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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강독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A4 1~2쪽 분량의 '발제문'을 작성해서 밤 11시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발제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⑴ 수업 시간에 읽었던 각 문단을  문장으로 '요약'하기 ⑵ 읽은 부분 중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기 ⑶ 읽은 부분 중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논제'(토론 질문) 제시하기.

각각의 학생들은 발제문을 통해 수업 시간에 읽은 부분을 다시 한번 '자신의 언어로' 정리한다. 한 문단을 한 문장으로 요약·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문단을 떠받치고 있는 주요 문장 또는 핵심 내용을 찾아낸다. 구구절절 늘어지게 요약하면 안 된다. 있어야 할 것은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는, 간결한 '한' 문장으로 요약을 해야 한다.

요약을 하려고 문장을 다시 읽다 보면 또다시 긴가민가한 문장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런 경우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기에 발제문에 '질문'으로 정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논제'를 제시해야 한다. 어제 읽은 범위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고 싶은 내용을 질문의 형식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문장이 장황하게 늘어져서는 안 된다. 직관적으로 무엇을 함께 논하고자 하는지 선명하고 간결한 물음이어야 한다. 이걸 묻는 것이 왜 중요한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2019년 5월, 인문반 학생이 번스타인의,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를 읽고 제출한 발제문이다.
▲ 학생이 제출한 실제 발제문 2019년 5월, 인문반 학생이 번스타인의,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를 읽고 제출한 발제문이다.
ⓒ 지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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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날 것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드러내다가 철학수업 시간에 비로소 정갈한 물음을 던지려니까 낯설다. 막막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물음을 던져야 한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수업은 오로지 학생들이 제시한 질문만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2.
'철학연습', 수요일 수업의 이름이다. 토론 시간이지만 실상 '물음을 다듬는' 시간이며, '생각을 펼치는'(Brainstoming) 시간이다.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앞서, 학생들이 제출한 발제문을 교실 화면에 띄어 놓고 하나씩 훑어보며 수업을 시작한다. 이해되지 않는 질문들을 쭉 살펴보다 보면 꼭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 지난주 6학년 철학연습 시간에 나왔던 질문이다.'

"산업주의 체계에 내재한 경제적 모순"이란 무엇인가?
"관료주의 체제"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을 화면에 띄어놓고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왔다고 냅다 질문으로 제출하면 안 됩니다. 모르면 먼저 스스로 찾아봐야죠. 백과사전이나 전문용어사전,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논문, 각종 보고서, 잘 알려진 주간지의 기사 등의 자료를 검색해서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유튜브는 안 됩니다!) 그렇게 이해한 것을 가지고 다시 프롬의 텍스트로 가지고 와서 최대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어디까지 이해를 했고, 어디서부터 모르겠는지 등, 질문에 대한 배경 설명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어디까지 알고, 어디서부터 모르는지를 선명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질문만 덩그러니 있는 질문은 '게으른 질문'입니다. 질문을 성실하게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던진 질문들에 대해 때로는 내용을 설명하고, 때로는 태도를 지적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다음 순서를 향해 서두른다. 학생들이 제출한 논제들을 한 데 모아서 화면에 띄워놓고 이 가운데 이번 수업 시간에 다룰 논제 1~2개를 다수결로 고른 뒤에 본격적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토론은 '찬반' 토론이 아니라 '자유' 토론이다. 학생들이 고른 논제와 관련하여 여러 방향에서 서로의 주장이 부딪히고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논의가 산으로, 바다로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럴 때 나는 때때로 나서서 논의의 맥락과 각 주장의 의미를 확인한 뒤에 논의를 다시 본궤도로 올린다. 반대로 너무 이야기가 안 나오면 논제와 관련해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생각과 주장들을 끌어내기도 한다. 

토론을 할 때 내가 한번씩 던지는 질문이 있다. 바로 '질문에 대한 질문', 메타 질문이다. 지난주 5학년 수업에서의 일이다. (예전 글에 밝혔듯이, 인문반 철학수업의 방식을 올해부터 5학년에도 적용했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의 서론과 1장을 읽은 뒤 학생들은 '우정과 사랑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수결로 뽑았다. 오랫동안 갑론을박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한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수업이 끝날 즈음, 나는 이렇게 물었다.

