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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통령이 반미주의자라면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서지문 교수 신문 칼럼을 통해 주장...서 교수의 '반미 시각' 논란


서 교수의 글 한 구절만 따와서 가상으로 꾸며본 신문 기사의 제목이긴 하지만, 과거 최장집 교수나 황태연 교수의 예를 보자면 전혀 없으란 법도 없다. 물론 이런 기사가 난다면 서 교수는 펄쩍 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후 맥락은 생략하고 극히 일부분만 발췌하여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9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서지문 교수가 기고한 시론 <한국 대통령 후보의 '반미'>라는 글을 보면 이런 류의 왜곡이나 과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다. 애써 발언의 진위와 맥락을 외면하려는 사람 앞에서 새삼스레 노 후보의 당시 발언의 맥락과 배경을 다시 거론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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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미주의자면 어떤가 ' 발언의 실상

서 교수는 아예 노무현 후보가 반미주의자라고 단정을 한 듯하다. 그것도 '전투적이고 감정적인' 반미주의자로 말이다. 나는 노무현 후보가 반미주의자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서 교수는 "반미주의자면 또 어떤가"라는 한 구절로 간단하게 노 후보를 반미주의자로 만들어버린다. 서 교수의 문학적 상상력은 계속 날개를 단다.

'사실은 대미관뿐 아니라 대북관 등 여러 정치적 견해가 투박하고 감정적인 것이 노 후보의 결함이고 약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지대한 호감을 가졌지만, '노 후보는 대통령 후보라는 영광과 부담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노 후보더러 '미국에도 가보고 한·미 교류사에 대해 여러모로 연구도 해보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현실, 세계사와 국제관계, 그리고 인간 심리를 깊이 연구할 충분한 기간을 가진 후에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했으면 한다'고 충고를 하기까지 한다.

결국 "반미주의자면 또 어떤가"라는 발언 → 전투적 감정적 반미주의자 → 정치적 견해가 투박하게 감정적 → 대통령으로서의 경륜과 식견 부족 → 공부(특히 미국에 대해) 좀 더하고 나서 정치 활동을 하라는 충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알다시피 서지문 교수는 2001년 당시 KBS에서 논어를 강의하던 도올 김용옥을 비판하는 '소인이 군자를 강의한다'는 글을 <중앙일보>에 실음으로써 언론에 이름이 등장하게 된 영문학자이다. 그는 이 글에서 도올을 쌍소리로 핏대나 올리고, 공자를 자신의 문하생이나 되는 듯 폄훼하는 소인배라고 비판하였다.

나 자신도 '이제는 고백하기 몹시 어려운 고백을 하자면' 그 당시 서지문 교수의 거침없는 소신과 비판 정신에 지대한 호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서 교수는 <조선일보>라는 매체에 몸을 싣고 나서부터는 올바른 비판 정신과 학자로서의 균형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자적 양심에 기초한 가치 판단보다는 오히려 한쪽을 편드는 정파적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이회창 후보의 아들 이정연씨는 '182㎝의 키에 체중이 44㎏이라면 엄청난 허약체질일 것이 분명'하므로 지난 대선 때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이 '잘난 아버지를 둔 대가'라서 '남의 일인데도 가슴이 아픈' 일이며(2002.3.24 <조선> 아침논단 '부자유친'유감), 이정연씨의 병역 관련 비리를 고소한 김대업씨는 '역겨운 인상의 가정 파괴범'(2002.8.11 <조선> 아침논단 '재상감' 기근?)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183cm의 키에 44kg이라는 것이 허약체질일 뿐 아니라, '유령체질'일 가능성도 떠올려봄직할 것이다. 또한 편파성에 눈이 멀지 않았다면 특정인을 '역겨운 인상의 가정 파괴범'이라 지칭하는 '반지성'적인 언사를 내뱉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 도울의 논어 강의를 용감하게 비판하고 나섰을 때에는 논어의 가르침을 훼손하고 공자를 비하하는 도올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이 논어를 우연한 기회에 강의 받는 기회가 있어 논어나 공자에 대한 나름의 지식과 주관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가능한 일이었고, 따라서 그 당시 서 교수의 비판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의 강연 중 한 구절을 따와서 그 사람을 멋대로 규정짓고, 과장하고, 나아가 대통령 후보의 자격까지 논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또한 알고자 하는 사람의 주장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도대체 그의 글에서 노무현 후보를 판단하는 근거가 "반미주의자면 또 어떤가"라는 말 이외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또 하나 지적되어야 하는 것이 서 교수의 '미국지상주의'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대통령의 미국 변수 결정론을 주장하는 듯한 그의 글을 읽다보면, 흡사 우리를 미국의 속국이나 일개의 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미국이 우리의 우방이니 만큼 맹목적이나 감정적인 반미가 바람직하지는 않다.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친미, 반미의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미국과 협력하고 미국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친미가 되어야 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거절할 때나, 미국에 맞서 우리나라의 이익을 지켜야 할 때는 반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현재의 문제는 한번도 제대로 미국에 반대해본 적이 없는 오로지 친미적인 정부의 태도에 있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에 대해 조금은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한 구절의 말을 꼬투리 삼아 노 후보를 악의적으로 규정하고 가르치려는 서 교수의 글을 보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백면서생이 대통령감을 논하는구나!"

