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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이 새로 펴낸 책 두 권을 보내왔다. 한 권은 <정연주의 워싱턴 비망록1:서울-워싱턴-평양>이고, 나머지 한 권은 <정연주 글모음-기자인 것이 부끄럽다>(모두 비봉출판사 펴냄)이다. 정 주간은 박정희 정권하인 75년 동아투위의 일원으로 자유언론을 외치다가 동료들과 함께 길거리로 내쫓겨 88년 <한겨레>가 창간되기까지 붓을 들 수 없었다. 이번에 정 주간이 펴낸 책 가운데 <정연주의 워싱턴 비망록1:서울-워싱턴-평양>은 그가 암울했던 시절에 겪었던 고난의 개인사를 기록한 것으로, 크게 보면 70~80년대 한국언론사이자 시대사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말 공안기관에 쫓기던 시절부터 미국 유학시절을 거쳐 한겨레신문에 입사,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기까지 10여년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자 정연주'는 그동안 한미관계, 남북문제, 한국언론 등의 분야에서 식견있는 칼럼으로 독자들과 만나왔다. 특히 그는 강력한 권력자 앞에서는 굴종을, 나약한 권력자 앞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한국의 언론권력에 대해 깊은 통찰과 함께 비판을 가해왔다. 편집자는 이번에 그가 펴낸 책 속에서 그 '진수' 하나를 찾아내 여기 소개코자한다. 아래 글은 그가 1977년 <월간 대화> 10월호에 실은 것으로, 이 글 때문에 이 잡지는 폐간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그가 한국 언론, 언론인을 향해 쏟아낸 통렬한 비판은 25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한국 언론, 언론인의 행태를 그의 글을 통해 다시 고발한다....<편집자 주>


■ 언론계 선배 동료들에게

지금 이런 편지를 옛 동료들에게 쓰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견딜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무기력과 굴종의 깊은 늪에 빠져 있는 동안, 이 땅에는 너무나 엄청난 비극들이 거침없이 함부로 저질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억눌리고, 금력에 우롱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에 허덕이며 갈 길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데도 그들의 신음과 고통을 감싸주고 치유해 주어야 할 당신들은 이를 외면하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어져버렸습니다.

▲ <정연주의 워싱턴비망록1:서울-워싱턴-평양> 표지. 이 책에는 70년대 후반 이후 그의 고단했던 언론계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당신은 이들의 핏발 선 눈동자를 보지 못하십니까?
당신은 외치다 외치다 끝내 아무런 메아리 없어 지치고 목 쉬어버린 저 서러운 목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당신은 전신의 마디마디에 맺혀 있는 저들의 아픔과 분노와 한을 모르십니까?

더구나 또다시 10월은 다가오는데, 3년 전 그 10월은 그렇게도 뜨겁고 찬란했는데…. 3년 전 10월 24일 우리들이 함께 높이 들어올렸던 그 찬란했던 자유언론의 횃불이 활활 타면서 일으켰던 눈부신 광휘들이 이제 또다시 생생하게 가슴에 저며오자 나는 견딜 수 없는 서러움과 분노를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이 꼬락서니가 되어버렸을까?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1975년의 잔인했던 봄 이후 당신들이 신문지상을 통해 그처럼 강변했던 '자유언론의 의지'는 이제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나는 이 몇 가지 이유로 해서, 이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행위는 바로 아직은 당신들에게 애정과 기대가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애정이 있기에 증오도 하고 분노도 하는 것입니다. 애정이 없다면 무관심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나는 이 편지를 신문사를 경영하고 있는 사장들이나, 그들의 눈치나 살피며 자리 지키기에 전전긍긍하시는 일부 간부급 언론인들에게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장들은 이미 옛날의 신문사 사장이 아니라 애석하게도 다른 사업의 돈벌이에 정신이 없으시고, 신문은 그 방패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장사꾼으로 전락되신 그분들에게 이야기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좋은 신문 만들기보다는 돈벌이 사업에 여념이 없으신 이런 기업주들을 어떻게 신문인이라고 볼 수 있고,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주필이니 국장이니 하시는 이들도 세상에서 언론인이라고 보지 않게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재벌의 마름신세가 된 언론계 간부

