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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1970년대).
 산아제한 가족계획 포스터(1970년대).
ⓒ 대한가족계획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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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났던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딸, 아들 구별 말고'라는 문구는 우리사회에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던 때라 아들을 낳기 위해 출산을 계속하는 일들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칠공주집'이 있었는데, 아들을 낳으려고 딸을 7명이나 낳아서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는 1980년대에 이르러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로 바뀌었다.

1970년에 4.53명이었던 합계출산률이 1980년에 2.82명으로 급격하게 하락했음에도 정부는 인구가 다시 증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1983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6명으로 인구대체율(현 인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의 수준)인 2.1명(OECD 및 UN의 기준) 이하로 떨어졌다. 

'인구폭탄' 우려... 1970년대 이후 인구 증가속도 '둔화'

인구증가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나라 정부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68년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인 폴 에얼릭(Paul Ehrlich)박사는 1968년 <인구폭탄(The Population Bomb)>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현대의학과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은 폭발적인 인구증가를 가져오게 될 것'이며 '마침내 인류는 식량부족문제에 당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세계은행(World Bank)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인구조절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인구성장 억제정책을 도입하게 됐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폴 에얼릭 박사의 우려와는 달리 1970년대 이후 전 세계 인구의 증가속도는 매우 둔화되고 있다. 인구의 증가속도가 둔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구의 감소를 우려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계획전문가인 앨런 말라흐(Alan Mallach) 박사의 2023년 연구에 의하면, 1960년 4.98명이었던 전 세계의 합계출산율이 1980년에는 3.71명, 2018년에는 2.41명으로 감소해 전 세계 국가의 절반 정도가 대체출산율보다 합계출산율이 낮았다.

유엔(United Nation)의 인구 데이터를 살펴보면, 유럽의 국가들은 이미 1960년대 이후 인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0~2015년 기준으로 0.08%를 나타냈다. 동아시아에 있는 신흥발전국가들의 경우에도 일본은 이미 2010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대만과 홍콩도 2020년부터 인구의 자연감소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 처음으로 총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고,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했던 중국의 경우에도 2027년내에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세계의 인구증가율은 21세기말 거의 0%에 가까운 인구 성장률을 보일 것이다.

인구 감소의 주된 원인

인구감소의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각 국가에서 실시된 인구성장 억제정책 때문일까?
  
인구감소는 인구성장 억제정책보다는 산업화(현대화)와 도시화로 인해 나타난 결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앨런 말라흐 박사는 1979년부터 2015년까지 '한 자녀 정책'을 실시했던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중국의 출산율은 정부의 인구증가억제 정책이 시행되기 10여 년 전부터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이미 급락하고 있음을 세계은행의 인구데이터를 통해 보여줬다.

또한 산업화·도시화가 앞서 이뤄진 유럽의 선진국가들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대체출산율보다 훨씬 낮게 나타나고 있는 반면, 심각한 빈곤문제, 여성들의 낮은 교육 수준 그리고 도시화의 속도가 느린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출산율이 여전히 높게 나타나는 점을 지적했다. 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도시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출생률은 아프리카 대륙내의 다른 국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1955년 24.5%에서 1970년 50.2%, 1990년 82.7%, 2010년 90.7%, 2021년 90.7%로 급속하게 높아졌다. 반면 합계출산율은 1970년 4.53명에서 1990년 1.57명, 2010년 1.23명, 2021년에는 0.81명으로 도시화율이 높아질 수록 급속하게 낮아졌다. 2020년에는 급기야 사망자수가 출생아수보다 많아지는 인구의 자연감소가 최초로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2024년 2월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적 지역분류체계로 본 도시화 현황' 자료에 따르면,  농촌 저밀도 지역이 도시 고밀도 지역에 비하여 합계출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과 도시화율.
 우리나라 합계출산율과 도시화율.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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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구감소는 농어촌지역 인구의 대도시로의 이동, 여성들의 교육수준의 향상과 사회경제활동 참여증가, 터무니없이 비싼 도시의 주택가격,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충분하지 못한 사회안전망 시스템 등과 같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나타나고 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화와 산업화에서 비롯됐다. 
  
[참고문헌]
김홍석, 권대영, 최상원(2021) 지방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전략 연구. 국회예산정책처.
민보경, 변미리(2017) 서울인구는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가? 전출입이동의 공간 분석과 유형화. 서울도시연구, 18(4): 85-102.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지역소멸, 축소도시, 인구감소 및 이동과 관련해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인구감소, #도시화,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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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출간, 주택, 도시, 그리고 커뮤니티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다소 낯설지만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의 여러 도시들을 탐색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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