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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남북을 오가는 한 재미 목사가 있다. 그는 최근에도 막 남북을 다녀갔다. 그는 교회가 아닌 역사 속에서 억울한 원혼들을 치유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는 억울한 원혼들, 그중 특히 북쪽 이야기는 대부분의 남쪽 사람들에겐 낮설고 생경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재미목사는 노근리사건은 남쪽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생경한 이야기가 이제 '국제적 조사' 속에서 그 진실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군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을 점령했다. 북측은 이 기간동안 이 지역에서만 3만5000명의 양민이 미군에 의해 학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목을 작두로 자르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은 창고에 가둬 질식시키거나 불태워 살해했다는게 북쪽의 주장이다."

"통일에 이르는 마지막 길의 민족사적 과제를 꼽으라면 미군의 양민학살에 대한 진상조사와 배상이다." 전민특위 사무총장 정기열 목사 ⓒ 오마이뉴스 이병한

지난 3월 31일부터 4일동안 평양에 다녀온 '미군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이하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총장 정기열 목사(48). 그가 몇 차례 평양을 오가며 북측 관계자들로부터 전해들은 미군의 양민학살 진상은 처절할 정도로 참혹했다.

당시 한반도 전체 인구의 5분의 1인 50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민족사의 일대 사건 한국전쟁. 그 과정에서 미군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역사적 한'을 푸는 사업을 정목사는 '겨레의 한풀이 사업'이라고 칭한다.

미국 시민권자로 89년 3월 방북한 이래 지금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북한 길에 올랐던 정목사. 그는 전민특위가 남북의 미군피해 사례들을 모아 오는 6월 23일 미국에서 상징적인 국제전범재판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국제전범재판이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정목사는 "정치적, 도덕적, 역사적 권위를 갖는다"고 말한다. 1967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군의 베트남 전쟁의 책임을 묻는 '러셀 전범재판법정'이 열렸던 것을 모델로 하는 이 전범재판은 남측의 전민특위 법률지원단(단장 변정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북측의 조선민주법률가협회가 공동으로 미군의 양민학살 만행을 기소하고, 램지 미전법무장관인 클라크 단장이 기소장을 내고 재판에 들어간다.

정목사는 "최근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으로 인해 그간 조심스럽게 진행됐던 북쪽의 양민학살 진상조사 사업이 급선회하고 있다"며 "6.15 남북 정상 만남 이후 자제해 왔던 미국에 대한 반감이 최근 방송과 신문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북한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또 "식량난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개선됐지만 50년만에 찾아온 지난 겨울의 혹한에도 지역 난방에 필요한 전력을 공장으로 돌리는 등 북한의 전력난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코리아전범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남과 북을 오가고 있는 정목사와의 일문일답.

- 평양의 분위기는 어떤가.
"94년부터 98년까지 고난의 행군 시기 하루에 한두 끼를 풀죽으로 때우면서도 높은 민족적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 뒤 북녘동포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활기에 차 있다. 식량 문제는 많이 해결됐다. 전력난이 문제다. 지난 겨울은 50년만에 찾아온 혹독한 추위라고 했다. 전력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관계 변화와 함께 경제적 요구가 높아지고 공장가동률도 높아졌었다. 그래서 낮에 가정집 등 지역으로 보내는 전력을 공장으로 돌리며 혹독한 추위를 난방없이 보내기도 했다고 들었다. 청천강 일대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소규모 수력발전기가 많이 눈에 띄고 풍력발전기도 곳곳에 설치돼 지역별로 전력의 자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북쪽에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두 분 수뇌가 약속한 대로 답방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다만 그 시기에 대해 북쪽 관리들은 '장군님만이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최근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관계가 심상치 않은데.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3월 14일자부터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은 미군 학살 만행과 주한 미군 범죄 등을 전격 거론하는 등 6·15 선언 이전으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다. 북 TV에서도 미군 학살의 만행에 대해 방영하고 있고 얼마 전에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노동신문>에 실렸다. 주요한 정세변화다. 하지만 항상 미국과의 대화창구는 열어두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 평양에 가면 주로 누구를 만나는가.
"전민특위 북측 본부의 주력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약칭 조국전선)이다. 1950년 7월에 결성된 이 단체는 50여년간 북쪽의 양민학살 실태를 파악해 왔다. 최근에 주로 만났던 사람들은 주로 조국전선 서기국장인 조규일 선생과 본부장인 윤기복 선생 등이다. 지난 3월에는 조선민주법률가협회 관계자들이 먼저 만남을 요청해 와 서기장과 조선반핵평화위 서기장 등 전범재판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 북쪽의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피해 규모는?
"황해도 신천을 비롯한 100여 군데에서 300만명의 양민학살이 자행됐다는 게 북쪽의 조사 결과다.(인민군 포함) 당시 북 인구 900만명 중에 3분의 1이 전쟁기간 중에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세균 화학전에 대한 생생한 영상 기록물도 가지고 있다. 이 자료는 국제전범재판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 북쪽에서 주장하는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의 양상은 어떠했는가.
"미군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을 점령했다. 이 기간 동안 3만5000명이 희생됐다고 북측은 주장한다. 어린아이들을 창고에 가둬 불태워 살해했다고도 한다. 미군의 이같은 양민학살 기록을 북측은 신천 학살방문관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있다. 이곳은 현재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반미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 미군에 의해 두 팔이 잘렸다고 주장하는 한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큰 딸 이름을 '복수', 둘째 아들은 '하', 셋째 딸은 '리라'라고 지었다고 한다."