세상에서는 특히 이 분들 중 일부를 언론인이라고 보기보다는 권력에 굴종하고 혹은 아첨하여 그 결과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줍거나, 혹은 문어발같이 수없이 뻗어나는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을 방패로 이용하기에 급급하는 재벌화된 사주들이 마름신세가 된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동정하고 있습니다, 실정이 이렇고 보니 어떻게 이 분들에게 자유언론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다른 기업과는 달리 활자라는 막강한 힘을 행사라고 있으므로 이들의 처신 여하는 사회에 무서운 해독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분들 중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자기의 본의 아닌 죄과를 고민하는 분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자진해서 변신, 아첨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떻게 변신과정을 밟아 왔는가, 그리고 이 사회에 어떠한 해독을 범하고 있는가를 실례를 들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름을 대면 삼척동자까지는 안 가더라도 웬만한 사람은 알 수 있는 어느 신문사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분의 지난날의 글을 한번 읽어봅시다. 굳이 이름을 여기에 밝히지 않는 이유는, 그 분처럼 붓을 마구 휘두르면서 저지르는 죄를 범하기 싫어서이며, 그래서 적어도 그의 마지막 개인의 명예는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나의 순수한 양식 때문입니다.

'결국 권력 당국은 언론을 규제하던 끝에 언론을 병신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데모 에 또 하나의 필연성을 부여했으니 통탄할 일이다. 수단이 목적화하는 데 따르는 무서운 결과를 또 한 번 보았다는 느낌이다…권력과 언론은 영원히 대결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러 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적대심과 아울러 외경심이 개재해 있어야 한다.'

<기자협회보> 1971년 4월 23일자에 게재된 그분의 글입니다. 그러던 분들이 이제는 어떻게 변신을 하여 어떤 신문을 만들고 있으며 어떤 글을 쓰고 계시는지 당신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세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다가, 앞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나는 애정도 기대도 분노도 없으며, 그저 역겨움과 무관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분의 단세포적인 논리전개, 이쪽 아니면 모두 빨갛다는 매카시즘적인 독선, 자기논리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붓을 휘두르면서 저지르는 지적 오만성, 그리고 이 시대적 상황에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소리들에 대해 함부로 지껄여 대는 그분의 인간적 불성실성, 이런 것들이 어느 역사의 장에 가서는 틀림없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저지르는 일들이 개인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신문이라는 엄청난 활자의 힘에 의해 확산되어 이 사회와 역사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오죽했으면 나이 어린 젊은 대학생이 '사이비 언론인의 논리의 비판 - 극복 -청산' 이라는 글까지 쓰게 되었겠습니까? 어쨌든 이런 부류의 분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으렵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언론계의 주인이고 자유언론을 외쳐야 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나는 최근 내가 겪고, 듣고, 느꼈던 몇 가지 일들과 제가 읽었던 몇 개의 글을 추려서 당신들이 어디에까지 와 있는가를 이야기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왜 중요한고 하니, 당신들은 숲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숲의 덩어리를 모릅니다. 그것은 밖에서 보아야만 정확하고 온전하게 볼 수 있는 것이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숲 밖으로 밀려나 있는 관계로 내가 그 숲 속에 있을 때 나 자신도 느끼지 못했던 일들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야기를 전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지난 8월5일 저녁 7시 반 서울 청계천 6가 평화시장 주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고 전태일씨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법정 모독죄로 구속되고 이와 때를 맞추어 근로자들을 위한 노동교실이 폐쇄되자 이곳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이곳에서 기도회를 가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무지무지하게 많은 정사복 경찰에 의해 이모임은 강제로 저지되었습니다.

