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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에서는 전국의 시민운동가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박2일 동안 '제2회 전국 시민운동가 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대회는 '시민운동의 소통과 통합'이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시민운동의 대선 대응 방안, 소통문제, 비영리 마케팅 문제 등을 둘러싸고 많은 대화가 오갔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이번 시민운동가 대회를 4회에 걸쳐 쟁점별로 연재할 예정이다. 이 기사는 그 두 번째이다...편집자 주


▲ 전국시민운동가대회 첫째날인 25일 열린 '소통의 방-다음 세대와 소통하기'. 이 자리에는 하자센터의 청소년 4명이 나와 시민운동에 뼈있는 이의를 제기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지난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경기도 양평에서 진행된 제2회 전국시민운동가대회의 모토는 '소통과 통합을 위하여'였다. 이런 취지를 살리고자 마련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소통의 방-다음세대와 소통하기'.

대회 첫째날 오후 7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 시간에는 하자센터(서울시립 청소년 직업 체험센터)에서 직업체험을 하고 있는 청소년 4명이 나와 그들이 바라본, 그리고 겪어본 시민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다.

'스캔크', '타락천사', '표' 그리고 '정수'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들은 모두 (시민)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실제 시민운동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적들은 그간 많이 거론됐던 것이기도 하지만, 기존 시민운동가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할만큼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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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시민운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 지난 해 한 시민단체에서 10대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타락천사. 그는 "활동가들 스스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는지 돌아봐야한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들은 우선 시민운동의 '소통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민단체는 시민과 소통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게 목적인데 시민과도, 시민단체 내부 구성원끼리도 정작 제대로 소통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스캔크는 '시민단체'와 '시민' 사이의 소통에 관한 얘기를 했다.

스캔크는 "현재의 과격하고 반복되는 형식의 방식으로 과연 시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뼈 있는 의문으로 입을 열었다.

이어 시민단체의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의미 있는 정의를 내렸다. '시민운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운동'이라는 것.

"시민운동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운동이잖아요. 기존의 운동권적인 방법으로는 사람들의 동조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스캔크는 첫 운동의 방식으로 축제를 선택했다. 보통 '데모'로 불려지는 방식이 아닌 신나고 즐거운 운동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환경운동을 시작하게된 계기는 마포구의 유일한 산인 성미산을 살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어요. 성미산은 딱따구리도 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올라가 적적한 시간을 달랠 수 있는 산이었는데 모 대학에서 그 산을 개발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아파서 '그 산을 살리고 싶다'는 느낌을 하자센터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더니 동감하는 친구들이 모여들었어요."

스캔크와 함께 축제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저마다의 재주를 모아 축제를 준비했다. 어떤 친구는 성미산을 살리는 그림을 그렸고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산을 주제로 작곡을 했다. 다함께 성미산을 꾸미는 퍼포먼스와 공연도 마련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스캔크는 '시민운동이 무엇일까'하는 고민에 더 부딪히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스캔크의 주장처럼 모든 시민운동을 항상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에서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시민운동의 대중화'를 고민해 온 시민운동가라면 다시한번 그의 주장을 되새겨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시민은 없고 기자만 있는 시민운동?

시민단체의 시위방식은 크게 '기자회견(피켓팅)식'과 '퍼포먼스식'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 하는 것이 기자회견. 보통 기자회견을 주최하는 단체들이 피켓을 들고 모여 기자회견문이나 성명서를 읽고 다함께 구호를 외친 뒤 마무리된다.

이는 폭력시위의 대안으로 선택된 것. 그러나 이런 방식의 효과에 대해서는 시민단체 안팎에서 이미 많은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한 활동가는 "그렇게 하는 것은 '언론 때문'이란 말들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닌 기자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항변으로 "언론에 보도되면 더 많은 시민들이 보게 되는 것 아니냐"라는 말도 나오지만 보통의 시위기사들이 기껏해야 사회면의 1단기사 정도로 처리되는 것을 보면 맞는 말만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민단체의 시위현장엔 '시민은 없고 기자만 있는' 사태가 반복된다. 게다가 시위 전에 미리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리니 소위 '펜기자(신문기자)'들은 받은 보도자료로 기사를 쓰고 현장엔 사진을 찍기 위한 카메라 기자들만 있기 마련이다.

이런 시위방식에 변화를 불러온 것은 환경단체들. 1990년대 말부터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소위 '퍼포먼스' 형태의 시위가 등장했다.

이런 시위방식에 대해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기 위해 이런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방법도 관성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퍼포먼스 현장에도 '시민은 없고 기자만 있기 때문'. 이 현장에도 주로 '그림'을 찍기 위한 카메라 기자들이 주로 오고 이런 현장은 한컷의 사진기사로 실리는 게 보통이다. 퍼포먼스 현장에는 카메라 기자들의 "다시 한번 포즈를 취해달라"라는 요구와 행사 진행자의 "자 그럼 다시 하겠다. 다시 해보자"란 얘기가 심심찮게 오고가게 된다. / 김지은 기자
"요즘 시민운동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적만을 생각하고 수단은 생각하지 않는 운동이 과연 사람을 생각하는 운동일까 하구요."