"사랑과 우정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여러 차원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정과 사랑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도대체 이 물음이 여러분에게 왜 중요한가요?"

이런 질문을 들으면 학생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맹렬히 좇아가며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질문과 반론을 쳐내며 집요하게 자기주장을 지키려다가도 '이 물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 문제는 어떤 맥락에서,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물으면, 자기주장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시야가 넓어지고 그만큼 자신의 생각에 대해 여유를 가지게 된다. 단순한 말씨름으로 그치지 않고 방금 전의 내 생각을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질문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과정에서 배운다.

이야기를 나누며 메모를 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종이 울린다. 수업이 끝났다. 이야기를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은데,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는데 수업이 벌써 끝나버렸다. 어떡하지? 내일까지 오늘 논의하고 메모한 내용 중에 자유롭게 화제(話題, 이야깃거리)와 주제를 설정해서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 큰일이다. 마구잡이로 펼쳐진 생각의 조각들을 어떻게 정리하지? 어떻게 글로 다듬어내야 하지?

3.
토론 시간은 늘 부족하다, 결론이 제대로 나지도 않는다. 특히 토론의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더 근본적인 문제로 내려가면 길을 잃은 듯하다. 그러다가 종이 울린다. 그래도 괜찮다. 이 수업의 역할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질문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토론 시간에는 매사에 적극적으로 말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팔짱을 끼고 듣는 학생들도 있다.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자기주장을 할 필요는 없다. 기질과 성격에 따라, 또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주고받는 여러 주장과 근거, 예시 등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질문들을 노트에 '메모'하는 것이다. 곱씹어 생각할 거리들을 남기는 것이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질문의 능력은 두 가지 차원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그것을 정확한 문장으로 잘 다듬어 내는 능력이다. 다른 하나는 질문을 '이어나가는' 능력, 하나의 질문에 멈추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문제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능력이다.

앞서 설명한 발제문의 세 가지 구성 중 ⑴ '요약하기'와 ⑵ '모르는 것 질문하기' 부분도 결국 마지막 부분, ⑶ '논제'를 제대로 끌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여기서 논제는 요즘 유행하는 '메타 인지'를 활성화해야 나올 수 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텍스트의 내용을 철저하게 이해할 때만이 '이 주장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 표면적인 질문이 아니라. '이 주장이 우리에게 어떤 현실적인 의의를 지닐 수 있는지'를 묻는 심층적인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고른 논제에 대해 여러 주장이 서로 부딪힐 때,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던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이 주장들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부딪힌다고 생각합니까?'
'그 주장들은 다른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할까요?'
'각 입장에서 주장하는 핵심 내용, 그것의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문제에 대한 또 다른, 제3의 입장은 불가능합니까?'
'이 문제들이 도대체 여러분들에게 왜 문제가 됩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등.

이런 나의 질문들에 대해 겉으로 또는 속으로 답변하기 위해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본다. 이를 통해 일상적인 답변에 머무르지 않고, 생각의 '밑바닥'으로, '전제'로, '이유'로, '근거'로, '토대'로 내려가서 철학적인 물음과 만날 수 있다면 이 수업은 성공이다.

4.
자기의 물음을 던진다는 것. 특히 요즘, SNS의 짧은 글줄이 말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생각을 대체하는 시대에, 자기 스스로 던지는 물음은커녕 '다른 사람'이 던지는 '시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문해력' 타령을 하는 시대에 자기의 물음을 던지고 이를 이리저리 다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부는 더없이 소중하다. 마냥 묻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다.

2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다가 뚝 끊겨버려도 괜찮은 이유는, 내일 '철학 글쓰기' 수업, 정확히는 각자의 써온 글을 '합평'하는 시간이 떡 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내일 수업에 대비하여 남은 시간 동안 수업 시간에 펼쳐낸 생각들을 어떻게든 다듬어서 한 편의 글로 써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꾹꾹 다질 수 있다. 그렇게 학생들의 공부는 무르익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게시되었습니다.


태그:#광주지혜학교, #철학교육, #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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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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