이날의 무참했던 광경을 여기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근로자 중 몇몇은 사정없이 얻어터지고, 이 기도회에 참석하려 했던 전 대통령 윤보선씨의 부인 공덕귀 여사를 비롯해서 많은 구속자 가족들, 근로자들이 경찰의 억센 힘에 밀려 마구 길가로 밀치어 끌려나갔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은 그냥 얻어맞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상식도, 양식도, 논리도 없이, 그저 힘, 물리적인 힘밖에 남이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근방에서 얼쩡거리다가 얻어맞았습니다. 기자의 본능, 또는 생리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사건 가까이에 접근하고 싶은 그런 것 말입니다. 그래 그러다가 강제로 마구 떠밀리기에 그렇게 떠미는 사복경찰을 그냥 쳐다만 보았는데, "이 새끼, 뭘 봐? 꺼져, 이 새끼야!" 하면서 옆구리를 태권도 정권으로 마구 내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맞았다고 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그날의 무참했던 '힘의 현장'이 너무도 서글펐고, 더구나 그 아픔을 아무데도 호소 할 수 없는 바로 이 땅의 상황, 이 땅의 언론의 상황이 서글프고 분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아픔이라고 해서 육체적인 아픔을 얘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물론 육체적인 아픔도 아픔이기는 하지만, 이 시대의 정신적인 아픔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이런 저런 폭력에 의해 두들겨 맞고 짓밟힐 때 "아야!" 소리라도 내지르는 게 본능이고, 또한 그 아픔의 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아파하고, 그렇게 해서 그 아픔이 얼마만큼 심한 것인가, 어떻게 고칠 수 없는 가의 길이 찾아지도록 원하는 것이 또한 본능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날 그 저녁, 그 아픔의 현장에는 그 아픔들을 전달해야 할 기자들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그날뿐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은 너무도 흔히 있는 일이었고, 또한 그런 현장에서 기자들이 취재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도 참 오래되고 분한 일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 몇 해 동안 그토록 아픔의 소리가 애절하고 처절하게 부르짖어졌어도, 당신들은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은, 많은 경륜 그런 일들의 있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두 달 전쯤이었습니다. 서울 정동 한복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 필립 포터 박사가 왔을 때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구속자 가족들은 교회 뜰로 나와 울부짖었습니다. 그러자 그 근방에 깔려 있던 경찰 기관원들이 이들을 마구 끌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아! 이제는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구나!"하는 비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음이, 내 손에 붓이 없음이 그때처럼 한스러울 때가 없었으며, 또한 붓을 갖고 있는 당신들이 그때처럼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그때 나는 옛적 같은 출입처를 나가던 어느 현직기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우연히 그 옆을 지나다가 그 현장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저기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 얼마나 수치스럽고 끔찍한 일입니까. 당신들은 혹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문에 나지도 않을 기사를 취재해서 뭣해?"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기자인 것을 포기하십시오. 만약 보도될 것만 취재를 한다면, 우리나라 신문처럼 지면이 좁은 경우 당신들이 취재한 모든 기사가 신문에 날 수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취재하기에 앞서 '날 수 있는 것'을 엄밀하게 선택해서 취재하고 있단 말입니까? 아니, 그에 앞서서 적어도 사건의 맥락은 알아 두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들이 스스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해야 할 엄청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하는 경우, 당신들은 결코 기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제 때 가졌던 지사 스타일의 기자 시대는 끝났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적어도 직업의식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언론이라는 직업이 주는 윤리, 언론이 본래 고유한 것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과 책임, 거기에 따르는 윤리가 있지 않습니까?

함석헌 선생은 <씨알 소리> 창간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미운 것은 신문입니다. 신문이 무엇입니까? 씨알의 눈이요 입입니다… 사실 옛날 예수 , 석가, 공자가 섰던 자리에 오늘날은 신문이 서 있습니다. 오늘의 종교는 신문입니다."

