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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97년 대선 국면에서 논란이 됐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 병역 문제에 이어 이번에는 당시 여당 출입기자들에 대한 이 후보의 거친 입담이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23일 97년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 출입 중앙일간지 정치부 기자의 말을 인용, ""97년 10월께 있었던 술자리에서 '어느 대학 출신이냐'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질문에 해당 기자가 '고대 출신'이라고 말하자 이 총재가 '그 대학 나오고도 기자가 될 수 있냐'고 말해 불쾌했다고 후배기자가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중앙일간지 기자는 또한 97년 언론계 내부에서 논란이 됐다가 2000년 공론화된, 이른바 이 후보의 '창자 발언'의 정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창자' 발언을 하기에 앞서 '내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일어서서 술을 마셔라'라고 말했고 대부분의 기자들이 일어서거나 어정쩡한 자세로 술을 마셨으나 한 방송사 기자만이 일어서지도 않았고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고 회고하고 "이 총재는 창자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던 기자가 속했던 신문사의 사주에게 전하라며 '그렇게 신문 만들면 내가 대통령 된 뒤 재미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이 총재가 이 자리가 끝나고 난 다음날 한나라당 반장들과의 술자리에서도 한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당신과 000기자는 00일보의 암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술자리에서의 이총재는 '과격한' 발언을 종종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미디어오늘의 취재기자는 논란을 의식한 듯 "취재원과의 관계 때문에 그 기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 안 그래도 한나라당쪽에서 연락이 왔다"며 난색을 표했다.

월간 말은 2000년 7월호에서 "이 후보가 지난 97년 7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KBS, MBC 등 약 15개 언론사 출입기자 반장들과의 저녁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을 가리켜 '창자를 뽑아버리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월간중앙, '창자' 발언 다시 거론

97년 이 총재의 '창자 발언'은 중앙일보 기자들이 같은 해 7월24일 작성한 정보보고 문건(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서 "사석에서의 과격한 용어 사용의 문제점. 창자론, 씨말리기 등 술좌석의 용어"라고 적시돼 '창자론'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

마침 중앙일보 정치전문기자 이연홍 차장이 월간중앙 6월호에 '창자' 발언 당시의 상황을 상술한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기자의 '취재수첩' <정치인과 술자리 실언>은 노무현 후보의 작년 술자리 발언이 지난달 논란이 된 것을 상기시키며 정치인들의 술자리 발언 보도를 둘러싼 기자들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기사는 97년 신한국당 경선 직후 술자리에서의 이회창 후보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폭탄주가) 세 잔 째인가 돌았을 때였다.
한 언론사 기자에게 이 총재가 말했다.
'내 기사 똑바로 써 줘. 그렇지 않으면 재미없어.'
순전히 농담이었다.

그 기자도 말을 받아 농을 던졌다. '그런 식으로 하면 대통령 안돼요'
이 총재의 농담은 계속됐다. '잘 쓰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 자네 창자를 뽑을 거야'

옆에 있던 한 기자가 '아이구 무서워라'고 했고 다른 기자가 '몸조심하자'고 거들었다."


이 총재의 '창자 발언'을 포함한 술자리의 거친 입담은 22일 관훈 토론회에서도 잠시 화제가 됐다. 이날 패널리스트로 나선 허영섭 경향신문 전문위원이 "97년 여름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막말'은 본인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이 후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술자리에서 나온 말인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춘애 KBS 경제부장이 이어 "지난번 추미애 의원 술자리 발언은 언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이 후보 발언은 그렇지 않았다"라고 추궁하자 이 후보는 "나는 싸우면서 한 발언이 아니다.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그리 심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변명했다. 이 후보가 자신의 술자리 입담에 대해 직접 해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자 발언'을 처음 보도한 월간 말의 정지환 기자는 "당시 이 사실을 취재했을 때 이 후보 측근은 '근거 없는 얘기'라며 이 같은 사실을 극구 부인했었다. 월간중앙 기사와 관훈토론회 문답 내용은 창자 발언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언론특보인 이원창 의원은 "관훈토론회에서의 문답은 97년 얘기를 한 것이 아니다. 이 후보가 평소 '나에 대해 왜곡된 기사를 쓰는 기자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한 것이 마치 막말로 비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97년에는 나도 '문제의 술자리'에 있었는데, 창자 발언 같은 것은 못 들었다"고 말하고 월간중앙 기사에 대해서는 "이연홍 기자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런 기사를 썼나?"라며 논란이 재연된 것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대가 아니면 안 된다는 1등 지상주의의 산물"

당시 창자 발언의 대상자로 알려진 기자의 소속사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중 어느 곳이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으나 이 후보가 언급한 사주는 김병관 당시 동아일보 회장이었다는 것이 언론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당시 술자리에 참석한 동아일보 기자는 "마감 때문에 술자리에 늦게 참석했지만 술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그 발언이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건과 관련, 미디어오늘의 취재에 응한 적이 없다"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당시 동아일보 한나라당 출입기자단을 이끌었던 이 기자는 "당시 정황을 모른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은 논란이 될 것 같아 얘기를 못해주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 후보가 특정학교 출신 기자를 비하한 것으로 알려진 '미디어오늘'의 보도 내용은 97년 7월에 있었던 이른바 '창자' 발언이 1회성 실언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이 후보의 '서울대 중심주의'를 반영하는 듯한 발언은 사회에 만연된 학벌주의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6000여 개의 고려대학교 관련 사이트가 등록돼 있는 고대 포털사이트 고대넷(www.kodae.net)의 임미리 대표는 "이 후보가 정말 그 같은 얘기를 했다면 한국사회에 찌들어있는 학벌주의를 반증하는 것이다. 꼭 고대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서울대가 아니면 안 된다는 1등 지상주의의 산물"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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