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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월길 고려 현종 때 지어진 천년고찰 진관사 칠성각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백초월스님이 쓰던 진관사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 21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태극기비'에서 진관사까지 백초월길이 조성돼 있다.ⓒ 변영숙

설 연휴가 성큼 다가왔다. 다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거나 차례를 지낼 테지만, 그것만이 명절의 풍경인 시대는 지났다. '명절'보다 '연휴'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해야 할까. 

이번 설 연휴는 주말까지 더해 총 5일. 생활 반경을 벗어난 곳으로 여행을 가기 좋은 시간이다. 올해에도 일찌감치 교통편을 마련해 국내·외로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 도로가 붐빌 것이다.

물론 긴 연휴에도 불구하고 멀리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분명 있을 테다. 예약에 실패했거나, 시간이 애매하거나, 귀성·귀경길 정체에 갇히는 게 두렵거나.

여행을 가지 못해 아쉬운 이들에게도 떠날 기회는 남아 있다. 예약과 준비 없이도 갈 수 있다. 운동 삼아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의 고즈넉한 풍경과 곳곳에 남겨진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여행지다.

2009년 9월에 개장한 북한산 둘레길은 저지대와 마을들의 샛길을 다듬어서 연결한 길로 물길, 산길, 숲길, 마을길 등 총 71.5km에 달한다. 등산길과 달리 평평한 길이 대부분이어서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 10구간인 '내시묘역길'은 은평구 진관동부터 고양 효자동 공설묘지까지 이어진 약 3.5km의 짧은 거리다. 은평한옥마을과 천년고찰인 진관사로 이어지는 '백초월길'과 함께 묶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런 '걷기여행코스'가 된다. 발길 닿는 곳마다 북한산의 노적봉, 백운대, 응봉, 용출봉 등 멋들어진 북한산 봉우리들이 반기니 걸음걸음이 즐겁고 탄성이 새어나온다. 
 
은평한옥마을 
  
은평한옥마을 한옥문화체험특구로 지정된 은평한옥마을전경. 북한산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같은 마을이다. 최근에는 입소문을 타면서 서울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 변영숙
 
보통 내시묘역길은 방패교육대 앞에서 시작되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은평한옥마을에서 시작해 백초월길과 진관사를 돌아나오면 더욱 알찬 코스가 된다.
 
은평한옥마을은 한문화체험특구로 지정된 대규모 한옥단지로, 전주한옥마을과 달리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마을공간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빼곡하게 한옥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조선시대 반촌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연한 황토빛 목재로 잘 지어진 한옥들이 더 없이 정갈하고 품위 있어 보인다. 저마다의 개성을 살린 한옥들이 풍기는 멋이 그윽하다. 어느 햇살 좋은 날 골목골목 집구경에 나서고 싶은 동네다. 몇몇 식당과 카페, 제과점 등은 이미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덕에 새로운 데이트명소로 떠오르기도 했다. 
 
진관로 중간쯤에 위치한 '셋이서 문학관'과 '삼각산 금암미술관' 등의 문화공간 등도 있어 편하게 둘러보면 좋다. '셋이서 문학관'은 북카페이면서 전시공간이다. 천상병, 중광, 이외수 등 3인의 시 작품들이 시화의 형태로 전시됐다. 철퍼덕 주저앉아 시나 실컷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문학관 옆 '삼각산 금암미술관'에서는 한국전통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두 곳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백초월길'과 '진관사 태극기' 
 
백초월길 입구가 시작되는 태극기 비 태극기비에는 진관사태극기와 '태극기'시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 변영숙
 
문학관과 미술관을 지나 조금 더 직진하면 '백초월길'이라는 안내판과 함께 '태극기 비'가 나타난다. 태극기 비에 새겨진 '진관사 태극기'와 '태극기' 시에서 비장함이 흐른다. 
 