그런 종교와도 같은 신문에 몸담고 있는 당신들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알량한 촌지와 뻔질난 해외여행이라는 화대 때문에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포기한 채 화간을 계속하시렵니까?

사람보다 새가 더 중요한가

해외여행 이야기가 났으니, 그 이야기 좀 하렵니다. 최근 신문 2면에 그처럼 뻔질나게 등장하는 소위 '해외취재'는 무엇입니까?
대강 알만한 이름들이 계속 2면 구석에 사진과 함께 실리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아, 이제 우리나라 기자들도 외국에 이처럼 자주 나가서 취재까지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견문도 넓어지고 좀 좋겠는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신문사에 있을 때 저는 제 자신이 느꼈던 뼈저린 경험이 있습니다.

▲ <정연주 글모음-기자인 것이 부끄럽다> 표지
기자는 철저히 소모적인 직업인데, 그렇게 소모해 버리고 나면 일정 기간 동안 다시 지식을 충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출입처라는 데를 나가 보면 웬만한 관리들은 다 한 번씩 외국을 다녀왔으므로, 기자가 취재를 하다가도 그들이 "외국의 경우를 보면…"이라는 단서를 달면 우선 기가 팍 죽어버리고 또한 지식에도 그들에게 뒤져 있음을 수없이 느꼈습니다.

그래, 그런 나였기에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해외취재'를 갔다 왔다는 사람들 중 기사를 쓰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욱이 그 '해외취재'라는 것이 정부의 시혜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분노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들은 혹 "자식, 제가 밖으로 나가보지 못해 괜히 시샘한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런 시대적인 현실에서 해외로 못나간 것이 자랑스럽고, 그런 시혜의 일부로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떳떳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결국, 당신들은 그런 화대와도 같은 것들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패해지고, 그것은 당신들 속에 있는 허무주의 또는 패배주의 의식과 적당히 섞여서는 마침내 소시민적 생활로 주저앉게 되는 절망적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월급이나 타 먹고, 마누라 자식이나 생각하고, 집이나 좀 근사한 것 마련하고, 또 적당 적당히 나오는 촌지로 술이나 마시면서 취해 가지고는 이 풍진 세상 적당히 잊어버리고, 여차 잘못했다가는 모가지나 댕겅할 텐데 적당적당히 기사나 쓰고, 그러면서 한 세상 살아가는 거지뭐, 뭐 쥐뿔나게 잘났다고 피 봐가면서 앞장을 서! 앞장서 가던 녀석들 꼴 좋다. 직장 없어서 이리저리 길거리나 배회 방황하고 , 주머니가 텅 비어서 기껏 소주잔이나 핥고 있으니, 제기럴, 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것은 당신들의 자포자기와 체념으로 빚어진 이 끔찍한 패배주의 또는 허무주의 가 마침내 냉소주의에까지 이르러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자유니 진리니 정의니 그런 따위의 말이 언제 한번 이 역사에서 제대로 피어본 일이 있는가. 설쳐 봐야 결국은 힘이 강한 보수가 이기는 것이다. 너희들 극소수의 잘난 체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패배의 쓴맛을 볼 뿐이다. 힘의 역할 관계를 직시해야 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나는 종종 당신들로부터 들어 왔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냉소주의의 발톱입니다. 소극적으로 허무주의 또는 패배주의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비웃으면서, 찬웃음을 띠면서,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목까지 걸고 넘어지면서 그 무서운 발톱으로 할퀴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빚어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같은 사시적(斜視的)인 눈으로 본 결과 드러난 비극은 어떤 것입니까? 오보(誤報), 바로 그것입니다. 그냥 모르는 편은 차라리 나은데 이제는 잘못 끌고 가는 적극적인 범죄까지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최근 소위 해위(海葦) 선생(윤보선 전 대통령의 호)의 서한문 사건은 이를 잘 증명하지 않습니까?(1977년, 윤보선 전 대통령은 일본 후쿠다 수상에게 박정희 유신정권과 유착한 일본 정부를 비판하면서, 일본이 대한 정책을 시정할 것을 촉구하는 긴 글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상당 기간 묵살했던 당신 한국 언론이 뒤늦게 편지의 내용을 거두절미하고 윤 전 대통령이 내정간섭을 요청했다는 식으로 왜곡한 사건을 지칭―필자주)

