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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 내부
 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 내부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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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봄을 느낄 수 있는 풍경과 달리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 그 사이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다. 겨울방학 동안 개학식만 기다렸다며 발걸음을 서두른 덕분에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한 이들. 개학식 시작 40분을 남기고도 헐레벌떡 교실에 들어와 "내가 제일 늦었어"라고 말할 만큼 학교에 '진심'인 이들이다. 교실에 들어서자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교실은 이미 봄이다.

매년 돌아오는 개학식에 설렘과 반가움만 있으면 좋으련만 걱정이 깃든 얼굴이 섞여 있다. 예년과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안남어머니학교 개학식에서 그 이유를 들었다.

배움과 돌봄이 있는 학교

2월 13일 안남면 성인 문해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안남어머니학교가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했다. 오전 10시 개학식을 앞두고 안남면다목적회관 교실로 들어오는 학생마다 손을 번쩍 들어 친구들에게 인사한다. 반대쪽 손에 들린 가방은 책과 필기도구로 가득 채운 덕분에 한눈에 봐도 무게가 느껴진다. 학생의 이름이 적힌 가방들이 책상에 가지런히 놓일수록 교실은 반가운 인사 소리로 시끌벅적해진다. 약 두 달 만에 보는 얼굴들, 서로 꼭 잡은 손에서 반가움이 여실히 느껴진다.

"너무 보고 싶었어요. 방학 동안 아프지 않은지, 별일 없는지 걱정했는데 무사히 학교에서 만나서 좋아요. 학교에서 글 배우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은데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게 가장 좋아요. 두 달 기다리느라 힘들었어요(웃음)." (박옥분씨, 91)

친구 한 명 한 명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김광자(84)씨는 개학식 시간이 다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이원영(86)씨가 걱정된다. 

"방학 동안 몇 번 학교에 안 나오니 더 걱정돼요. 선생님께 물었더니 암에 걸렸다고 하네요. 시간이 갈수록 아픈 사람이 많아지는데 이런 소식은 늘 적응이 안 돼요."

이원영씨 소식에 모두가 놀랐지만 잘 헤쳐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잘될 거다"라고 한 마디씩 꺼낸다. 박옥분씨는 학교가 이웃과 마을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고 했다.

"집에만 있으면 마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요. 학교에 나오니까 얼굴 보고 소식 전해 들으면서 주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죠.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까이에 있는 이웃 한 번 들여다보게 되기도 하고요. 마을에 구급차 지나가는 소리에 관심 두게 돼요." 
 
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 개학식, 안남면다목적회관 교실로 들어오는 학생마다 손을 번쩍 들어 친구들에게 인사한다.
 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 개학식, 안남면다목적회관 교실로 들어오는 학생마다 손을 번쩍 들어 친구들에게 인사한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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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째 운영 중인 안남어머니학교는 성인 문해교육뿐 아니라 치매예방교육과 공동급식을 운영하며 면 지역 노인복지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학생이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읽으며 어려움 없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된 것도, 이웃에게 전화 걸어 안부를 묻는 것도 안남 어머니학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교 당시 50명이던 학생 수가 10명으로 줄었지만 배움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은 그대로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개학식에 우을순 교장 또한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뻐요. 편지와 전화로 안부 묻는 것이 방학 숙제였는데요. 두 달 동안 틈틈이 숙제하는 학생들 덕분에 성탄절 카드도 받고 그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제 개학했으니 매주 만나서 즐겁게 공부해요."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 친구와 인사를 나눈 뒤 수업이 시작됐다. 동화 읽기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오순임(57)씨에게 김홍묵(88)씨가 "그냥 이야기해요!"라고 말한다. 

"공부도 좋지만 오늘은 즐겁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오늘 같은 날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요."

김홍묵씨 말에 모두가 웃는다. 기대하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는 학생들 사이로 책을 펴는 조만순(78)씨. 그는 지난해 머리 수술을 받은 뒤에도 학교에 나올 만큼 배우는 게 즐겁다. 교실 맨 앞줄에 앉아 책에 적힌 글씨를 연필로 따라 적는 데 집중한다.

박별준(78)씨 역시 올해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기 시작했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 순환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곧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말에 주변에서 다독이는 말을 건네지만 박별준씨는 수술보다 학교 나올 걱정이 앞서 보인다. 

오순임씨가 '소똥 밟은 호랑이'를 읽기 시작하자 모두 선생님 목소리에 집중한다. 책을 펴며 수업을 준비하던 학생도,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던 학생도 진지하게 수업에 임한다.

이날 개학식은 점심을 먹고 끝이 났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하교하는 학생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출발 전까지 "금요일에 보자"는 인사와 함께 크게 손을 흔든다. 학교를 떠나기 전 이순하(93)씨는 "방학 때 좋아하는 꽃을 많이 그려놨는데 다음 수업에는 잊지 않고 꼭 가지고 오겠다"며 크게 웃어 보였다.