덧붙이는 글 | 다음은 <조선일보> 9월 16일자에 실린 서지문 교수의 시론 전문이다. 

[시론] 한국 대통령후보의 '反美'

다음 대통령이 이지적이고 냉철한 반미주의자라면 자신의 반미(反美)성향을 지렛대로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많은 양보와 실리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투적이고 감정적인 반미주의자가 대통령이 되어 사사건건 미국을 배격하고 마찰을 일으켜 우리나라의 안보가 위태로워지고 국가경제에 파탄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우리 국민 중에는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최근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가 자신을 "미국에 안 갔다고 해서 반미주의자는 아니다"라고 했다가 "반미주의자면 또 어떤가"라고 해 물의가 일고 있다. 반미주의자라는 것 자체는 대통령 후보로서 결격사유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미국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미국과의 관계에 국운마저 크게 좌우되는 나라에서, 대통령 후보는 반미주의자이건 친미주의자이건 그의 미국관의 뿌리와, 그가 한·미 양국 간의 미래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구상을 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 후보의 반미성향이 우려되는 것은 그것이 친미적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고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긴 역사적 관계, 그리고 양국 국민 간의 역사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과 피상적인 관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역사적 관계를 생각할 때 미국의 여러 차례의 중대한 정책적 실수와 자국 편의적 제반 조처, 힘의 우위를 이용한 불공평한 압력 등 따지고 극복해야 할 문제는 많다. 그러나 또한 구한말(舊韓末)부터 오늘날까지 미국과 미국 국민에게서 받은 헤아릴 수 없는 지대한 혜택을 무시한다면 올바른 국가적 처신도 아니고 외교적으로도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재정립하면서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고 실리를 유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미정책 결정의 수장(首長)이 될 대통령에게는 특히 균형감각과 발전적 관계구축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개인적 경험과 성향에 기인한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 후보가 깊은 반미감정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반미주의라 한들 어떠냐"는 식의 태도는 대통령 후보로서는 너무나 무책임하다.

사실은 대미관(對美觀)뿐 아니라 대북관(對北觀) 등 여러 정치적 견해가 투박하게 감정적인 것이 노 후보의 결함이고 약점이 아닌가 한다. 지난 2월에는 공공연히 말했는데 이제는 고백하기 몹시 꺼려지는 고백을 하자면 나도 노 후보에게 지대한 호감을 가졌었다. 그가 우리 근세 정치사에 드문 '큰그릇'이면서 소박한 민중의 정치가라고 생각되어 그의 출현을 크게 환영했었다. 

그러나 노 후보는 '대통령 후보'라는 영광과 부담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된다는 가정이 많은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크나큰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가 더 공부를 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간을 더 가졌더라면, 즉 그의 정치적 자산이 좀 더 컸더라면 그는 정말 큰 인물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는 경륜과 식견을 충분히 쌓기 전에 대통령 후보에 오름으로써 지극히 부족한 자산(資産)을 갖고 자신의 정치적 생애를 경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꼭 미국을 가 보아야 미국을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을 가 본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노 후보가 미국에도 가보고 한·미 교류사에 대해 여러모로 연구도 해 보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현실, 세계사와 국제관계, 그리고 인간 심리를 깊이 연구할 충분한 기간을 가진 후에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했으면 한다. 그가 이대로 대통령 선거를 치러서 그의 미숙함을 낱낱이 노출시켜 국민이 기피하는 정치인이 되어버린다면 그의 개인적인 불행이고 국가적인 큰 손실이다.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까지 되고서 선거를 포기한다고 해서 정치인으로서 어리석거나 부끄러운 일은 결코 아니라고 확신한다. 

(서지문/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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