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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에서나 반역(反逆)의 길은 험난한 법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좌파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주류가 되는 길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영원한 소수파에 머물지라도 반역(反逆)의 이상을 처절하게 가슴 깊숙이 간직하면서 혹독한 세월을 견뎌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최근 신문과 여러 언론을 통하여 세 가지 서로 다른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오마이뉴스에 진중권 님이 기고하셨던 "이문옥 외면은 또 다른 국민사기극?" 이었고 둘째는 중앙일보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의 "좌파의 고민" 마지막으로 한겨레신문에 실렸던 손석춘 님의 "좌파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이 세 글의 필자들은 한국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논객들의 글입니다. 그들 중에는 좌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좌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중권 님은 "저는 일신상의 불이익을 무릅쓰면서까지 원칙과 소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에게 시민사회가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강준만 선생님이 개탄해 하신 '국민 사기극'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봅니다" 라고 하면서 이문옥 후보에 대한 '시민사회의 보상'을 요구합니다.

손석춘 님은 "좌파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번번이 살인적 노동에 시달릴 터이다. 노동조합 자체도 좌파가 몸을 던져 싸운 결실이다. 노동자에 늘 도끼눈인 신문·방송의 기자들도 노조를 만들고 시간외 수당을 받고 있는 한, 좌파에 빚지고 있다"며 노무현 씨가 좌파에 대해서 '시대착오'라고 말한 것을 개탄하며 결국 진보정당이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렇게 좌파가 '사회'의 무심함과 좌파를 인정해 줄 것을 말하고 있을 때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의 일갈이 있었으니 "유럽의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금 이념에 기초한 정당을 지향하면서도 실용주의적 온건 중도노선을 내세우는 진보세력은 유럽 좌파처럼 자기 모순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유권자들이 그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의심하게 돼 현실정치에서도 패배할 수 있다는 점을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좌파를 인정하고 그 좌파가 자신의 길을 가줄 것을 '충고'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석춘 님의 말처럼 최소한 "좌파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한국 좌파의 처지에 기반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 예의이겠지요. 또한 진중권 님처럼 "노무현 후보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이문옥 후보"에 대해 지지해 주는 것이 '정당'하거나 최소한의 균형감각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내 마음에 울림이 생긴 것은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의 글 때문입니다. 그의 글 쓴 의도와는 무관하게 '한국의 좌파, 너무 안일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정말로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노무현 씨를 좌파로 색칠하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는데, 정작 좌파는 '진보세력'이라는 어정쩡한 자세로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진짜 좌파라면 지금 '노무현 대통령 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이다'는 자족적인 지지만을 읊조려서는 안됩니다. 또한 노무현씨가 진보가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마저 잠식해 들어오는데 그 공간에 편승하기 위해 얕은 수를 쓰는 것은 더욱 '속이 보이는' 일이지요.

일단 한국의 좌파가 '정체성 위기'에 있다는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의 말은 올바릅니다. 그러나 '유럽좌파처럼....'은 아니지요. 한국좌파는 '노풍' 때문에 정체성의 위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위기의 국면이 한국 좌파에게 '약'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중권 님의 글 속에는 이문옥 후보를 노풍에 태우려는 의도가 베어 있습니다. 좌파라고 한다면 자신의 '진검'으로 승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당선권에 근접하는 '진보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유혹일 수 있습니다. 혹은 '청백리'의 이미지로 '좌파'를 포장하는 것은 이념을 뒤로하고 분바른 손을 앞으로 내미는 것일 뿐입니다. 좌파라고 한다면 우파들의 '너희들의 이념을 보여봐'라고 하는 속보이는 공세에도 이념을 내보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좌파가 자신을 '사회주의자'임을 감추는 것은 지금 실행해야할 일을 미래의 일로 연기하는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풍'으로부터 배태된 좌파 정체성의 위기를 말끔히 씻어낼 '진정한 좌파'를 만나고 싶습니다. 자신의 이념과 지향을 이미지와 사회적 경력으로 포장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벌거벗은 '좌파'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사회에 '좌파' = '사회주의자'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고춧가루 팍팍 푼 콩나물국 들어 마시듯 칼칼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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