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만 봐도... 윤일병 엄마는 '그날'로 돌아간다

남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쩡하다고 해서 국가의 부름을 받은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유공자 혹은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 엄마는 직접 아들의 사체검안서를 들고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를 찾아가야 합니다.

사실 엄마는 보상금을 주겠다는 종이 쪼가리보다 훨씬 더 절실한 게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 투명한 정보공개, 진심어린 사과, 따뜻한 위로,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일상이 그들의 가슴에 콕콕 트라우마를 새겼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군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바로가기)에서 국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 스토리펀딩 링크
- 프로젝트 :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7468
- 2화 : https://storyfunding.kakao.com/episode/29290

아들(고 윤승주 일병, 이른바 '윤일병 사건'의 피해자)이 군대에서 죽었다. 엄마에겐 아들과 관련된 모든 상황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2014년 3월 어느 날, 생전의 아들은 군대에서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했다.

아들 "엄마, 왜 그 번호로 전화했어?"
엄마 "왜? 그 번호로 전화하면 안 돼?"
아들 "그 번호는 정말 급할 때, 아주 비상일 때만 하는 거야."
엄마 "내일 면회 가야 하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 전화했지."
아들 "내일 면회 안 돼."

엄마가 들은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엄마는 이틀 후 병원에서 아들을 만났다. 아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었고,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의 몸엔 생전 처음 보는 의료기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아들의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마에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의료기기를 다 달아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2014년 4월 7일 오후 4시 20분께), 결국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면회를 할 수 없다는 아들의 말은 거짓이었다. 3월 28일, '쫄병'도 면회가 가능했다. 4월 5일, 산 속으로 간다는 훈련은 지어낸 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위에서 시켜서 한 아들의 거짓말이었다.

"면회가 어려울 것 같아"라고 말할 때, 아들의 몸은 이미 시퍼런 멍으로 가득했다. 다리가 퉁퉁 부어 전투화 끈도 묶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들뿐만 아니라 선임들이 먹을 갈비찜까지 잔뜩 준비했었다.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있는 아들의 사진 앞에서, 엄마는 눈물을 쏟았다.

(글 : 소중한 기자, 영상 : 안정호 기자)

| 2017.09.2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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