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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애인도 버스를 타게 해달라면서 장애인 이동권연대 소속 장애인과 지원 학생들이 버스에 휠체어를 사슬로 묶고 시위를 벌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고 있는데, 우리의 거리는 아직 장애인이나 노인 등에게는 불편이 크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일의 거리에서는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장애인들을 볼 수 있다. 한국이 독일보다 장애인이 더 적은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장애인들이 거리를 다니기 불편한 우리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독일의 도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움직이는데 큰 불편이 없도록 도로 및 차량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로의 경우 차도와 보도의 높이 차이가 10cm 미만을 유지하고 있어 횡단보도 등과 연결되는 부분에서 턱을 낮추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또 보도 바닥이 대체로 울퉁불퉁하지 않고 고르게 이루어져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의 보행에 어려움이 적다.

독일에는 육교가 거의 없고 지하도도 별로 없는 편이고 도로 횡단에는 거의 횡단보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장애인의 이동에 불편이 적다. 지하도가 있는 경우에도 반드시 경사로나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좀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도로 외에도 독일의 건물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의 공공 건물은 2층 이상인 경우 반드시 경사로와 승강기를 갖추도록 되어 있다. 공공건물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백화점이나 학교, 서점, 식당 등에는 거의 빠짐없이 승강기가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건물 출입구도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게 충분한 넓이를 가지고 있고, 문턱을 없앴다.

이런 이유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이다. 기자가 있는 본에서 오페라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독일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 대해 실감했다. 오페라 하우스에는 휠체어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장애인들은 자신의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으로 들어가 거기에 그대로 앉은 채 관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었다.

독일 대중교통수단의 장애인 시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독일의 모든 시내 버스는 휠체어나 유모차 등의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버스의 차체가 낮은 소위 저상버스이다. 버스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지면으로부터 차체의 높이는 대략 30-35cm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버스 차체 높이는 약 65cm이다.

그러나 독일 버스의 차체 높이인 30cm는 다소 낮은 편이기는 하지만 휠체어나 유모차가 오르고 내리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의 차체가 보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다. 기자가 처음 독일에 왔을 때 한쪽으로 푹 꺼지는 버스를 보고 사고가 난 줄 알고 놀랬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차체가 기울어지고 입구 바닥에서 보조판이 나와서 휠체어가 쉽게 버스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버스 내에는 입구 바로 안쪽에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한 널찍한 전용 구역이 있다. 물론 이 자리에 다른 사람들도 서 있을 수 있지만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들이 있을 경우에는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다.

이렇게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더라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독일에서는 버스의 경우 휠체어 장애인이 타고 내릴 때까지 운전기사가 기다려 줄 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경우 차에서 내려 직접 도움을 준다. 다른 승객들도 필요한 경우에는 장애인이 버스를 오르고 내릴 때 도와 주며, 이 때문에 운행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불평하는 법이 없다.

한편 지하철이나 철도에서도 모든 역사에 장애인용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휠체어용 리프트는 설치비는 저렴하지만, 장애인의 사용시 시간이 많이 소비되고 잦은 고장과 안전상의 문제로 독일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지하철과 철도 차량 역시 휠체어 이용자가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고, 차량 내에 이를 위한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독일의 장애인들은 교통비와 공공시설 요금 등을 면제 받거나 대폭 할인 혜택을 누리고 있다. 기차는 장애인 당사자와 보호자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일정 횟수까지는 택시 역시 무료 이용할 수 있다. 물론 택시를 이용할 때 운전기사가 휠체어를 접어서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주는 등의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시각과 법적 규정

독일은 2차대전 당시 나치가 수만 명의 신체장애인들에 대해 소위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을 '안락사'라는 미명 하에 대량 학살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지금도 독일인들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고 독일은 2차대전 종전 이후 이러한 과거에 대해 나름대로 철저한 반성을 거쳤다. 이제 독일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잘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를 인권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포함,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이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시혜가 아니며 장애인들의 당연한 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독일 헌법 3조 3항에서 "누구도 자신의 장애 때문에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라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하에서 여러 하위 법률들은 장애인의 보행과 교통수단 이용을 위한 편의시설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최근 독일 정부는 장애인 관련 법안을 내년 총선 전까지 대폭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이번 법 개정의 주안점은 전 사회영역에서 장애인에 대한 장벽 없애기라고 선언했다. 이는 주로 이동권과 정보 접근권을 의미한다.

이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보면, 이제 새로 문을 여는 식당들은 장애인용 화장실을 구비하지 않을 경우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공공교통에 있어서 좀 더 엄격한 규정들을 통해 중증 장애인도 혼자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 여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 청사의 장애인 이용 시설 확충과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 규정, 시각 장애인을 위한 공공 문서의 점자화나 카세트테이프화 등의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공공 분야 외에도 민간기업들이 중증 장애인의 고용을 장애를 이유로 거부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장애인 시설이나 복지 등을 거부하는 민간 기업이나 단체에 대한 장애인 단체의 집단 소송도 용이하게 하고 있다.

독일의 장애인 단체들은 이러한 법안이 독일의 장애인 정책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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