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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사한 딸아이 집들이에 갔다. 도착하니 동생의 댁 등에 업혀 있던 9개월된 손자 녀석이 나를 보더니 벙글벙글 웃었다. 이내 저를 데려가라고 몸을 들썩였다. 그런 모습을 본 남동생이 한마디했다.

"저를 키워준 사람이라 낯을 가리지 않은가보네."

하도 울어서 업고 있었는데 외할머니인 내가 오니깐 아이가 얼굴색이 달라졌단다. 그런 손자가 난 싫지 않았다. 손자는 다른 사람에게는 낯을 가려도 나한테만큼은 제 엄마 대하듯 한다. 친할머니보다도 내게 살갑게 대하는 손자를 보면 지난 몇 달간 키운 정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난 봄, 결혼을 한 후 직장을 다니던 딸아이가 아이를 낳았다. 딸도 우리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우리 집에서는 첫 손자였기에 그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집에 오던 날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모빌을 걸어놓고 잘 듣지도 못하는 애기가 깬다고 온식구들이 목소리, 발소리 죽여가며 조용조용 다녔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찬바람 든다고 아기 있는 방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딸은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 난 손자가 눈에 밟혔다. 단걸음에 아이를 보러갔다. 딸집에 가까워오자 발걸음은 더 바빠졌다. 그 후로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딸은 3개월간의 출산휴가가 끝나고 나서는 복직을 했다. 그러자니 육아문제는 내 차지가 되었다. 딸의 입장에선 시어머니보다 친정엄마인 내가 더 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산후조리때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내 체력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망설이긴 했으나 딸아이를 생각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처음 손자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새로운 일이 생겨 힘든 줄도 몰랐다. 둘째주까지 아기의 건강과 쓰레기를 걱정하며 1회용 기저귀 대신 헝겊기저귀를 사용했다. 하루에 한 번 목욕은 기본이고 음악을 들려주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근처 공원 산책도 거르지 않았다. 그 밖에도 아기를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면 별 우스운 짓도 다했다. 아무튼 내가 우리 아이들 키울 때보다 사랑과 정성을 듬뿍듬뿍 주었다.

그러나 손주가 온 지 셋째주가 지나면서부터는 내 체력이 점점 떨어졌다. 피로가 쌓이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간단한 외출조차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정신적으로도 지쳐갔다.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다보니 생각하는 일조차도 소심해졌다. 그때부터 생각도 삐딱해졌다.

'딸 곱게 길러 시집 보내놨더니 이젠 외손자까지 길러줘야 하나?'싶은 생각이 들었다. 옛말에 외손자를 이뻐하느니 팥밭을 멘다는 말도 있다는데 싶어 이런저런 갈등이 생겼다. 딸이 미안한 마음에 "엄마 힘들지?"하는 말도 그리 큰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른바 '수고비'를 받긴 했지만 그 역시 피곤한 몸에는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일상으로부터 일이 있어 잠깐이라도 밖에 나오면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해, 바람은 물론이고 시끌시끌한 소음이며, 어디론가 바삐 오가는 사람들, 심지어 매연 뿜고 다니는 버스까지, 그 모든 것이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생활공간이었음이 새삼 느껴졌다. 아울러 느긋함이 그리워졌다. 외출을 즐기지는 않지만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는 그 자유로움.

아이를 키운 지 두 달이 흘렀다. 그 동안 내 마음 한편에서는 불편함이 깊어졌고, 자유로움에 대한 동경도 부쩍 자랐다. 난 더 이상의 망설임이 필요치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상태였다. 어느 날 딸과 사위에게 내 생각과 내 상태를 말했다. 결국 여러가지 아쉽지만 딸이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엄마가 직접 키우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아기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여러가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또 아기가 많이 보고 싶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동안 눈에 밟히겠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면 어떨까?'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당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내려오기 힘들 정도로 부어 있었고, 아기를 안고 일어서다 아기를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일 내지 싶어서 아쉽지만 이쯤해서 마음을 접기로 했다.

아이가 엄마의 품으로 돌아간 후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2개월이 2년이 흐른 듯 길게 느껴졌다. 아이가 떠난 후 되찾은 생활의 느긋함이 한동안 실감나지 않았다.

우리 딸처럼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낳으면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식들이 부모님께 아기를 맡길 경우 무조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싶다. 부모에게 적당한 수고비를 드려야 서로가 편안할 수 있다. 아울러 부모들은 자신이 체력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떨어지면 힘들다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는 손자를 보면서 그 동안 무심히 지나왔던 내 노년의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가도 새삼 알게 되었다. 노년의 우리 부모들은 더 이상 만능 해결사가 아니라는 것을 다 큰 자식들이 알아줬으면 싶기도 하다. 또 우리 부모들도 나름대로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고 여유로운 노후를 맞이하고 싶기도 하다.

난 지금도 아이를 돌보기를 그만둔 것에 대해 잘 했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들이 손자를 돌볼 수 없다고 해서 손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정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예쁘고 또 예쁘다. 내자식 키울 때와는 다른 깊은 애정이 생긴다.

그러나, 그 사랑과 함께 필요한 또 한 사랑은 곧 나에 대한 사랑이다. 그것이 내가 두 달간 아이를 돌보며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금 딸아이는 아기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생각 바꾸기를 잘 했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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