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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습은 참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평생이 유복하다. 땅을 사면 길이 나듯이 하는 일마다 잘 된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다. 성장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다. 어려움은 고스란히 어려움으로 남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걸까? 

살다 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기도 하고,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결핍과 역경이 외려 열심히 사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맞닥뜨린 문제를 헤쳐나갈 때 통찰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가 '오늘을 사는 힘'이 되는 것이다. 박시교 시인의 '힘'은 상처투성이 인생에 힘을 준다. 

  꽃 같은 시절이야 누구나 가진 추억

  그러나 내게는 상처도 보석이다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 몇 개

  밑줄 쳐 새겨 둔 듯한 어제의 그 흔적들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힘인지도 모른다

  몇 군데 옹이를 박은 소나무의 푸름처럼

                                    - <힘> 전문, ​박시교


아픈 흉터가 어떻게 오늘을 사는 힘이 될까? 말콤 그레드 웰이 쓴 <다윗과 골리아에는 심리학자 마빈 아이젠슈타트(Marvin Eisenstadt)가 혁신가, 예술가, 기업가를 인터뷰하며 발견한 사실이 실려 있다.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었다. 걸출한 리더 573명을 조사한 결과 4분의 1이 열 살이 되기 전에 적어도 부모 한 명을 잃었다. 34.5 퍼센트는 열다섯이 될 때까지, 45 퍼센트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모 한 명이 죽었다. 질병과 사고와 전쟁으로 기대수명이 오늘날보다 훨씬 낮은 20세기 이전에도 놀라운 수치다. 

심리학자 딘 사이먼트(Dean Simonton)는 어렸을 때 뛰어난 재능을 보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도한 심리적 건강 상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편안한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말이다. 재능이 뛰어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대성공을 거두기에는 너무 전통적이고, 너무 순종적이며, 너무 상상력이 부족한' 아이들이었다.

재능을 지닌 아이나 신동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정환경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결핍이 없다. '어떤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대성공을 거두기에는' 동기가 약하다. 반대로 놀라운 성과를 창출한 천재는 나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는 이상한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나쁜 가정환경이라는 결핍이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역경을 견뎌낸 공자의 정신력      

인류 대표 지성, 사후 2500년이 지났으나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자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을까? 공자가 이상국을 세우려고 천하를 주유한 일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공자는 56세 때 처음 노나라를 떠났다. 공자가 열국을 돌아보고 다시 노나라로 돌아올 때 나이는 69세다. 14년을 길에서 보냈다. 때때로 환대를 받은 적이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적도 많았다. <공자 세가>에는 정 나라 성문에서 제자들에게 뒤처져 헤매고 있는 공자를 두고 정 나라 사람이 '상갓집 개'로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상을 당한 집에서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먹이를 찾아 방황하는 개에 비유되었을 만큼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느 나루터 고을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오인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공격받아 목숨을 잃을 뻔했다. 송나라를 지날 때도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공자가 남쪽에 있는 초나라에 가려고 할 때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한 채 식량이 떨어져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이레 동안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명아주 국물에 쌀 알갱이 한 톨도 못 넣었다.

제자들이 모두 굶주린 안색을 띠었다. 그런데도 공자는 두 기둥 사이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런 상황을 불평하는 제자에게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생각이 원대하지 못하고, 몸이 제약을 받아보지 않으면 지혜가 넓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상처도 보석이'라는 사실과 '살면서 부대끼고 베인 아픈 흉터는' '오늘을 사는 힘'이라는 역설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이야기는 심리학자 마빈 아이젠슈타트가 혁신가, 예술가, 기업가를 인터뷰하며 발견한 사실과 같다. 공자의 어린 시절을 보면 심리학자 딘 사이먼트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놀라운 성과를 창출하는 천재는 나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는 이상한 경향이 있다는. 그러면 공자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사기> 공자 세가는 공자 아버지가 안 씨 딸과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고 기록한다. 이때 공자 아버지 나이는 예순네 살, 어머니는 열일곱 살이고 세 번째 부인이다. 야합이라는 말에서 알듯이 정상적인 부부 관계는 아니다. 출생부터 비정상이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열일곱 살 때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공자는 "나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비천하여 먹고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하고 회고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창고를 관리하거나 가축을 관리하는 말단 공무원도 지냈다. 

공자가 포위되어 오지도 가지도 못하며 이레씩 밥을 굶으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정신력과 태도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 혼자 힘으로 학문에 정진하며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낸 상처에서 비롯되었다. 상처가 보석이 되고, 오늘을 사는 힘이 된 셈이다. 공자가 '소나무의 푸름처럼' 긴 생명력으로 오늘날까지 빛나는 이유다. 
 
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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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성, #역경, #상처,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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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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