서한문 전문은 읽어 보지도 않고 '자료'에 의해 마구 써버리는 불성실성―그것은 단순히 힘에 밀려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이같은 냉소주의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신문이 없는 것보다 더 못하다"는 말, 이 말이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과 다른 왜곡된 기사, 뒤틀린 사고에 바탕을 둔 비뚤어진 활 자―당신들이 이 역사에 대해 저지르고 있는 이같은 엄청난 범죄를 정말 어찌하시렵니까?

이런 생각이 나 혼자의 독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을 향한 민중의 분노의 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신문, 뒤틀리고 꼬여버린 활자들, 그것이 내뿜고 있는 독성을 보고 분노해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는 이 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어디 한번 들어 보십시오

"벙어리는 필요없다," "사진은 찍어서 뭣 하려느냐." "누구한테 팔아 먹으려느냐." "너희들 혹시 xx의 앞잡이 아니냐." "잡아 족쳐라." (<주간시민> 8월 1일자, '한국의 기자들')

이 말들은 지난 7월 초순 노동청 주변에서 벌어진 근로자들의 데모 때 이를 취재하려던 기자들에게 던져진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그 신문의 기사에는 이런 이야기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에 앞서 방림방적 근로자들이 밀린 잔업수당이 16억원이나 된다고 주장, 이의 지급을 관계 요로에 진정한 일이 있다. 이 소식을 듣고 몇몇 기자들이 취재하기 위해 회사에 들렸다고 한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후대를 받고 물러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주요 일간지에 그 기사가 취급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근로자들은 '우리들은 하루 종일 서서 다리가 부어오르도록 일하고도 1천여 원의 일당을 받는데, 기자들을 슬쩍 나타났다 사라지고도 우리들의 일당의 몇십 배 되는 금일봉을 얻어냈다. 유다가 예수를 팔 듯, 그들은 우리를 팔았다…"

결국은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습니다. 노동자들의 애절한 소리마저 짓밟아버리고 당신들은 이처럼 인간적인 타락까지 서슴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소리 없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민중의 소리를 더 들어 보십시오.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언론은 상식을 저버린 지 오래다… 부족한 상상력과 지혜를 동원하여 기사를 재편집하고 그 뒤에 새겨진 의미를 재해석하여 읽느라고 신문을 받아들면 졸지에 시켜주지도 않은 편집국장이 되고 해설위원이 되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언론인들이여! 이제 민중을 속이는 일을 멈추라! 민중은 말이 없지만, 민중은 우둔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들은 역사 속에서 직접 체험하지 않았던가." (월간<대화> 77년 9월호, '허위의 시대를 사는 설움과 아픔')

"이제 신문이 정부와권력의 부속물인 양 느껴지는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며 안타까움과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눈이 시력을 잃으면 그것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신문이 진실에 대한 성실성과 정론에의 집착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하급 휴지, 하급 포장지에 불과할 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월간<대화> 77년 9월호, '저질 휴지와 저질 포장지')

"반 풍수가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사건(이른바 무등산 타잔 사건)을 보도한 대부분의 기자도 반 풍수에 해당되는 사람들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기자들의 보도를 믿고 울고 웃고 하는 독자들이 몹시 딱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월간 <대화> 77년 8월호, '무등산 타잔의 진상')

한국 언론의 뒤틀려져버린 상황에 대한 저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제 더 이상 그 뒤틀려진 상황을 세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너무 잘 알고 있고 또한 우리가 온몸으로, 생활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앞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사건들을 왜 제대로 보도하지 않느냐,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데 머물지 않고 왜 왜곡하여 거짓보도를 하고 있느냐, 왜 국내뉴스를 국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접하지 못하고 해외여행자나 외국신문을 통해 알게 되느냐,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으니까 입으로 입으로 통해 번지면서 눈덩이처럼 부풀어져 가는 이 비극적인 유언비어의 폐해는 어찌하면 좋으냐, 새 한 마리 나타났다고 텔레비전에는 대문짝만한 사진과 기사가 나는데, 한 노동자가 정말 억울하게 가스 질식사를 했는데도 제대로 보도도 하지 않으니, 사람보다 새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를 세세하게 나열하면 무엇합니까.

