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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준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최경준 기자의 입장과 메이저 언론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하는 출입기자실 간사 오점곤 YTN 기자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들게 되는 한 가지 의문은, 사회 곳곳의 성역을 파헤치고 질타하는 언론인들이 왜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해서는 ‘한 치도 발을 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느냐 하는 것이다.

까놓고 얘기하자. 거친 얘기로 기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보도 자료를 받아 쓰는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 그리고, 우리는 후자를 특종이라고 한다.

보도자료를 베끼는 것은 더 이상 기사가 아니다. 기자는 타이피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가 특종기자, 심층분석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이달의 기자상’을 주는 것도 ‘보도자료에 안주하는 기자’가 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를테면, 지난 26일 있었던 개각 보도는 청와대 대변인이 흘려준 보도자료라는 한 가지 소스에서 나왔다.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서 타 언론사와 얼마나 차별성을 제공하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자체가 기자가 발로 뛴 흔적을 찾아 보기는 힘든 기사가 된다.

개각 관련 보도에서는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이외에는, 이른바 개인적으로 아는 ‘관계자들’로부터 얻은 귀동냥 기사가 첨부될 따름이다. 잔인하게 얘기해서 이런 류의 기사는 청와대 출입기자실이 아닌, 각 신문사로 보내진 팩스나 전자우편만으로도 충분히 다뤄질 수 있다(그렇다고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기자로서 함량 미달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개각 관련 청와대 브리핑과 인천공항공사 부사장의 공항 출입 기자들에 대한 브리핑은 형식상 별다른 게 없다. 현장의 기자들도 공개된 자리에서 던지는 몇 가지 질문에서 특별한 것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을 것이다.

그 같은 현장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인천공항 출입기자실 간사가 오마이뉴스의 최경준 기자에게 한 행동은 지나쳤다는 느낌이다. “정식 등록된 기자들만이 취재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만약 뉴욕타임즈나 CNN, 요미우리 신문 등의 외국 언론사 특파원이 비표도 없이 그곳에 들어왔다면, 오 간사가 그들을 제지할 수 있었을까?

자신보다 영향력이 덜 한 매체의 기자에 대해서는 정보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으면서 비슷한 울타리의 언론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패러다임이 아니다. 사회의 각 구성원들에게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질타하면서 메이저 언론의 기자들은 정보 독점에 집착하는 이 같은 태도는 일면 모순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인천공항 기자실 사건은 지난 주말 있었던 모 언론사 해외 지사 기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이 기자는 지난 주말 미주 한인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밀입국 알선 조직 수사에 대한 경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기자회견에는 이 나라의 주요 방송 및 신문 기자들이 대거 참석해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 기자는 한인 관련 뉴스가 있을 때나 간혹 프레스센터에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따로 출입증 같은 것을 만들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가 취재하려고 하는 것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사도, 비표도 없는 기자회견장에서는,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이 ‘너는 인터넷 신문이니까’, ‘너는 주월간지 기자니까…’ 하는 텃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경찰은 한 켠에 보도자료를 쌓아두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를 했다. 아닌 얘기로, 밀입국 조직 사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된 기자 회견이었다.

28일 인천공항 중앙기자실에서 있었다는 ‘해프닝 아닌 행패’를 보면서 23일의 경찰 기자회견의 정경이 떠올랐다. 아무리 언론사의 문화가 다른 나라이지만, 이렇게도 다를 수도 있단 말인가.

또 한 가지, 인천공항 기자실 사건은 3월13,14일 양일간 주요 언론사들을 통해 보도된 인천공항 국회의원 귀빈실 이용 논란에 대한 기사를 다시 보게 했다. 기사의 내용은 인천공항이 국회의원들의 귀빈실 출입을 제한하려고 하자 의원들이 “줄 서면 체신이 안 서니 김포공항에서와 같이 계속 귀빈실을 이용하게 해달라”고 졸라 빈축을 산다는 것이었다.

당시 언론사들은 ‘[기자의 눈] 귀빈대접만 급한 의원들’, ‘국회의원의 힘!’, "줄서면 체신안서..공항귀빈실 이용케" 등의 제하의 기사들을 써서 건교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혼쭐낸’ 바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은 언론의 비판에 아랑곳 없이 계속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언론으로부터 얻어맞은 의원들은 유일하게 임대료 없이 기자실을 이용하는 공항 출입 기자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애석하게도 최경준 기자를 회견장에서 쫓아낸 출입기자실 간사 YTN 오점곤 기자의 보도 내용도 인터넷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오기자는 국회의원들에 대해 느끼는 일반 승객들의 위화감만 생각했지,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마이너 언론’ 기자들의 위화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기자의 리포트(아래)를 보면서 과연 빈축을 사야 하는 쪽은 누구인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편집자 주:

3월 29일자 미디어오늘은 <중앙지는 '중앙' 지방지는 '구석'>이라는 제목아래 인천공항의 중앙지-지방지 기자실을 둘러싼 신경전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도 '브리핑을 중단시키는 오점곤 기자'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공항 관계자가 참여한 뉴스 브리핑 시간때는 공항 출입기자실 간사를 맡고 있는 YTN 오점곤 기자가 브리핑을 잠시 중단시키며 지방지 기자가 나갈때까지 브리핑을 할 수 없다고 해 감정이 극도로 격화되기도 했다." )

덧붙이는 글 | 다음은 3월 18일 보도된 YTN의 보도 전문. 

국회의원의 힘! 

[앵커멘트] 
오는 29일 개항 예정인 인천국제공항에서 귀빈실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 국회의원이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다가 사실상 철회돼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오점곤 기잡니다. 

[리포트] 
"개항 준비가 덜 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에 국민들에게 걱정만 안겨주던 인천공항" 

이런 인천 공항측이 지난달 27일에 오랜만에 박수를 받을 만한 방침을 하나 세웠습니다. 

국회의원들의 공항 귀빈실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승객들이 느끼는 위화감을 해소하겠다는 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사실이냐는 국회의원의 한마디 호통에 이 방침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녹취:강동석, 국회 건교위 13일 현지 간담회] 
"아무것도 결정 된 것 없다. 김포공항 수준으로 한다 
"이윤수:국회의원들이 사용한다고 뭐...." 

이에 따라 인천공항도 김포공항처럼 국회의원들의 귀빈실 사용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계획이 수정되고 있습니다. 김포공항도 3부 요인 등으로 사용대상이 제한돼 있지만 관행적으로 국회의원과 장관, 재벌 총수 등에게 이용 혜택이 주어져 특혜 논란 이 빚어져 왔습니다. 

YTN 오점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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