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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장갑차 바퀴에 짓눌려 죽었을 때, 언론 구성원인 우리는 솔직히 월드컵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군 당국이 사건에 대해 오리발을 내미는 순간에도 솔직히 우리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두 여중생의 안타까운 죽음에 언론사 시사만화작가들까지 팔을 걷고 거리로 나섰다. 그간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억울한 죽음'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시사만화작가들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집회를 연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두 여중생의 영전에 바쳐진 시사만화들

프레스센터 앞에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을 풍자한 그림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회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7월 26일 낮 12시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선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작가 40여 명이 참가한 주한미군 규탄시위가 펼쳐졌다. 이날 <한겨레> 장봉군 화백,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 박순찬 화백 등 유명 시사만화작가들은 저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을 다룬 자신들의 시사만평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장갑차에 깔린 내용의 만평부터 언론과 정부가 장갑차 자국을 물로 지우는 내용의 만평까지, 촌철살인과 같은 다양한 시사만평이 눈길을 끌었다. 그 가운데는 '기회주의 무관심 언론도 자성하자'는 구호가 담은 피켓도 눈에 띄었다.

지면 벗고 행동 나선 시사만화작가들

▲ 백무현 화백
ⓒ오마이뉴스 권우성
"만화작가는 그림만? 먹물근성 버릴 때"

"오늘 시위는 의외로 성공적이었어요. 많은 회원이 참여했고 언론노조도 함께 했고요. 시사만화작가들에 대해 기대가 큰 것 같네요. 언론이 본격적으로 사건에 나섰잖아요."

백무현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회장은 "10년만에 거리로 나오니 기분이 좋다"라며 이 날 시위의 성과에 대해 만족해했다.

처음에는 '시사만화작가는 지면에서 그림으로 말해야 한다'며 집회를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백 회장은 지금은 만평 뿐 아니라 직접적 행동과 실천이 필요한 때라는 확신이 있었다.

백 회장은 "50년만에 찾은 재판권 이양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는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며 "한미관계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먹물 근성"이라고 덧붙였다.

"지면으로 채워지지 않던 굴욕감 풀었다"

이날 시위에는 지난 4월 9일 돌연 사표를 내고 <동아일보>를 떠났던 손문상 (현 부산일보) 화백도 함께 했다.

손 화백은 이번 사건에 대해 "지면을 통해서는 아무리 그려도 지워지지 않는 굴욕감이 있었다"면서 "이런 자리가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 나 역시 그동안 많은 부분 흐트러졌는데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를 떠난 후 지난 4개월간의 심경과 최근 근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권박효원 기자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백무현 <대한매일> 화백은 "지금까지 지식인들이 미군의 살인적 폭력에 지나치게 관대했다"면서 "이제 어떤 형태로든 미군을 규탄해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 회원이 지역신문 화백까지 포함해 5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날 집회에는 거의 모든 회원이 참여한 셈이다. 이처럼 높은 참여율만큼이나 이들의 '참회' 열기는 뜨거웠다.

"여중생 죽음 무관심한 조중동에 분노"

이들 작가들과 함께 한 전국언론노조 전영일 수석부위원장은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 F-15 전투기 강매 등 미국의 만행에 대해 언론노조가 앞장서야 했는데 시사만화작가회의가 먼저 시위를 제안해 죄송한 마음일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또한 전 부위원장은 "여중생들의 죽음에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서해교전이 일어나자 전쟁을 불사하자고 길길이 날뛰는 <조중동>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오늘을 시작으로 사대주의적 정부와 그에 부화뇌동하는 <조중동>에 항의하는 범국민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사만화작가들은 프레스센터 앞에서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언론의 협조를 요구한 뒤 미 대사관 앞까지 행진하며 "미군처벌! 진상규명!"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범대위, 추모기간·철야농성 선포

이에 앞서 '미군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오전 11시 미대사관 앞에서 '고 신효순, 심미선양 범국민 추모기간 및 대표단 농성 선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범대위는 "사건 발생이 40여 일 지난 지금도 재판권 요구에 대해서 응답하지 않는 미군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철저히 모독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회원들이 여중생 압사 미군책임자 처벌과 불평등한 SOFA개정을 촉구하며 미대사관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범대위는 미군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7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범국민적 추모기간을 진행하는 동시에 대표단 철야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철야농성 기한과 장소는 확정되지 않았다.

유족 배상과 관련, 범대위는 "유족들은 미군이 재판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배상금 수령도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범대위에 따르면 유족들은 배상금보다 진상규명과 처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재판권이 이양된 뒤 배상금을 수령하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범대위는 "미군당국과 한국 정부가 밤낮없이 유족들을 찾아와 배상금을 받으라고 협박과 회유를 일삼고 있다"고 전했다.

국방부, 한미합동기자회견 무기한 연기

한편, 국방부는 29일로 예정됐던 한미합동기자회견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국방부 공보관실 관계자는 "의정부지청, 법원 등 사건 관련 부처들과 업무를 조율해야 하고 사건을 좀더 세밀하게 조사한 뒤 결과를 발표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 24일 기자회견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와 같은 결정이 시민단체의 반발 때문은 아니며 기자회견에서 밝힌 공동기자회견의 기본 취지와 국방부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회의원 29명은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미군 측에게 형사재판권 포기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성명에 동참한 김부겸, 김성호, 김원웅, 김태홍, 김홍신, 김희선, 박명환, 박양수, 서상섭, 송광호, 송영길, 심재권, 안영근, 이미경, 이부영, 이재정, 이종걸, 이창복, 이호웅, 임종석, 정동영, 정범구, 조희욱, 천정배 의원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군 측의 조사내용 공개, 공동진상조사단 설치를 강조했다.

의원들은 "미군 측이 사건 해결에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할 경우 국회차원에서 공동대응하겠다"고 밝혔다.

ⓒ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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