잘 길들여진 서커스단의 곰들처럼

▲ 1974년 10월 24일 오전 9시.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200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자유언론실천선언대회>가 열렸다.
당신들은 이같은 사태에 대해 어쩌면 "너무 엄청난 힘에 밀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고 자기합리화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합리화는 지식인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인 동시에 가장 멀리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용렬한 짓입니다. 이 현실 앞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강간을 당했다고 또 말하시렵니까? 그럼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강간을 당할 만큼 당신들은 그렇게 힘이 없었습니까? 간디는, "이빨은 둬서 뭣해? 강간을 하려는 자는 이빨로 깨물어서라도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들은 이빨도 없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다 용렬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에서 자유언론이 그냥 주어졌습니까? 모든 권력자들은 결코 언론의 자유를 주려 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권력 가진 사람이 자기의 잘못과 실책을 낱낱이 들추어내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언론과 권력은 영원히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여지는 것이며, 자유언론이라는 것은 싸워서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참 자유언론인 것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냥 빼앗길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마침내 당신들은 몸을 팔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짐짓 강간당한 듯 강변을 하다 마침내는 적당적당히 주는 화대를 받아가면서, 바로 당신들 앞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는 귀 닫아 버리고 눈감아버리고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마침내 해서는 정말 안 될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들은 창부라는 이야기입니다. '생활에 찌들려서 정조를 팔게 된' 창부인지, 아니면 정말 엄청난 힘에 의해서 정조를 잃어버린 뒤 자포자기를 해서 그리 되어버렸는지, 아니면 바람이 나서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당신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창부처럼 정조도, 지조도 다 휴지조각처럼 내던져버리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데는 나 자신이 한때 창부였기 때문입니다. 나도 한때 잘 길들여진 서커스단의 곰들처럼 온갖 몸짓을 다했으며, 적당적당히 주는 화대를 받으면서, 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이 역사의 흐름을 잊어버린 채 나의 정조를 팔았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더 이상의 창부이기를 거부했습니다. 창부의 생활을 청산하고 나니 그 생활이 그렇게도 더럽고 추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죄많은 생활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당신들에게 꼭 해야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당신들과 당신들의 직업에 대해 한 없는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뻔히 온갖 욕을 얻어먹을 것을 알면서, 어쩌면 몰매라도 실컷 두들겨 맞을지도 모르면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은 바로 당신들과 당신들의 직업에 대한 나의 끝없는 애정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그 지독한 '연탄가스의 중독'에서 깨어나십시오. 이제 당신들의 무디어진 이성의 칼날을 다시 갈고, 식어버린 자유언론에의 의지와 정열을 다시 불태우십시오.

그래서 이 핏빛 서린 눈동자들과, 외치다 외치다 지쳐 목 쉬어 버린 저 서러운 목소리들에 다시 당신의 눈과 귀를 모아 보십시오. 그리고 이 추위와 고통과 서러움에 몸을 떨고 있는 발가벗은 알몸뚱이들을 당신의 온몸으로 포옹해 주십시오.

아! 이제 또다시 그 뜨겁고 찬란했던 10월이 다가옵니다. 온통 밝은 햇살이 가득한 그 어느 벌판으로 달려가서 우리들의 뜨겁디 뜨거운 가슴들을 부퉁켜 안으면서 환희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를 수 있는 그날은 정녕 언제 올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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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