스캔크의 지적은 관성화한 시위방법에 대한 문제제기다. 이는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모 단체의 회원관리국에 있는 한 간사는 "내부에서도 우리 시위방식이 매번 너무 똑같은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다"며 "비교적 연차가 짧은 나같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선배들은 '그럼 돈없고 시간없는데 어떡하냐'면서 '그냥 그렇게 하라'고 밀어부친다"라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시민운동, 내부 소통도 문제...과연 소통할 준비되어 있나"

이날 첫 번째로 발표에 나선 스캔크가 시민단체와 시민 사이의 소통문제를 지적했다면 두 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타락천사'는 시민단체 내부의 소통에 대해 언급했다.

타락천사는 지난 해 한 시민단체에서 만든 '10대 위원회'의 대표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그는 청소년보호법과 관련한 이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타락천사는 "10대의 인권에 대해 어떤 논의와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들(시민단체)은 나와 얘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이어 그는 "나는 그곳에서 내 이름이 아닌 그저 '10대'로 불리며 위계적인 분위기에서 '1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해야했다"며 "청소년의 인권을 위해 일한다는 그곳 사람들은 정작 나와 소통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토론에 참가한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의 박모 활동가는 "그런 지적에 많이 동감한다"며 "대학 시절 강요만 하는 학생운동 문화가 싫었는데 시민단체에 들어와서도 같은 고민을 하며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한 채 4년이 흘렀다"고 얘기했다. 또한 "이 문제는 시민단체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 약 2시간 동안 열린 '소통의 방' 토론. 그러나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이런 고민은 비단 박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마이뉴스>가 25일부터 26일까지 전국시민운동가대회에 참가한 50명의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나 이럴 때 시민운동 그만두고 싶다!'란 질문에 전체의 32%에 달하는 응답자가 '단체간 알력관계·수직적인 선후배관계' 등 '대인관계'를 그 이유로 들었다.

이 중에는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안될 때', '상급회의에서 처음 안이 아닌 전혀 다른 안이 만들어져 실행해야될 때', '원치 않는 운동방식을 요구받을 때' 등 타락천사가 지적한 것과 비슷한 답변들도 쏟아졌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운동이 됐으면"

앞선 두 사람이 현재 시민단체의 '소통방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면 '정수'와 '표'는 그에 대한 '대안'을 내놨다.

정수가 내놓은 대안이란 공동체 운동. "나이나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 대등한 관계에서 젠더·인권·환경 등 고민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을 나누며 서로를 성장시켜 나가는 공동체 생활"을 뜻한다.

정수는 "또 하나의 문화에서 주최한 어린이 캠프 준비를 통해 그러한 공동체 운동의 '희망'을 보았다"고 말했다. 구호를 외치거나 무거운 토론을 거치지 않고 서로에 대해 즐겁고 적극적인 탐색을 하면서 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표는 '즐거운 시민운동'을 제안했다. 언제나 자신을 "대한민국 청소년 표"라고 소개하는 그는 청소년 웹 연대 <위드(with)>를 만든 주인공. 그는 "10대들이 학교에서 단발령에 머리칼을 잘리면서, 혹은 복장제한을 받으면서 당한 '인권침해' 경험담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면서 공감대가 형성돼 시작한 청소년 운동이 <위드>"라고 소개했다.

이런 '성공적인 경험담'을 토대로 그는 '즐겁지 않은' 현재의 시민운동에 쓴소리를 던졌다.

표는 "현재의 시민운동을 보면 운동 자체가 즐겁지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 즐거워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다면 좀더 즐겁게 운동해야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소명의식 등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속박하는 운동은 즐거울 수 없습니다. 자기가 즐겁지 않은데 그 운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요?"

'소통의 방' 그러나 원활한 소통은 없었다

하자센터의 청소년이 시민운동에 대해 이렇듯 '당돌한 비판'을 제기했음에도 이 자리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소통의 방'이란 대주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토론에 참석한 차미정씨는 "이런 지적에 동감한다며 집회문화를 재고해볼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하면서 "이 토론에 참여한 이유가 '소통의 방'인 만큼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분위기가 그렇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토론회가 끝난 후 타락천사와 정수 역시 "이 시간에 참석한 활동가들조차 '세대'를 너무 규정지어 우릴 바라본 것 같았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자' 청소년 4명의 눈에 비친 시민운동의 경직성. 결국 시민운동은 모든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시민운동가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시민운동을 벌여야한다는 이야기다. 실제 이같은 지적은 그간 언론에서 많이 회자되기도 했고,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많이 거론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민운동가들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공익적 이슈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시민운동 내부에서는 오히려 '참여하는 시민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튀어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눈'에 비친 시민운동과 이에 대한 쓴소리는 이들은 장차 시민운동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대상이기에 시민운동가들로서는 단순히 보아 넘길 사안은 아닌듯싶다.

이들은 'NGO야! 즐겁게 놀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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