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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L ⓒ 스포츠서울 21 제공
인기그룹 H.O.T 출신 멤버들로 구성된 JTL이 데뷔앨범을 낸 후 지난해 12월 가요음반 판매량 집계에서 1위를 하고도 방송 출연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거대 기획사와 방송사의 유착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H.O.T 멤버였던 안승호(24), 이재원(22), 장우혁(24)으로 구성된 그룹 JTL은 작년 12월 21일 데뷔음반을 내고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음반산업협회의 '2001년 12월 가요음반 판매량 집계'에 따르면, 이들의 앨범은 48만1888장이 팔려 당당히 1위에 랭크됐다. 불과 열흘간의 판매 실적을 반영한 이 같은 수치는 '실패할 것'이라는 음반 관계자들의 당초 전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초반 돌풍을 일으킨 JTL은 타이틀곡 'A Better Day'의 뮤직비디오를 집중 방송한 후 1월부터 활발하게 방송에 출연할 계획이었으나 16일 현재 어떠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음반관계자들은 음반시장에서 거둔 상업적 성공과 이에 따른 이들의 상품성과 직결되는 시청률을 고려할 때, "출연 여부는 방송 편성권자의 재량이라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JTL의 각종 오락 프로그램 출연이 미뤄지고 있고, 당초 예정됐던 프로그램들도 줄이어 불방돼 취소배경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방송(SBS)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생방송 SBS 인기가요'는 JTL의 뮤직비디오 방영을 예고했다가 방송 예정일(6일) 전날 방영을 취소했고, SBS의 연예정보프로그램 '한밤의 TV연예'와 문화방송(MBC)의 '섹션TV 연예통신'도 이들을 취재한 뒤 인터뷰를 본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이들 방송사들은 방송 불발에 대한 시원스런 해명을 담은 안내문이나 사과방송조차 내보내지 않아 JTL의 컴백을 기다리는 팬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순위프로 10위권 진입에도 출연은 전무

이미 이들의 노래가 순위권에 진입한 가요 프로그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SBS의 '생방송 인기가요'에서는 JTL의 'A Better Day'가 1월 둘째 주 9위까지 상승했지만, 셋째 주 출연진 명단에도 이들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다. '방송 출연 거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10위권 진입' 인기 가수를 출연시키지 않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조치이다.

JTL의 노래는 MBC의 가요순위 프로그램 '음악캠프'에도 30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음악캠프'의 관계자는 "순위에 올라있지만, 방송 출연을 시킬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더 이상의 답변을 회피했다.

방송사들의 불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인해 불방 사태의 책임론은 JTL 멤버들의 이전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로 확산되고 있다. SBS에서 뮤직비디오가 불방된 지난 6일 오후에는 JTL 팬클럽 회원 5백여 명이 SM엔터테인먼트 건물 앞에서 침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SM측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H.O.T의 해체에서 JTL의 데뷔까지의 정황은 양자간의 갈등설에 힘을 싣고 있다. 작년 5월 JTL 멤버들의 소속사 이적은 H.O.T를 내세워 중국어권 국가들에 진출하려던 SM 엔터테인먼트의 계획에도 큰 차질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JTL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놀아나는 아이들', 'My Lecon', 'Enter The Dragon'의 노랫말이 전 기획사를 자극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놀아나는 아이들'의 가사 중 "어! 요놈 봐라! 또 돈독에 올라 어린양 머리 위에 올라 해대던 짓 아직도 해"라는 부분은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7일자에서 SM 관계자가 "JTL이 강타, 문희준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원치 않는다. 소속사 이전 과정이 석연치 않을 경우 무대에 세우지 않는 게 방송사들의 관행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해 SM이 중앙일보에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JTL과 SM의 갈등설'이 표면화되자 온라인 상에서도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결성된 'JTL팬클럽 연합(fanjtl.zoa.to)'에는 과거 H.O.T 팬클럽 회원들은 물론, 현 SM 소속 가수들의 팬클럽 회원들도 일부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SM 측은 "어떠한 해명을 해도 득이 될 것이 없다"면서 JTL과 관련된 언론사 취재에 대해 응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일각에서 "2월부터 이들의 방송활동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이미 3차례의 약속이 깨진 상황에서 팬들을 달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16일 서울 안국동 철학카페 '느티나무'에서 열린 '대중문화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의 기자회견. ⓒ 손병관


'JTL 사태'를 단순 해프닝이 아닌 '거대 기획사에 대한 방송사의 굴종'을 반영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연대모임(운영위원장 이동연, 이하 대개련)은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일부 기획사들이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방송 출연과 언론 보도를 독점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며 "최근 전 H.O.T 멤버들로 이뤄진 그룹 JTL이 방송활동을 못하는 이유도 이같은 기획사와 방송사간의 공모가 가져온 불공정 관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기자 회견에 참석한 JTL 팬클럽 연합 대표 김태경 씨는 "우리는 단순히 한 가수의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음악 소비자로서 대중매체의 강요가 아닌, 원하는 음악을 보고들을 정당한 권리가 무시되고 박탈되는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기획사와 방송사간의 공모의 흔적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편성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들은 "작년 4월과 5월 사이 가요순위 프로그램 최다 출연 횟수 1∼4위의 가수들이 쇼 오락프로그램 출연횟수에서도 순위만 바꿔 1∼4위를 차지했다(대개련 자료 분석)"면서 소속 가수 음반의 홍보를 원하는 기획사와 오락프로그램 시청률 제고를 노리는 방송사간의 결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오락프로 단골 게스트들이 가요 프로도 독차지

대개련은 나아가 "상당수의 기획사가 소속 가수들의 홍보를 위해 스포츠 연예신문과 공중파, 케이블 방송 등에 전방위 로비를 하고 있다. 로비를 통해 특정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캐스팅에 전권을 쥔 제작진들이 대가를 받고 이들을 출연시키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실력 있는 비주류 음악인들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 당사자들이 갈등이 공론화되는 것을 꺼리는 가운데 'JTL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설사 JTL의 방송 출연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거대 기획사들의 독과점 체제가 유지되는 한 제2, 제3피해자의 양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TL을 거느린 예전미디어가 또 다른 아이돌스타 'GOD'를 거느린 싸이더스와 함께 '로커스 홀딩'이라는 더 큰 투자사의 자회사라는 사실은 현재의 피해자가 언제든지 미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동연 대개련 위원장은 "16일 기자회견의 목적이 특정 가수의 방송 출연을 요청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일부 기획사들의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불공정 계약 관행이 개선되지 않으면 선의의 피해자들은 계속 양산될 것이다. 공정위가 불공정 계약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만큼 피해 연예인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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