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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가화현대아파트 외부 모습
 충북 옥천 가화현대아파트 외부 모습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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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읍 가화3리 가화현대아파트에는 459세대, 총 1800여 명이 거주한다. 옥천의 가장 작은 면인 안남면 인구가 1300여 명 (2024년 1월 기준)이니 한 아파트 단지가 면지역 하나와도 맞먹는 규모다.

1995년, 옥천에서 세 번째로 완공된 고층 아파트인 가화현대아파트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매년 가을, 주민 400~500여 명 정도가 모이는 마을기원제 및 주민화합한마당 행사를 올해로 13회째 이어오고 있다는 것. 이웃의 안부를 묻기도 쉽지 않은 오늘날, 아파트 주민들이 참석하는 행사를 꾸준히 지속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을' 같은 아파트

올해로 준공 30년가량 된 가화현대아파트. 서영섭(62) 이장이 그러하듯 첫 입주 시기부터 지금껏 살아가는 주민도,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주민도 한 아파트에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첫 입주 당시 30대였던 서영섭 이장은 어느덧 60대에 들어섰고, 아파트 거주 평균 연령대 역시 함께 높아졌다. 

"어르신 분들도 많이 거주하시죠. 또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한 아파트, 다른 세대에 거주하는 사례도 많은 편이에요. 2017년 인근에 지엘(옥천읍 양수리, 양수지엘리베라움아파트)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젊은 층이 많이 이주하면서 이전보다 빠르게 노령화됐다고 느낍니다. 오래도록 거주하신 분들이 많다 보니 서로 얼굴을 알고 교류하는 주민도 많아요." 

이준무(83) 노인회장은 "옥천이 고향인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한 집 건너 동창이고, 한 집 건너 식구네일 만큼 이웃끼리 알고 지낸다"며 웃는다. 
         
공동주택은 결속력이 약하다는 인식이 무색하게 입주자대표회·노인회·부인회가 정기적으로 모이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아파트 주변 청소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아파트 내부에 별도로 마련된 경로당에서는 아파트 거주 어르신을 대상으로 매주 월·수·금요일 건강체조 프로그램이 이뤄지는데, 여기에만 매번 20여 명이 자리할 정도로 참여율도 높다.

경로당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주민들 스스로 "이토록 이웃 간 정다운 아파트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자화자찬할 정도. 할머니방에 마련된 포켓볼 당구장은 서영섭 이장이 기증한 것인데, 때때로 주민들이 어울려 교류하는 장소가 되곤 한다. 매주 있는 건강체조 프로그램 시간은 겨울에도 선풍기를 틀어두고 할 정도로 열기가 대단하다. 

이곳 노인회에 소속된 주민만 90여 명, 부녀회는 30여 명으로, 매년 부녀회와 노인회가 번갈아 가며 관광을 다녀온다. 지난해에는 부녀회가 다녀왔으니 올해는 노인회가 참여할 순서. 다가오는 4~5월경 한바탕 봄 소풍을 떠날 계획이다. 정월대보름을 맞이한 윷놀이 행사에도 노인회를 중심으로 매년 많은 주민이 모이곤 한다. 
 
가화현대아파트의 풍경
 가화현대아파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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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에서 매주 월·수·금 진행되는 건강체조 프로그램 풍경
 경로당에서 매주 월·수·금 진행되는 건강체조 프로그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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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유회는 버스 큰 것 두 대 대절할 만큼 규모가 크죠.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는 지금껏 항상 여행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보통 가을에 다녀오곤 했는데 올해에는 좀 더 따뜻한 봄날로 계획하고 있어요. 정월대보름 윷놀이 행사에도 40명 이상이 참석할 만큼 적극적이죠." (이준무 노인회장)

"여수, 변산반도, 안면도... 전국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 야유회를 다녔어요. 한번 가면 부녀회 회원 대부분 참석할 만큼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곤 해요. 부녀회에서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안건도 논의하고 어울려 놀고 하지요." (배화자 부녀회장) 

가화현대아파트가 이토록 정다울 수 있는 데는 매년 열리는 마을기원제 및 주민화합한마당의 역할도 크다. 1년에 한 번이라지만 행사를 열기까지 들이는 정성과 노력,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주고받는 교류는 훨씬 대단하다. 

이웃을 알자
 
이수암씨
 이수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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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현대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지내는 산제는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기워제로 확대돼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 : 서영섭 이장)
 가화현대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지내는 산제는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기워제로 확대돼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 : 서영섭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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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현대아파트 뒤쪽으로 위치한 삼성산에는 삼성산성이 있다. 관산성으로 추정되는 산성 중 하나인데, 백제 성왕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지는 관산성 전투 등 백제와 신라 사이의 크고 작은 전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을기원제는 여기에 관심을 지닌 주민 몇 사람이 모여 산제를 지낸 것에서 시작됐다.

