 능력도 못되고'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내 기억 속 밑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꺼내었다. '그래 바로 그거다. 피아노치기를 배우는 거야.'

내가 피아노를 배운다고 하니깐 동네 여인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 나이에 무슨 피아노 수능이라도 볼건가?"
"아님 피아니스트라도 될건가?"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입고 싶을 때 사 입고, 놀러가고 싶을 때 놀러가고 그러지 뭐 머릿살 아프게..."

아이쿠 얘기 번지수 잘못 찾았구나 생각하곤 이내 화제를 바꿨다.

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것은 38년 전 중학교 입학해서부터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엔 관현악부가 있었고 어느날 그들이 연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나 같은 서민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보냈고 집안형편이 갑자기 나빠지면서 난 자연스럽게 여상을 가게 되었다. 중학교 분위기와 많이 다른 고등학교에선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3년을 보냈다.

졸업하고, 사회, 그리고 몇 년 후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정신 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내 나이가 중년을 넘기고 노년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까맣게 잊혀진 채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나이가 들어도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피아노치기 라는 사실이 놀라웠다.(피아노를 모르면 바이올린 하기가 힘들다고 함) 그런 생각이든 난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바로 학원으로 갔고 원장과 상담을 마치고 곧 바로 레슨에 들어갔다.

사실 원장도 놀랐다고 한다. 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은 몇 있어도 실제로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고, 거기에 악보를 보는데도 별 무리가 없으니 더 놀랍단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그렇게 1년을 배웠다. 1년을 다니니 아주 어려운 곡은 힘들지만 웬만한 곡은 얼마간 연습을 하면 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난 내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도 생겨났고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맛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날 동네 여인들이 우리집에 다 모였다. 난 나의 피아노 솜씨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 지금부터 무료로 생음악을 들려주겠습니다."
그리곤 난 그동안 손에 익숙해진 우리가요 몇 곡을 쳤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애모', '멍에', '그리움만 쌓이네', '금지된 장난' 등에 여인들은 우~ 와~ 소리 치며 손뼉을 쳤다.

"대단하네, 배우니깐 그렇게 써먹네" 등... 속으로 난 흐뭇했다. 나이 한 살이라도 덜 들었을 때 배워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또 들었다. 지금도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날은 1~2시간씩 친다.

그리고 그 날 같이 손자가 오는 날은 일부러라도 친다. 또, 휴일 남편과 단 둘이 있을 때 남편이 인터넷 장기나 바둑을 둘 때 난 슬며시 피아노를 친다. 그러면 남편의 모습은 물론 집안 분위기는 평화스럽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피아노를 왜 배웠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테다. '노후대책'이라고 '돈만 저축' 하는 '연금보험'만 드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취미생활도 하나씩 둘씩 차곡차곡 저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내 노년에 쓸쓸하고, 외롭고, 힘들 때, 또 자식들이, 손주들이 너무나도 보고싶은데 그네들의 일이 바빠서 오지 못할 때 나만의 보물상자가 있다면, 그 보물상자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즐길 수 있으니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또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는지.

내 노년을 위하여 난 언제부터인가 나만의 보물상자에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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