매년 줄어드는 예산에 폐교 고민 이어져
 
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의 모습
 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의 모습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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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손꼽아 기다린 개학식, 밝은 표정의 학생들과 달리 운영진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지난해 교육부 성인문해교육 공모 사업에 떨어지면서 운영에 차질이 생긴 것이 올해도 반복될까 하는 불안 때문이다. 최소한의 운영 예산 300만 원도 확보하지 못한 채 시작된 안남 어머니학교는 예정돼 있던 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방학 기간에도 학교에 나와 생강편, 유자청을 만들고 학기 중에 소풍도 가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어르신들도 학교 운영진도 모두 아쉬웠어요." (안남어머니학교 우을순 교장)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안남면지역발전위원회가 금강수계기금 대단위주민지원사업비 3천만 원을 안남어머니학교 운영에 쓰기로 결정하면서 지난해의 어려움을 덜 수 있었다. 안남어머니학교는 이 예산으로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업마다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었다. 강사 인건비와 수업 재료비 등의 학교 운영비는 충청북도교육청 성인문해교육지원사업 620만 원의 예산을 지원 받아 운영하고, 부족한 분은 선생님들의 봉사로 채웠다.

"수업뿐 아니라 식사 준비까지 도맡아 해주셨어요. 대단위주민지원사업비는 식재료 말고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어서 식사를 준비할 인건비를 마련할 수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수업하다가도 점심을 준비하곤 했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안남면다목적회관 관리자께 식사 준비를 같이해줄 수 있는지 도움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함께해주셨어요."

우을순 교장은 주민들 덕분에 간신히 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올해는 안남면 대단위주민지원사업비가 안남면 작은목욕탕 관리비 예산으로 책정된 터라 안남어머니학교 운영 예산을 지원받을 가능성도 낮아진 상황.

예산 확보 어려움으로 운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지역 문해학교는 안남어머니학교만이 아니다. 같은 날 개학한 안내행복한학교(안내면)도 지난해 교육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충북교육청 성인문해교육지원 사업 600만 원으로 운영됐다. 학생 30여 명이 다니는 행복한학교, 절반으로 줄어든 예산으로 학교를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따랐다. 결국 선생님을 모두 떠나보내고 정용호 교장 홀로 남은 상황.

"식사비, 교재 구입비 등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교사비로 썼어요. 선생님들이 그동안 받은 인건비를 학교 운영을 위해 모아 주셨죠. 지난해에는 주민 봉사로 학교를 운영했는데 올해는 다 관두고 저 혼자만 남았어요. 혼자서 학교 운영이 어려우니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수업해달라는 학생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예산은 없는데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안내행복한학교 정용호 교장)
 
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 교재
 충북 옥천 안남어머니학교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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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안남어머니학교를 시작으로 옥천 지역 곳곳에서 문을 연 문해학교들. 이들은 주민들의 자원봉사와 각 면 기관단체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다 정부 지원의 물꼬가 트인 것이 2006년. 옥천뿐 아니라 전국에서 지역 주민들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성인문해교육의 필요성이 인정받으며 교육부 지원예산이 책정된 것이다.

이후 충청북도교육청 성인문해교육 사업 등의 재원이 마련되며 지역 문해학교의 운영은 다소나마 수월한 상황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육부 성인문해교육 예산이 축소되면서 문해학교 운영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옥천군 역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매년 문해학교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 등을 거론하며 예산 마련과 지원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옥천군 행복교육과 행복교육팀 김태수 팀장은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들고 불규칙한 참석률로 예산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교육부 성인문해교육 사업이 격년제로 지원되고 있어 올해는 공모사업에 선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교육부 예산 지원이 무산된다면 다른 공모사업을 신청하거나 옥천군 평생학습 프로그램인 두드림 지원사업, 삼삼오오 학습동아리 지원사업 등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 남아있다. 평생학습 프로그램 지원 사업은 강사비나 소액(200만 원)의 운영비를 지원하지만, 문해학교가 운영해온 다양한 프로그램 지원까지는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식비나 여비 등이 대표적으로, 그간 이들 문해학교가 농촌 지역 노인의 건강한 식생활과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데 일조해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안남어머니학교 우을순 교장은 "평생학습 프로그램은 학교 운영에 제한이 많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도 "교육부 사업이나 기타 다른 예산 지원이 안 될 경우에는 강사비라도 지원받을 수 있는 두드림 지원사업 신청을 고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을순 안남어머니학교 교장
 우을순 안남어머니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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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해 대단위주민지원사업비로 안남어머니학교 예산 지원을 결정했던 안남면지역발전위원회는 올해 공동체 식당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문해학교 운영을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안남면지역발전위원회 윤성희 사무국장은 "안남의 경우 총회를 통해 대단위주민지원사업비 사용처를 결정한다"며 "올해는 목욕탕 운영비로 지원될 예정이지만 현재 공동체 식당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다. 조합이 만들어지면 5천만 원 예산으로 작은도서관, 어머니학교 등 주민들에게 든든한 식사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안내행복한학교는 충청북도교육청 성인문해교육사업에, 안남어머니학교는 주민자치회에 별도로 예산 지원을 신청하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예산 지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건 2월 말~3월 초. 그때까지는 예산 확보 결과에 전전긍긍하며 학교 운영을 이어나가야 한다.

안남어머니학교 우을순 교장은 "여전히 배움에 목말라 있는 학생이 많은데 매년 예산이 줄어 20년 넘게 운영해 온 학교를 문 닫아야 할지 고민하는 게 고통스럽고 학생들에게 죄송하다"고 전했다. 

월간옥이네 통권 81호(2024년 3월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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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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