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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의 한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관련 기사: 이게 말로만 듣던 혐한? 제가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https://omn.kr/287l1 ).

내 전공이 미학이었다고 하면 대부분 다음과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미학은 뭘 공부하는 건데?"
"미학? 미학이면 그림 공부? 그림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


자, 나도 이 질문들에 잘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미학이 뭐냐니... 어디서부터, 미학의 역사적 기원부터 얘기해야 할까? 아니면 미학에 어떤 학파가 있는지 설명해야 하나? 어느 쪽이 됐든 알기 쉽게 설명하기에는 나의 지식과 화술이 영 부족하다.

어떻게 하면 쉽게 미학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기사는 나의 그런 고민에서부터 시작됐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게 미학

먼저 첫 번째 질문, 미학은 무엇을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미학은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학문'이라고 대답해 보겠다. 

예를 들어, 여기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 보시오'라는 문제가 있다고 하자. 이 문제에 미학적으로 접근하면 풀이 과정은 다음과 같다.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본다면?
 모나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본다면?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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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풀어써본 것이다. 

1. 먼저는 기법의 특징에 주목해 보자. 모나리자를 설명할 때는 항상 '공기원근법'이라는 용어가 따라온다. 배경의 외곽선을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게 처리하고, 겹쳐져있는 사물은 채도를 달리하여 공간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다빈치가 처음 명명,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2. 다빈치가 활동했던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모나리자가 그려진 16세기 초는 르네상스의 전성기로 인간이 예술의 주된 주제였다. 다빈치는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작품 중앙에 배치된 여인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3. 모나리자의 미소도 빠지면 섭섭하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모나리자의 미소에 열광하는가? 무엇이 그녀의 미소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그녀는 당시의 여성상을 얼마나 반영하는가? 여타의 그림 속 여성 모델들과 그녀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이런 식으로 하나의 대상에 대해 미술, 역사, 심리, 사회 과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여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미학이다.
  
다음으로는 두 번째 질문. 미학은 그림 공부인가? 그림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일단, 미학의 연구 주제는 예술품만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얘기해두고 싶다. 당연히 예술은 미학의 주요 주제지만, 자연, 사물, 인간의 감정 등 인간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미학의 연구 주제가 될 수 있다.

폭넓고 다양한 '미학'의 주제... 이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소속된 연구실은 소위 '괴짜'들이 모이기로 유명했는데, 그중에는 모차르트 악보에 남겨진 필체의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일본인이 있었다(심지어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기에 질 세라, 성냥과 성냥갑의 아름다움에 대해 연구하는 스페인 친구도 있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림 감상에 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있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답을 해보자면,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러 질문을 하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소개해보려 한다. 2008년도에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등장하면서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작품이다.

만약 그림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라면, 다음 그림의 제목이 무엇일지 상상해 보며 그림을 감상해 보셔도 좋겠다.  
 
이 작품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이 작품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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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에 눈을 가린 여인이 보인다. 이 여인은 시력을 잃은 걸까? 아니라면 왜 눈을 천으로 가렸을까?
2. 여인의 손에는 작은 악기가 들려있다. 어, 그런데 악기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3. 여인은 몸을 굽혀 망가진 악기에 귀를 대고 있다. 어딘가 애절하고 절박해 보인다. 여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4. 여인이 앉아있는 둥그란 물체는 뭘까? 행성 같기도 하고, 거대한 바위 같기도 하다. 여인은 왜 이곳에 앉아 있는 걸까? 

이 외에도 수많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질문을 하며 그림을 보셨는지?

자, 이제 답을 찾아볼 시간이다.

어딘가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이 작품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희망(1886)>. 19세기 영국의 화가 조지 프레드릭 와츠(1818~1904)의 작품이다. 화가 자신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구본 위에 앉아있는 희망, 두 눈엔 붕대를 감은 채 줄이 하나만 남은 리라를 연주하는 것. 어떻게든 온 힘을 다해 작은 소리를 내서 음악을 들으려는 것."

심지어 이 작품이 화가가 노년에 얻은 딸을 잃은 직후에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알고나면,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작품을 그리며 필사적으로 희망을 찾았을 노(老) 화가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아서다.

'포기하지 마. 망가진 악기에서도 반드시 음악 소리가 들려올 거야.'

고통을 먼저 겪어 본 사람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래서 나 역시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큰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이렇게 천천히 질문을 하며 그림을 보고, 그 답을 찾다 보면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을 부를 때 나에게 와 꽃이 되듯', 내 마음에 들어와 울림과 의미를 남기는 그림이 되는 것 같다.

미학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이 기사가 답이 좀 되었을까?

한국은 미학을 학문으로 전공한 사람은 적을지 모르지만, 이미 일상에서 근사한 미학들을 발견하며 생활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 보인다. 한국어가 쓰이는 여러 장면에서 나는 미학이라는 단어와 마주친다. 삶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 비움의 미학 등등이 그것이다.

과연 삶에서, 기다림에서 또는 비움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갤러리로 변하는 마법.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길에 핀 꽃들 속에서, 우연히 들어 선 전시장에서 눈부신 아름다움과 만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했다는 이 명언을 나누고 싶다.

'아름다움은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이는 것이다.'

태그:#미학, #아름다움, #모나리자, #희망, #일상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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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화와 미학을 공부했습니다. 번역을 하고 글을 씁니다. 동경 거주 중. 번역 및 원고 의뢰 36.5.transla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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