"삼각산 마루에 새벽빗 비쵤제
네 보앗냐 보아 그리던 태극기를
네가 보앗나냐 죽온 줄 알앗던
우리 태극기를 오늘 다시 보앗네
자유의 바람에 태극기 날니네
이천만동포야 만세를 불러라
다시 산 태극기를 위해 만세만세
다시 산 대한국"

때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진관사는 칠성각 해체 보수를 하는 중이었다.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오래된 낡은 태극기와 유물 21점이 발견됐다. 1919년 발간된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상하이 임시정부기관지 <독립신문>, 단재 신채호 선생이 상하이에서 발행한 <신대한> 등의 신문과 친일파에 대한 경고문이었다.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태극기 사진이 칠성각에 걸려 있다 2009년 칠성각에서 낡은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 21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태극기의 한쪽 귀퉁이는 불에 타 없어지고 얼룩이 있었지만 태극기 모양은 온전했다. 이 태극기는 일장기를 떼다가 혹은 일장기 위에 덧그렸다고 한다. 현재 진관사에 보관돼 있다. ⓒ 변영숙
   
일장기를 오려서 만든 태극기는 가로 89cm, 세로 70cm, 태극 지름 32cm의 크기로, 한 쪽 귀통이는 불에 타서 떨어져나갔다. 얼룩도 심했지만, 태극기의 모습은 온전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제작된  태극기와 신문들은 진관사와 진관사 마포포교당을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벌였던 백초월 스님이 확보한 것들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전 급하게 숨겨놓은 태극기가 스님이 죽은 지 65년이 돼서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태극기의 발견은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의 생애와 활동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당시 왜곡된 불교계와 다른 길을 걸었던 진관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태극기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진관사에 보관 중이다. 
 
진관사와 백초월 스님 
   
진관사 전경 고려 현종 때 세워진 진관사는 북한산 응봉을 주봉으로 해 천하의 명당 자리에 자리잡은 천년 고찰이다. ⓒ 변영숙
   
진관사 들머리길에는 백초월 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한 '백초월길'이 조성돼 있다. '태극기 비'에서 진관사까지 약 1km 정도의 짧은 길이지만 누군가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을 내놓고 다닌 길이었을 것이다.   

백초월길을 따라 일주문, 극락교, 해탈문을 차례로 지나면 진관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무리지어 있는 오래된 소나무들과 북한산 봉우리들이 절집을 호위하듯 둘러싼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대웅전을 받치고 서 있는 응봉과 크고작은 기암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감전이라도 될 것만 같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건립된 유서깊은 천년고찰이다. 현종(1009~1031)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스님을 위해 세운 절이라고 한다. 당대 최고의 풍수대가들이 낙점한 길지에 진관사를 세웠다. 
 
그래서인지 고려가 멸망한 후에도 진관사의 위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조선 시대에도 범국민적인 국가행사로 '수륙재'를 봉행했다. 세종 때에는 한글창제를 위한 독서당과 비밀연구소가 있었다. 진관사 '국행수륙제'는 2013년 중요무형문화재 126호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상해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의 비밀거점으로 활용되는 등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칠성각에서 태극기와 신문자료들이 발견됨으로써 진관사의 위상이 확실해졌다고 할 수 있다.  
 
진관사 칠성각 진관사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 ⓒ 변영숙
   
백초월 스님(속명 백인영)은 187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13살에 지리산 영원사에서 출가했다. 스님은 독립군을 위한 군자금을 마련·전달하고 불교중앙학림(동국대 전신)에 한국민단본부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담당했다. 또한 <혁신공보> 발간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주로 맡았다. 
 
20대 중반에 불교중앙학림의 강사로 내정될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다. 만해가 불교계를 대표해 민족대표 33인에 들어갈 후보로 생각할 정도로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1938년 봉천행 화물열차의 '대한독립만세' 낙서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옥살이를 했다. 다시 독립운동자금 문제로 투옥돼 수감생활을 하던 중 1944년 6월 29일 청주교도소에서 순국했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절 마당 대각선 끝쪽에 나한전과 독성각, 칠성각 등이 한 무리를 지어 서있는데, 태극기는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칠성각에서 발견됐다. 

