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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알람을 10분 간격으로 3개 맞춰놓고 총 3차례에 걸쳐 서서히 잠에서 깨는 걸 좋아한다. 알람 하나로 바로 깨면 정신없는 하루가 될 것 같았고 두 개는 이도저도 아닌 것이 뭔가 아쉬웠다. 오늘은 평소보다 10분 일찍 대학교로 출발했다. 어제의 지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젠 분명한 '사고'였다. 분명 두 번째 알람까진 들었는데 깨보니 1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이젠 4개를 맞춰야 하나 아님 하나로 한 번에 일어나 볼까… 지하철 한 구석에서 있던 나는, 아직은 덜 깬 몸을 푹신한 의자에 맡긴 채 별 것 아닌 고민을 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물고 있었다. 

'쿵!' 

그런데 잔잔한 에어팟 속 노랫소리를 뚫고 무언가 떨어지는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곳을 봤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탓인지 사람들이 붐벼서인지 도저히 앉아선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호기심 강한 나는 벌떡 일어나 그 떨어진 물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 사이로 들어가긴 어렵지 않았다. 결국 그 물체를 보았다. 

사람이었다. 분명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나이키 바람막이를 입은 그 남자는 내 또래 같았고, 그 칸에는 주로 우리 학교 학생들이 탔기에 같은 캠퍼스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바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그 사람을 돕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쓰러진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한 대학생은 슬금슬금 그 자리를 피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저 사람들은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거지?

약 2년 전 마약에 취한 40대 중국인이 60대 노인을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폭행 사건도 문제지만, 50명이 넘는 행인이 사고 현장을 지나쳤는데도 그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지나쳤다는 것에 놀랐고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그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까지 도망친다면 정말 그 사람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생명이 위험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 남자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눈에는 흰자위가 보였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몸은 꼬꾸라져 있다는 표현이 제일 적절했다. 더 가까이 가서 호흡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잡는 순간, 그 남자가 눈을 떴다!

다행히 잃었던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하기 일렀다. 곧바로 그 사람을 부축해 내가 앉았던 자리로 가서 앉혔다. 난 무릎을 꿇고 그 사람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는데, 그 사람의 눈에 다시 흰자위가 보였다.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말 CPR(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건가. 몇 년 전 군대에서 군 기본 평가로 익힌 CPR을 떠올려보았다. 군 생활 동안 매 분기 진급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CPR 공부했기에 급박한 상황에서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다시 의식이 있는지 확인하던 중 다행히 그 친구는 눈을 떴다. 하지만 자신이 기절했다는 사실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다음 정거장에서 그를 데리고 내렸고, 119에 전화했다. 119 구조대원과 전화하던 와중 그 남성은 자신이 괜찮으며 구급차를 안 불러도 된다며 나에게 손짓했다. 의식을 잃었던 터라 걱정이 됐지만, 그가 극구 사양하기에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으며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

사람들은 왜 돕지 않았을까. 옛날에는 사소한 일이 발생해도 주변에서 다들 나서서 남을 도우려 '착한 오지랖'을 부리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선의를 가지고 남을 도우면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경우를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기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이번의 사건과 뉴스들을 보면, 사회 전반에 '남의 일에 끼어 본전도 못 찾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고 씁쓸하다. 사실 남의 일을 돕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모두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어떨까.

태그:#용기, #CPR, #일상,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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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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