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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질문-정리: 김미선/전홍기혜 기자
사진: 이종호 기자


1월29일.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여성부가 신설되던 날, 사람들은 두 가지에 만족을 표했다. 여성계에서 오랜 세월동안 요구해 온 여성부 신설에 대한 환영이 그 첫번째였다면, 두번째는 여성부의 수장으로 임명된 한명숙(58) 초대 장관에 대한 환영이었다.

여성학 전공,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 여성운동가로서의 삶을 거쳐 장관직에 오른 한명숙 장관. 여성운동의 척박한 토양을 꿋꿋이 개척해 온 그의 이력 때문이었을까. 그는 취임 일성으로 "여성부가 성평등사회를 앞당기는 데 앞장서겠다"고 포문을 열었고, 15일이 지난 2월1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호주제 폐지, 군가산점제 폐지, 모성보호법안 제정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남성 위주의 사회를 향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여성부 관청은 여성부의 전신인 여성특위가 있던 조달청(서초구 반포동) 5층에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집행권한과 국무위원 자격을 갖추게 된 지금의 역할은 그때보다 사뭇 중요해졌다.

자줏빛 투피스 차림에 밝은 얼굴로 나타난 한 장관은 우선 부모성을 딴 자신의 이름이 '한이명숙'이라고 소개했다. 또 한평생을 여성운동에 투신해 온 사람답게 여성문제에 대해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풀었다.

한 장관은 인터뷰에서 "호주제 폐지는 내가 NGO에 있을 때부터 추진해 온 사안"이라며 "국회 의원입법발의와 NGO차원의 폐지운동 등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폐지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많은 후유증을 남기고 폐지된 군가산점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평등에 문제가 있었다"며 "가산점 외에 다른 차원의 혜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내 주요 사안으로 △성폭력이 없는 사회만들기 △아줌마들의 사회적 능력발휘 확대 등을 꼽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간 여성운동을 해오면서 겪은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책으로 쓰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한 장관. 한 장관은 "모든 여성문제의 가해자는 남성이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의식"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사회에서의 여성 권익향상과 성평등 사회를 위한 설계를 제시했다.

- 여성부의 영문표기는 성평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이다. 한 장관은 '여성부는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을 확립에 앞장서는 부서'라고 밝힌 바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제도와 의식의 괴리라고 보여진다. 우리나라의 제도는 지난 10여년간 획기적인 성과를 이뤘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의식과 생활변화는 많이 뒤처져 있다. 여성문제는 여전히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여성무시 풍조와 관행도 여전하다. 여성문제에 대한 왜곡된 인식,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부재 등을 제도수준으로 맞추는 게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 여성들에게 대한 저급한 의식수준은 일반 사회보다 오히려 정치권, 공직사회에서 더 심하다고들 한다. 이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맞다. 하지만 무슨 통계치가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정치계에서 여성 차별이 더 심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성부가 이를 어떻게 좁혀나갈지는 과제다."

- 한 장관은 여성운동을 계속해 오다가 지난 16대 국회에 진출했고, 이제 여성부 장관으로 행정 관료가 되었다. 자리가 변한 만큼 운신도 폭도 달라졌을 거라 생각되는데.

"기대가 많아서 어깨가 무거운 건 사실이지만 정말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긴다. 여성운동을 할 때는 자유로웠다. 국회로 들어가니 제도권이라는 벽 때문에 책임감이 더 느껴졌다. 하지만 장관이 된 지금은 행정관료로서의 구속력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여성문제는 여야를 초월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 안타깝게도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여성 장관은 모두 단명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그렇다. 대체적으로 여성 장관의 수명은 일년을 넘지 못했다. 나 또한 어찌될지 모른다. 그러나 국회의원직을 내놓고 하는 것인 만큼 '여성부 출범에 맞춰 기틀을 잡아놓자'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여성부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그 기틀을 잘 짜 놓으면 누가 하더라도 바른 정책을 펼 수 있다."

- 하지만 여성장관의 단명은 실책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언론의 의도적인 '여성 장관 죽이기'에 기인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한 장관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많은 여성장관들이 사회에서 공인으로 대접받기보다는 여기자, 여류화가, 여성장관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여성'이라는 면만 강조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성이라는 것을 앞세워 부수적인 것으로 여성의 능력을 평가절하시켜 왔으며 언론이 이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담당 장관을 여성이기 이전에 공인으로 대접할 수 있도록 사회의식과 언론이 성숙해야 한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초대 장관으로서 여성부의 기틀을 짜겠다고 했는데 자신의 공으로 남기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성희롱 문제와 여성인적자원 활용에 관심이 많다. 최근 사회지도층의 성희롱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데 성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성폭력을 가해자, 피해자로 나누기보다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생긴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사회분위기를 바꿔나갈 생각이다. 또 여성인적 자원활용에도 신경쓰겠다. 고학력 여성들의 취업문제를 비롯해 아줌마들(주부)의 사회적 능력발휘도 시급한 과제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주부들이 가정에 갇혀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줌마들의 저력을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

- 요즘 드라마 '아줌마'가 아주 인기가 좋다. 이 드라마는 본 적이 있는가?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못 봤는데 주변에서 하도 많이 얘기해서 몇 번 봤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인 요소가 많긴 한데 이보다는 아줌마들의 능력, 인간미, 사람을 제대로 껴안고 인간사회를 직시하는 능력에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줌마들의 직관력을 끌어낸다면 사회적으로 큰 자원이 될 거라고 본다. 여성문제는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이 안고 있는 문제는 쓰레기에서 통일문제까지 다 연관된 것이다."