태극기 원본은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지 않아서, 칠성각 한쪽에 마련된 자료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실내가 어두워서 그냥 지나치기 쉬우니 각별히 유의해서 봐야 한다. 
 
6.25 전쟁 때 진관사의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됐는데, 칠성각은 독성각, 나한전과 더불어 화를 면했다. 만일 6.25 전쟁 때 불에 타버렸다면 태극기도 <독립신문>도 모두 함께 타 버렸을 것이다. 부처님의 은덕일까. '명당'의 덕일까. 
 
내시 묘역 없는 내시 묘역길
  
북한산 둘레길 10구간 '내시묘역길' 백화사 뒤편에 조선시대 최대 내시묘역이 발견됐다. 다양한 고위 내시관직의 묘 45기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중요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녔던 곳이다. 그러나 2012년 내시묘역은 갈아 엎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시묘역 없는 내시묘역길이 돼 버렸다. ⓒ 변영숙
 
'백초월길'을 걸어나와 진관공원지킴터 뒤편의 9구간인 마실길로 접어들면 은행나무 숲이 나오고,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170년의 느티나무를 지나면 삼천사 입구와 '내시 묘역길'로 가는 갈림길에 도달한다.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대사가 개산한 절이다. 1482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절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삼천사는 둘레길에 포함되지 않는다. 거리상으로도 멀고 오르막 길이 이어지는 험준한 길이지만 그만큼 보답은 크다. 절집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탑 2기가 마치 뒤편의 용출봉, 용혈봉 등과 힘겨루기를 하는것 처럼 서 있다. 경내에 보물 657호인 마야여래입상이 있다. 
 
삼천사를 지나쳐 방패교육대쪽으로 향하면 백화사와 '내시묘역길' 입구가 나온다.
 
은행 나무 숲 둘레길 은행나무 숲 - 진관사에서 내시묘역길 넘어가는 길ⓒ 변영숙

백화사는 최근에 중창된 비구니사찰로 마애불이 볼 만하다. 뒤편으로 조선 시대 내시들의 집단묘역이 있다. 이 길이 '내시묘역길'로 불리는 이유이다. 
 
2003년 중골마을에서 이사문공파의 내시 무덤 45기가 발견됐다. 조선시대 내시 묘역 중 최대 규모로,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묘역에는 1621년 처음 묘비가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 김충영의 묘를 비롯해 상선과 같은 고위관직의 묘도 다수 포함돼 있다. 내시 묘제 연구뿐만 아니라 내시 인물사 등 풍속사 연구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2012년 내시무덤 45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묘역 자체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후손들이 묘역을 팔아 넘겼다. 새 주인은 흔적도 없이 무덤을 갈아엎어버리고 석물은 팔아버리거나 정원의 조경용으로 사용했다.  마을 사람들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북한산 초등학교 내시묘역길에서 만난 북한산 초등학교 전경ⓒ 변영숙
 
당국이 문화재 지정이나 관리에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귀중한 역사 문화재 자료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도처에서 사라진 문화재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둘레길 탐방객들은 그저 사유지에 있어 못 본다고만 생각했으니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오솔길을 걷다보면 '경천군 송금물참비'라고 적힌 비석이 나온다. 이 비는 임금이 내린 사패지를 표시하는 비석으로, 이 구역에서 소나무 채취를 금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조금 더 가면 북한산 초등학교가 나온다. 1967년 세워진 북한산 초등학교에는 현재 16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학교 뒤로 의상봉이 우뚝 서 있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둘레교에 서니 원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이 발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위쪽으로 오르면 북한산성길이고 다리를 건너면 효자동 묘시내역길이 이어진다. 
 
내시묘역길 내시묘역길 둘레교에서 바라본 북한산 봉우리들ⓒ 변영숙
 
해가 이미 북한산 중턱에 걸렸다. 오늘은 여기서 마친다. 오늘 못 다 걸은 다음에 이어 걸으면 될 테니 말이다. 
 
*은평한옥마을과 진관사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 7723, 7211 승차 후 진관사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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