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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宵一刻直千金(춘소일각직천금)
봄밤의 일각은 천금의 가치로다.


중국 시인 소동파의 春夜(봄밤)이란 시의 첫 구절에 쓰인 말이다. ​​​같은 봄이라도 남쪽 땅을 먼저 밟는 봄의 향기를 맡고 싶어서 작년에는 광양의 매화마을, 올해는 구례산수화마을에 갔었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잠시라도 부지런하게 생동하는 봄의 기운과 향기를 체득하고 나면 분명 올해도 건강하게, 잘 살아질 거다라는 자기암시였다.

어디를 가든지 손에 시집 한 권과 그 지역의 인물 역사 관련 이야기 책 하나 들고 출발하면 그 어떤 간식도 필요없을 만큼의 달콤한 시간, 말 그대로 소확행이다. '일상에서 벗어나라'고 늘 생각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그래서 책을 통해, 사람을 통해서 여행을 하면서 때론 예기치 않은 놀라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시인을 포함해 30여명의 낭독자들이 화면으로 인사. 총 4시간 가까운 만남이었다.
▲ 줌 완독회 모습 시인을 포함해 30여명의 낭독자들이 화면으로 인사. 총 4시간 가까운 만남이었다.
ⓒ 채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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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작년 책방 행사에서 처음 만났던 <꽃도 서성일 시간이 필요하다>의 저자 안준철 시인의 특별한 초대를 받았다. '한 권의 시집을 완독하는 줌 완독회'라는 주제를 가진 자리였다. 암기해서 발표하는 시낭송의 개념이 아니고 친구들과 고요한 수다떨듯, 좋아하는 시 한 편 골라서 읽어보는 낭독이라는 말에 이내 신청했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의사소통 수단 중 ZOOM(줌)은 매우 유용한 소통도구였다. 학생들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지인들과 온라인 만남을 하는 등, 그 어두운 코로나 시기에 빛처럼 밝은 길을 보여주었다. 그 후로 다양한 SNS소통도구들이 나와서 잠시 트렌드(유행)를 따라가느라 줌보다는 다른 앱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소통앱이다.
 
2024에 진행할 줌 완독회 포스터, 12권의 시집이 실려있다
▲ 2024 줌(zoom)완독회 2024에 진행할 줌 완독회 포스터, 12권의 시집이 실려있다
ⓒ 완주인문네크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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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줌 완독회'의 포스터를 보니 12권의 시집과 시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나가버린 1월 김영춘 시인의 <다정한 것에 대하여>와 2월 김이듬 시인의 <투명한 것과 없는 것>에 대한 완독회를 미리 알지 못함은 매우 아쉬웠다. 안 시인의 초대를 받아서 이제라도 이런 행사를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던지.

처음 참여한 사람을 위해 진행 과정을 설명한 이종민 교수를 비롯하여 30여 명의 낭독참여자를 모니터 화면으로 만났다. 그중에는 이미 유명한 시인들도 있었고, 전문 시 낭송가부터 나 같은 왕초보 낭독입문자까지 있었다. 무엇보다 낭독 후 그들의 말을 통해 문학(시)에 대한 깊은 소양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3월의 책, 안준철 시인의 <나무에 기대다>(2021 푸른사상사)는 70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이다. 총 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시인이 경험한 일상의 사계절을 편안하게 담소 나누는 듯한 시어들로 독자에게 전해준다. 줌에 참여한 독자들은 좋아하는 시 2편 이상을 낭독했는데 처음 참여한 나는 시인께서 추천해준 시 <수레국화 물수레국화>를 낭독했다. 무대에 선다거나 하는 일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줌 낭독이야말로 참 편안하고 즐거운 무대였다.

원래 예상했던 시간은 약 3시간이어서 처음엔 의아했다,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길래 시집 한 권 읽는 시간이 이렇게도 길까. 독자가 한 편의 시를 읽고, 소감이나 질문을 하면 시인이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주는 형식이었다. 만약에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작가와의 만남이라면 분명 장시간의 진행에 지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각자의 편안한 장소에서 얘기를 주고 받는 실시간 온라인 만남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안 시인은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온 교사로서 정년 퇴직을 했다. 교직 중에 만나는 학생들마다 '생일시'를 써주어 탄생한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을 출간하면서 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다.

그러던 와중 암 투병이라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변함없이 글로서 세상을 만났다. 어둡고 슬픈 고통에 대한 시보다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은 사유로 사물을 대하는 시인의 따뜻한 심성이 절절히 담긴 시가 많다. 기회가 없었지만 낭독하고 싶었던 시 중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의 내용의 일부다.
 
봄이랑 놀았다
봄이랑 연두랑 노는 동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점심먹고 자전거 타고 나가서
해가 꽁구멍에 닿을때까지
봄이랑 연두랑 노는 동안
용케도 봄을 가지고 놀지는 않았다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놀았다

(중략)

봄이 고맙다
봄에게 나도 고마운 사람이길 바란다
 
3월의 줌 완독회 시집
▲ 안준철시인의 시집 <나무에 기대다> 3월의 줌 완독회 시집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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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자연이 더 잘 아는 듯 시인에게 끊임없이 친구가 되어준다. 그 친구의 말 소리를 잘 들었다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시인의 동심(童心)어린 그 순수함과 솔직함이 참 좋다.

시집의 서두에서 시인은 말한다. '나무에게 기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무도 나에게 기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나무가 제 발로 찾아와 기댈 수 없으니 우리가 찾아가서 사랑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온 세상이 봄이다. 싫다해도 이미 내 몸이 봄 속에 있으니, 마음을 열어 그 봄을 맞으라. 그리고 빚을 갚아라. 단 한 번 밖에 없는 이 새 봄을 내어주는 자연에게 다가가 당신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 보여주자. 당신이 보내는 눈길, 손길 한 자락에 봄은 이미 다른 계절의 향연장에 초대할 준비를 할 것이니 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가.

태그:#안준철시인, #나무에게기대다, #줌완독회, #완주인문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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