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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 천문대을 배경으로 한 헤일밥 혜성과 달의 모습
ⓒ 박승철

지난 15일 모처럼 만난 대학시절 천문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한여름의 별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강대를 찾았다.

서강대 체육관에 마련된 대형 전시관과 천문 강연회, 야간 천체관측 체험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진 이번 행사는 비록 천문동호회 '별과 사람들'과 동아사이언스에서 주최하긴 했지만 한 아마추어 천문가의 역작이 없었다면 결코 열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혜성처럼 밤하늘을 떠돌다간 영혼

▲ 박승철 선배. 소백산 천문대 근무 시절에 찍었다.
ⓒ 박승철
전시된 200여 장의 천체사진을 직접 촬영한 이는 아마추어 천문가 고 박승철(1964~2000) 선배. 전시관을 들어서자마자 우리 일행을 맞은 것은 이날의 주인공인 박승철 선배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프로필이었다.

고 박승철 선배. 국내 아마추어 천문인들 사이에서 신화적 존재로 남아있다. 80년대 서강대에 입학한 그는 천체관측 동호회를 결성하며 천체관측과 망원경 제작, 천체사진 촬영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졸업한 뒤에도 일반인 중심의 천문동호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91년에는 국내 최초의 천문 잡지 <월간 하늘>을 창간하기도 했다. 특히 1994년 아마추어 천문인으론 처음으로 국립 소백산 천문대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98년 소백산 천문대를 그만 둔 뒤에는 사설 천문대인 세종 여주천문대 천문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필자가 박승철 선배를 처음 만난 건 97년 여름, 선배가 근무하고 있던 소백산 천문대를 찾았을 때였다. 비록 흐린 날씨 탓에 천문대의 대형 망원경 관측 기회는 잡지 못했지만 마치 무인도처럼 외딴 곳에 떨어진 천문대에서 자신이 꿈을 이어 가고 있는 선배의 모습에서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선배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하지만 2000년 12월 29일 추운 겨울밤 여주천문대에 다녀오던 도중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가 생전에 찍었던 천체사진들은 그대로 남아 이번 전시회를 가능케 한 것이다.

우리 밤하늘을 담은 200여 장의 사진

▲ 여명 속의 헤일밥 혜성. 생전 박 선배가 가장 좋아했던 사진이라고 한다.
ⓒ 박승철
체험관을 포함해 모두 6개관으로 꾸며진 전시관중 '풍경전시관'으로 이름 붙여진 첫 관문에는 박 선배가 평소 아끼던, 천체와 자연 풍경이 어우러진 풍경사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97년 지구를 찾았던 최대 혜성 헤일밥의 영롱한 모습과 소백산 천문대의 둥근 돔이 멋지게 어우러진 사진은 저절로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풍경사진관'에 전시된 사진 중에는 우리나라가 있는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남반구 밤하늘을 찍은 사진들도 있었다. 박 선배는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촬영 장비를 들고 직접 호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곳에 전시된 사진들 중 백미는 97년 긴 먼지 꼬리를 내뿜으며 지구에 근접했던 헤일밥 혜성의 사진들이었다. 특히 새벽 여명 즈음 푸른 빛 꼬리를 내뿜으며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듯한 헤일밥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박 선배가 평소 가장 아끼는 사진이었다고 한다.

선배의 작품을 전시회로 승화시킨 동료들의 노력

▲ 서강대 체육관에 마련된 전시관을 관람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
ⓒ 동아사이언스 제공

"여기 이 공간이 없었으면 이번 행사의 의미도 없는 거지."
이날 전시회장에서 우리를 직접 안내해 준 건 박승철 선배의 대학 동아리 후배인 한종현 선배였다. 그와 '별과 사람들' 멤버들은 유족들로부터 생전에 박 선배가 찍어두었던 천체사진들을 모아 이번 전시회를 여는 밑거름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박 선배의 천체사진들을 더욱 빛낸 건 온갖 아이디어로 전시관을 꾸민 동료, 선후배들의 노력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1년 365일 시간대별로 그날의 밤하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초대형 별자리판. 한종현 선배는 이 별자리판이 못내 자랑스러운 듯 행사가 끝난 뒤 사설천문대를 대상으로 경매에 붙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별자리판 주변에는 사계절 별자리 사진들이 별자리별로 전시돼 있었다. 생전에 별자리 관측에 관한 책을 준비했다는 박 선배는 '방패자리'를 제외한 모든 별자리들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별자리 여행을 마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은하수의 장관이었다. 검은 천으로 빛을 가려 컴컴한 우리은하관을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업었다. 대형 필름 6장에 담긴 은하수 사진 뒤에 등을 켜 마치 깜깜한 밤하늘에서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덧붙이는 글 | '박승철과 함께 하는 한여름의 별축제'는 오는 8월 18일까지 서울 서강대 캠퍼스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1인당 6천원이며, 전시회 뿐 아니라 매일 4차례씩 진행되는 천문 강연과 천체관측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www.dongascience.com/event/star)에서 볼 수 있다. 

고 박승철 선배가 찍은 천체사진들은 그의 홈페이지(www.star-party.com)와 니오비전(www.niio.co.kr)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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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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