옥천향토전시관 전 명예관장인 이수암(83)씨는 2003년 가화현대아파트에 입주해 지금껏 거주하고 있는데, 역사 지식이 풍부해 매해 마을기원제에 발원문을 작성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관산성은 삼국 통일의 기초를 이루신 터전입니다.
이 성전에 우리 동민 일동은 각 개인의 행복과 건강을 원하옵니다.
질병 없는 마을 불행 없는 마을이 되게 하소서.
동민 각자를 신바람 나고 행복이 넘치는 얼굴이 되게 하소서. 
(중략)
작게는 각 가정의 행복과 평안을, 마을의 화합과 발전을 기원하오며 
크게는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기원하오니 굽어살피소서. 

- 2019년 마을기원제 발원문 내용 중 발췌(이수암씨 자료제공)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장소인 만큼, 혼령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제를 시작했지요. 시작하고 2~3년간은 10여 명이 모여서 예를 갖추는 방식이었습니다." 

아파트 뒷산 적당한 곳에 비석과 상을 세워 작은 규모로 이루어지던 산제는 2014년 서영섭씨가 이장을 맡으면서부터 규모가 커졌다. 산제가 주민들의 번영과 화합을 기원하는 내용인 만큼, 이를 활용해 아파트 행사를 개최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아파트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층간소음, 이웃 간 다툼 문제가 종종 일어나곤 했지요.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과 함께 이런 문제를 논의하다가 내린 결론은 '이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해 알고 정을 나누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서영섭 이장) 

그렇게 '이웃을 알자'를 표어로 걸고 시작한 것이 지금의 마을기원제와 주민화합행사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는 주민 40~50여 명이 참여하는 마을기원제를, 저녁 7시부터 10시경까지는 마을노래자랑을 하는 방식. 기존 산제를 드리던 뒷산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원이 많이 모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 아파트 옆쪽에 자리한 쌈지공원 한 편에 새로운 상석을 마련했다. 마을노래자랑은 아파트 지상 주차장 공간을 활용하는 데 400~500여 명 정도가 모이는 상당한 규모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규모는 아니었어요. 훨씬 작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여도가 높아졌죠. 대체로 주민들이 주인공이 돼 무대를 꾸리는 식인데,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분들이 무대에 오르시곤 해요. 12팀 정도 참여하시죠."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주민이 참여하는 행사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행사에 변화를 주기 위해 때로는 가수를 초대하거나 악기 연주를 중심으로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입주자대표회 주최, 부녀회 주관 행사로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대략 1천만 원 정도인데,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행사비와 외부로부터 받은 협찬으로 마련한다. 예산이 허락될 경우 식사와 경품 추첨도 열린다고. 

"아파트 단지에서 열리는 행사이다 보니 밤 10시 이전에는 마쳐요. 행사 개최 한 달 전부터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준비를 합니다. 아파트 방송과 게시판 공간을 활용해 행사를 홍보하고 있어요." (서영섭 이장)

"부녀회에서는 보통 음식 준비를 맡아요. 국수도 삶고 반찬도 만들고... 고되기보다는 함께하는 즐거움이 더 커요. 요즘 이런 행사 열리는 아파트가 어디 있겠어요." (배화자 부녀회장)
 
마을 화합 행사를 즐기는 가화현대아파트 주민들의 모습
 마을 화합 행사를 즐기는 가화현대아파트 주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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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원제와 함께 열리는 주민 화합 행사 (사진제공 : 서영섭 이장)
 마을기원제와 함께 열리는 주민 화합 행사 (사진제공 : 서영섭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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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역사적인 배경에서부터 시작된 행사이지만, 이제 그보다 함께 즐기고 소통하는 자리라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올해 행사는 또 어떻게 재미나게 만들어나갈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효과도 크다.

"노래자랑을 통해서 누가 누구인지 몇 사람이라도 알게 되잖아요. 얼굴 마주 보고 인사하다 서로 친밀해지고 그렇게 긍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면 문제 삼으려다가도 서로 덮어주고 위해주게 되죠. 한 마을 이웃처럼 정다워지니 아파트 분위기도 한결 밝아지고요." 

앞으로도 좋은 전통 이어가야죠

여럿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가화현대아파트는 이를 이웃 간의 소통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교류하고 힘을 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최근 내부에서 떠오른 문제는 반려동물에 관한 것이다. 식구처럼 반려동물을 기르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숙제처럼 떠오른 문제 역시 논의하며 해결해나갈 생각이다. 

"지금껏 주민들이 지지해주고 참여해준 덕분에 우리 아파트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죠. 앞으로도 한 마을 같은 가화현대아파트 이어진다면 참 좋겠습니다." 

월간옥이네 통권 81호(2024년 3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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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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