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휴먼라이트워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 소수자들이 학대와 인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휴먼라이트워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 소수자들이 학대와 인권 침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 휴먼라이트워치

관련사진보기


최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전시회에 출품된 한 학생의 작품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성애 권장, 반동성애 캠페인'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 사건은 성 소수자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임을 보여줬다. 성 소수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도 드러냈다.

성 소수자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런 시선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그중에는 성 소수자가 노골적인 폭력에 노출된 곳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는 5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 소수자가 당하고 있는 학대와 인권 침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93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6개 주에서 120명 이상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휴먼라이트워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난한 흑인 밀집 지역과 농촌에서 레즈비언, 양성애 여성, 트랜스젠더 남성 등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밝혔다.

흑인 밀집 지역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심각한 이유는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다. 20세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악명 높았다. 백인에게 차별받던 흑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웠다. 국제 사회에서도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 결과, 1990년대 들어 아파르트헤이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4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됐다.

제도적인 차별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대다수 흑인들의 경제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백인들이 여전히 경제권을 쥐고 있었고, 정부도 시장주의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가난한 흑인들은 대부분 불평등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칼레마 모틀란테 남아프리카공화국 부통령도 8월에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진 지 17년이 지났지만 대다수는 부와 소유에서 배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백인의 재산을 몰수해 흑인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백인들이 흑인들을 착취해 쌓은 부인 만큼 흑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나올 정도로 다수의 흑인들은 여전히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에 교육 수준을 대폭 향상시킬 수도 없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바탕을 둔 폭력이 심각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성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는 성 소수자들

휴먼라이트워치 보고서에는 성폭력, 협박 등 '성적 공격'에 시달린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23세 여성 풀렝(가명)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을 당했다.

"난 클럽에서 나와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네 놈이 날 강간했다. 난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그들이 내게 말했다. '우린 단지 네가 여자라는 사실을 네게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 후 풀렝은 성폭력을 당한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거꾸로 인식하는 모습도 보였다. '나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피해자가 거꾸로 이해하는 것은 성폭력처럼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을 때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이 그들을 도발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2세의 레즈비언 두미사니(가명)도 성폭력 피해자다.

"그 남자가 날 덤불로 끌고 갔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 남자가 내게 바지를 내리라고 말했다. 난 거부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날 때렸다. 그 남자는 늦은 밤까지 날 강간했다. (……) 그 후 그놈을 또 봤다. 1주일 후, 그 남자가 다른 소녀를 강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남자는 체포됐지만 사흘 만에 풀려났다. (그러고 나서) 그 남자는 소녀를 심하게 두들겨 팼다. 그 소녀는 3주간 입원했다. 난 정말 무서웠다."

협박과 언어폭력을 당한 성 소수자 여성들도 있다.

"학교에서 알던 한 녀석이 내게 말했다. '날 따르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다면, 난 널 집에서 끌어내 네거리로 끌고 가 강간한 다음에 죽여 버릴 거야.'" (카틀레고, 가명, 21세)

"택시 승차장에서 끊임없이 언어폭력에 시달린다. (거기 있는) 남자들은 '넌 손가락과 혀로 어떻게 만족하냐?'라고 말한다. (……) 한 녀석이 성기를 꺼내더니 '네게 필요한 건 이거야'라고 말한 적도 있다." (비키, 가명, 35세)

휴먼라이트워치는 성 소수자로 알려지거나 그렇게 간주되는 사람들을 학대한 이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이 점은 두미사니를 성폭행한 남성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휴먼라이트워치와 인터뷰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보호를 요청하거나 범죄 피해를 신고하기 위해 경찰과 접촉하는 것을 꺼렸다. 그런 일로 경찰을 만났다가 조롱, 괴롭힘 등 2차 피해를 겪은 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휴먼라이트워치는 밝혔다.

"(레즈비언인) 당신은 경찰에 갈 수 없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레즈비언 중에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그 여성의 사건은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난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언젠가) 강간당할 것이다. 그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지내고 싶어진다. (……) 내 여자친구도 (같은 이유로) 혼자 있다." (놈베코, 가명, 18세)

휴먼라이트워치는 학교도 성 소수자가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 여선생님이 말했다. '만약 내가 동성애자를 낳으면 죽여 버릴 거야.' 그 선생님은 날 교실에서 쫓아내려 했다. 동성애자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네샤, 가명, 13세)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

휴먼라이트워치는 거의 대부분의 인터뷰 대상자가 성적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성 소수자가 학대와 차별에 유독 취약한 이유 중 하나가 그 가족들이 성 소수자를 충분히 지원하고 보살피지 않기 때문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와 함께 휴먼라이트워치는 성 소수자들이 취업, 공공 서비스 이용 등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휴먼라이트워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를 비롯한 관계당국을 비판했다. 성 소수자가 법 앞에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게 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앞장섰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 소수자들이 일상적으로 절망에 빠져야 하는 역설적인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대목에서 휴먼라이트워치는 정부의 역할이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성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비판이다.


태그:#성 소수자, #성폭력, #남아프리카공화국, #동성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