- 현재 여성부는 1실 3국, 102명인 초미니 부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부서에 여성정책 담당관을 두었다고 들었는데.

"현재 여성정책 담당관실은 6개 부처에 있으며 정책적으로 이를 확대하려 한다. 특히 기획예산처, 문화관광부, 환경부, 정보통신부에서 여성정책담당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부의 집행력은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각 부처의 여성정책담당관실을 확대하고 여성부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권한을 강화할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정책담당관제도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이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 여성특위가 여성부로 바뀌면서 권한은 어느 정도 강화된 것인가?

"남녀차별개선문제는 시정권고권을 갖고 있고 그외 법률제출권, 국무위원으로서의 발언·의결권, 부령제정권 등을 갖고 있다. 이는 중앙 행정부처로 여성들의 실질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여성은 참관배석이나 배경에 불과했다."

"호주제 폐지는 내가 NGO시절부터 추진해 왔던 사안...폐지위해 노력할 것"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여성계에서는 2001년도 집중사안의 하나로 지난해에 이어 '호주제 폐지'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한 장관의 입장은?

"호주제 폐지는 내가 NGO에 있을 때부터 추진해 왔던 사안이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내 생각에는 국회에서는 의원입법 발의가 되어야 할 것 같고, NGO에서는 폐지운동을 함께 벌여줘야 한다고 본다. 또 여성단체를 주축으로 이혼여성이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헌법소원도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 하나의 법률이 폐지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부는 기본적으로 호주제 폐지를 찬성하면서 호주제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인식을 높이기 위해 홍보에 주력할 생각이다."

- 호주제 폐지를 비롯한 대다수의 여성정책들은 보수세력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이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물론 반발도 많다. 유림을 비롯한 국회 내 보수적인 의원들도 크게 반발하리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주장을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만 보면 어둡지만 반대로 각계의 환영도 많다. 3당이 여성부 출범시 환영한다고 발표했고, 언론도 호의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어두운 측면과 밝은 측면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내 발목을 잡는다'고 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을 싸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설득을 통해 해결할 것이다."

- 여성에 대한 성희롱, 성폭력은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현재까지도 여성문제 중 가장 큰 사안이다.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구체적인 대안은 없는가?

"맞다. 이전부터 밥먹듯이 자행되어 오던 것이 법률이 만들어지고 홍보가 되면서 피해여성들이 용기를 내면서 최근 드러나고 있다. 최근 이런 사건이 계속 이슈화되면서 성폭력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후처리보다는 사전예방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우선적으로 고위층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행정부처, 공기업 등의 성희롱 교육을 강화하고, 기존의 형식적 교육이 되지 않도록 여성학 전공 강사를 풀로 확보할 것이다. 이런 교육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면 시간을 걸리겠지만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최근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사이버상의 성문제가 사회문제로 커지고 있다. 군가산점 폐지나 호주제 폐지 논의시 이에 반대하는 익명글은 욕설과 저질발언이 대부분이었다. 구 여성특위 게시판도 사이버 성폭력에서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가?

"이 문제는 정통부나 여성부 모두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익명을 차단하고 실명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양한 목소리를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인터넷 상의 언어 폭력은 전반적인 사회적 성숙도와 비례한다고 보여진다. 해결책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고민해 보겠다."

- 군가산점제가 남성들의 거센 반발을 받으며 폐지됐다. 군가산점제 폐지에 대한 장관의 입장은 어떤가?

"군가산점제에 대해서는 여성계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현재의 군가산점제도는 근본적으로 평등에 문제가 있었다. 군의무자에게 가산점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사회적 혜택을 주는 방법을 강구중이다. 군복무기간만큼 공무원 시험기간을 연장해 준다든지, 군복무기간 내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등의 대안을 시행중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우리나라 여성정책이 중산층, 지식인 계층에게 주로 그 혜택이 돌아가고 저소득층 여성들은 다시 이러한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저소득층 여성들에 대한 대책은?

"여성부가 특권층, 즉 배우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담당하는 곳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여기에서도 밀리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우다. '일하는 여성의 집' 사업 등을 통해 저소득층 여성들이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특히 노동부에서 담당하는 직업능력 개발이나 실업대책에 있어서도 여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모성보호 관련법안이 통과되면 일하는 여성들이 받았던 출산 휴가가 너무 짧다든지, 육아휴직시 소득보전 등의 간접차별 문제가 많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내 개인적으로는 비정규직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이 모성보호 혜택을 받도록 노력할 것이다."

- 최근 부패방지법 등 3대 개혁입법안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개혁입법안에 대한 장관의 정치적 입장은?

"국회의원일 때 3대개혁 입법 추진을 하는 의원 모임의 한 사람이었다.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중인 국가보안법도 빠른 시일 내에 의견을 좁힐 수 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프로필
1944. 3. 24생 △1963 정신여고 졸업 △1967 이화여대 불문학과 졸업 △1977 한신대 신학대학원 여성신학 석사 △1985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 석사 △1999 일본 오차노미주여대 대학원 박사

경력
△1974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강사 △1986 이화여대 여성학과 강사 △1989-1994 한국여성민우회 회장 △1990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 △1993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1997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 객원 연구원/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환경처 전문위원/환경연합 지도위원/현 한국여성단체연합 지도위원 △1999 새천년민주당 여성위원회 위원장 △2000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중앙선대본부부본부장 △2000-2001 16대 국회의원(민주당)/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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