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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어언 3년 6개월전의 일이 되었다. '조너선 레빈'이라는 31살의 고등학교 교사가 뉴욕 맨하탄의 한 아파트에서 피살된 것은 1997년 6월2일.

사건 발생 닷새만에 조너선의 흑인 제자였던 코리 아서(21세, 무기징역으로 수감중)가 체이슨 맨하탄 은행의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던 중 폐쇄회로 카메라에 얼굴이 찍혀 경찰에 붙잡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된다.

조너선 레빈의 '특별한 뒷배경'만 아니었으면 '범죄의 도시' 뉴욕에서 일어난, 흔하디 흔한 강도 살인사건 중 하나로 묻힐 수 있었을 것이다.

뉴욕의 대표적인 빈민가인 브롱스의 태프트 고등학교의 '평범한 영어 교사'였던 희생자의 아버지는 연간 매출액 2백억 달러(약 24조원)의 세계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타임-워너'사의 제랄드 레빈 회장이었다.

주변의 전언에 따르면, 조너선은 재벌 회장의 아들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교사 봉급을 조금씩 모은 약간의 은행 예금과 방안 가득히 들어찬 책들이 전부였다.

조너선은 1970년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 제랄드 레빈 회장과 불편한 관계를 가졌다. 레빈 회장이 재혼후 맨해튼으로 이사했지만, 1995년 뉴욕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고교 교사가 될 때까지도 지척 거리의 아버지를 찾지 않았다고 한다(결국 아버지와 화해, 부자의 정을 쌓았다고 한다).

조너선의 지인들은 "그가 재벌회장의 아들로서보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한 인간'으로 기억되길 바랬다"며, 아버지 레빈 회장도 측근들에게 "아들이 하는 일은 내가 하는 일보다 몇백 배 소중한 일"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1998년 6월 5일자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조너선은 피살되기 몇 주전에야 제자들에게 아버지가 재벌 회장임을 밝혔다고 한다. 제자들에게 자서전을 쓰라는 숙제를 내주면서 자신의 살아온 내력을 들려주면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다는 것.

한 학생이 "아버지 재산을 물려받으면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버지 재산은 내 돈이 아니다. 미래는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응답해 제자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뉴욕타임즈는 당일자에 이례적으로 조너선의 죽음을 다룬 사설을 실어 "조너선의 사망소식은 그의 아버지가 타임워너사의 회장이 아니었다면 1면 기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폭넓은 관심과 슬픔을 불러일으킨 것은 재벌 2세로서의 이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의 죽음은 세인들에게 청소년의 삶을 개조하기 위해 헌신해온 유능한 교사들의 힘을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의 슬픔을 애도했다.

조너선이 교편을 잡은 태프트 고교는 총기 사고가 하도 잦아서 학교 입구에 아예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있는 '교육의 사각지대'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문학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고 현실을 고발하며 자신감과 희망을 일깨운 미남 선생으로 기억됐다.

그는 봉급을 털어 문제아들과 뉴욕 양키스의 야구 경기를 함께 즐기기도 했고,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 음식을 사주며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성적이 오른 학생에게는 옷이나 책을 사주었고 성적이 부진한 학생은 점심시간을 쪼개 특별지도를 한 다정다감한 선생이었다.

학생이 결석하면 집에 전화를 걸었고 문제학생에게는 "무슨 일이 있으면 상의하자"며 집 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범인도 그런 문제학생의 하나였고, 몇 푼 안되는 현금이 범행 동기였기에 더욱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한다.

조너선의 죽음이 전해진 다음날 추도 예배를 한 고등학교 강당은 그야말로 울음바다. 한 제자는 울분을 참지 못해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다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고, 십여 명의 학생들은 실신, 병원 응급실로 긴급 후송되었다고 뉴욕타임즈는 당시 풍경을 전하고 있다.

레빈 회장은 장례식을 마치고 아들이 교편을 잡았던 태프트 고교에 장학기금을 설립하겠다고 밝혀, '그 아들에 그 아버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아들 조너선처럼 교직을 택하는 태프트 고교 졸업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장학기금의 일부는 극히 빈약하고 낙후된 고교 체육시설 및 운동장 개보수에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돈에 무관심했던 이 평범한 젊은이의 일화를 근 3년 반만에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순전히 미국에서 유학중이라는 이재용이라는 한 재벌2세 젊은이 때문이다.

44억원을 가지고 3년만에 4조원의 재산을 만들었다는 32세의 이재용 씨가 성실 납세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터져 나온 지 이미 오래. 물증은 없으나 심증이 강한, 어쩌면 물증도 있고 심증도 있는 '삼성가 변칙 상속 의혹'의 처리 방향은 3가지 중 하나이다.

탈세를 엄단해야 할 '경제 검찰' 국세청이 소신껏 의혹을 파헤치거나, 삼성가에서 세간의 의혹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자진 납세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모두가 자포자기에 빠져 침묵 속에 잊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번 돈이건 부모의 유산이건 누구나 내 돈 쓸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조너선 레빈의 전설'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 미국에서도 흔한 예는 아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인간의 욕망은 미국과 한국이라는 지역적,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 내에도 상류사회가 있고, 부모의 후광 속에 호의호식하는 계층이 있다. 그러나, 그 한편으로는 '부자로 죽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인생의 반은 부를 쌓는데, 나머지 반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써야 한다는 '카네기 정신'이 자리해 있다.

미국 법무부의 압력으로 거대기업을 쪼개야 할 운명에 처한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사원들과 성장의 열매를 함께 하고, 가장 많은 규모의 자선 기금을 기부하는 기업체이기에 세인들도 일방적으로 매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에게는 그들의 지위를 향유할 만큼이나 사회의 룰을 준수하고 마이너리티를 배려해야 한다는 의무가 따라다니고 있다.

돈에 무관심하고 제자들 교육이 인생의 절대 목표였던 조너선 레빈의 신화는 한국의 토양에서는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이재용 씨의 상속세 건의 처리 방향은 한국적인 토양에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뿌리내릴 수 있는지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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