- 전민특위 결성 배경은.
"한마디로 '겨레의 한풀이 사업'이다. 우리 민족이 6.15 선언 이후 통일의 길로 진입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통일에 이르는 마지막 길의 민족사적 과제를 꼽으라면 미군의 양민학살에 대한 진상조사와 배상이다. 2000년 6월 13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전쟁 당시 남북 500만명의 희생자 중 절반 이상이 민간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희생된 사건이자 민족적 존엄과 자주가 철저히 짓밟힌 사건이다. 특위 결성은 북측이 먼저 제안해 온 것이다. 지난해 5월 북경에서 남과 북, 해외 대표 실무자들이 만나서 결성에 합의했다. 공동사무국은 미국 워싱턴에 있다."

- 남쪽에서 이뤄진 미군 양민학살 사례 가운데 새로 밝혀진 것이 있다면?
"대표적인 것은 경남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 사건이다. 너른 초원에 피난민 2000명이 있었는데 미군 정찰기가 낮게 떠서 다녀간 뒤 미군 폭격기 4대가 와서 무차별 폭격해 양민을 학살했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 유가족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경남 함안의 황계일 씨(57)는 장지리 사건 당시 7살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다가 미군 폭격기에서 마구 쏟아부은 총탄이 아버지의 턱을 관통한 뒤 자신의 눈을 뚫었다고 한다. 그의 얼굴 왼쪽 부분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그의 눈에서 50년째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또 얼마 전 국회에서 토론회를 했는데 한 할머니가 단상으로 올라와 '양민학살의 진상을 낱낱히 파헤쳐야 한다'면서 자신의 발등을 보여주었다. 그 발등에서도 역시 50년 동안 마르지 않는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이들은 아무런 피해를 보상받지도 못했고 오히려 남북 분단의 현실 앞에서 죄인인 양 숨죽이며 살아왔다."

- 전민특위에 대한 미국측 반응은.
"2000년 12월 12일,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기 직전에 유감 표명으로 노근리사건 등 양민학살 사건을 유야무야 넘기려고 했다. 현재도 국방부에서 노근리 담당 변호사들에게 흘려주는 얘기는 '노근리를 변상하고 싶어도 100여 군데의 다른 사건이 기다리고 있어서 못하겠다'는 말이다. 따라서 양민학살은 인정하되 개인병사들의 우발적 실수로 치부하고 국가 차원에서의 배상은 안하겠다는 게 아직까지의 미국의 입장이다."

- 전민특위의 활동상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남쪽의 지역 단위에서 활발히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경남도 대책위의 경우 유가족 발굴, 제보, 증언청취, 영상물 작업 등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3-4차례에 걸쳐 진상조사단이 다녀갔고, 문화방송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특집을 내보내고 있다. 중요한 진전이자 변화다."

- 국제법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남측의 전민특위 법률지원단(단장 변정수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북측의 조선민주법률가협회가 공동으로 미군의 양민학살 만행을 기소하고, 램지 클라크 단장이 기소장을 최종 검토한다. 명실상부한 국제공동기소장이 작성되는 것이다.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뉴욕과 워싱턴에서 코리아 국제전범재판소가 설치될 것이다. 전민특위 남측 및 북측, 해외본부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전범재판은 한국전에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16개국과 제3세계 국가의 대표들로 재판부를 구성하고 트루먼 행정부를 피고로 해 진행될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 국제전범재판은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정치적, 도덕적, 역사적 권위를 갖는 것이다. 1967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군의 베트남 전쟁의 책임을 묻는 '러셀 전범재판법정'이 열린 뒤에 이라크 전쟁, 유고 침공 등에 대해서도 그런 재판이 열린 적이 있다. 67년 파리 러셀 법정 이후 유럽과 미국의 반전운동이 확산되면서 베트남전을 종식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우리는 겨레의 한풀이 사업에 대해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미국은 양민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따른 국가차원의 배상을 해야 한다."

- 앞으로 계획은.
"4월 24일 전미법무장관인 렘지 클라크를 단장으로 하는 전민특위 국제진상조사단과 함께 북한 학살지를 방문하고, 피해자 유가족들의 증언을 청취할 예정이다. 28일부터 30일까지 이들은 남한을 방문해 현지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내년 6월 23일 코리아 전범재판법정은 피해당사자인 우리 민족과 세계 양심이 연대해서 세우는 최초의 국제전범법정이다. 그간 전범재판은 피해자들이 제외된 채 소위 '세계양심'만이 주도해 가해자를 기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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